일본의 검은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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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타큐슈 여행은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초청으로 가게 됐습니다. 세이초 재단 사업과 관련한 행사였는데요, 그날 강연으로 나선 분이 바로 일본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시노다 마사히로였습니다. 요즘 팬들에게는 <올빼미의 성>(1999) 연출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추방된 고제 오린>(1977) <동반자살>(1969) <말라버린 꽃>(1964) 등 1960~70년대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습니다. 특히 국가의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일본인들의 비극을 주로 다루며 반골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이날의 강연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노다 마사히로는 2004년 <스파이 조르주>를 마지막 연출작으로 현재는 은퇴상태에 있습니다. 확실히 전성기 때의 건장했던 체격은 온데간데없고 많이 마른 상태이더군요. 대신 연출자 은퇴 이후에는 자서전 집필이나 강연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날의 강연도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었는데요. 다만 마쓰모토 세이초와는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다고 합니다. 세이초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 적도 없었고 사석에서 인사 정도만 나눈 사이라고 하더군요. 대신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 때문에 강연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사히로 감독은 자신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931년생이니까 중학교 때면 한창 일본이 세계2차 대전에 참전해 야욕에 불타던 때인데요, 그때 학교에서 중요하게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할복’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중학생 애들에게 할복에 대해서 가르치고, 또 아이들이 할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당시의 일본인들은 누구나 할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천황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는군요. 당시 천황은 신(神)의 대접을 받았고 일본인들은 신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할복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서 천황은 그 유명한 ‘인간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은 일본의 패전에 대한 죄를 물어 천황을 군법에 회부하지 않는 대신 “나는 신이 아니라 여러분과 똑같은 인간이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육성으로 인간 선언을 하게 했죠. 그때 중학생이던 마사히로 감독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그건 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다만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천황이 신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에 대성통곡하였다고 하는데요. 마사히로 감독은 그동안 천황이 신이었던 일본의 역사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오랫동안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해서 국내의 많은 독자들은 추리소설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세이초는 추리소설 외에도 고대사와 현대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일본의 검은 안개>는 역사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일본 현대사의 혼란스러운 광경을 사실에 입각해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마사히로 감독은 일본의 역사란 무엇인가 한창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일본의 검은 안개>를 보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는 “이것이 바로 일본의 진짜 역사다!” 생각하며 세이초의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 자신이 직접 세이초에게 왜 소설 외에 역사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직업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세이초 역시 일본의 역사는 가짜라는 것을 목격했기에 진짜 역사를 알고 싶어 직접 역사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더군요. 저는 마사히로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세이초 기념관에는 살아생전 세이초의 도쿄 집을 그대로 옮겨 전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재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옮겨 놓은 거랍니다.) 거실과 침실, 그리고 부엌을 제외하면 2층 집 전체가 도서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으로 넘쳐나는데요, 상당수가 일본과 일본 근접 국가들의 역사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세이초는 “주변 국가의 역사를 알아야 일본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도 하네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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