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종사> 쿵푸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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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CGV 강변에서 <일대종사> 시사 후 진행한 시네마톡입니다. 진행하기 전에 작성한 글인데요. 매체에 게재할 목적이 아니다보니 글이 좀 거칩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왕가위 영화에 대한 제 경험을 짧게 들려드리는 걸로 시네마톡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마 국내 개봉한 왕가위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일 텐데요. <아비정전>(1990)이 국내에 개봉했던 1990년에서 199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을 거예요. 당시에 홍콩영화에 대한 인기가 굉장해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개봉하는 족족 보러 다녔는데요. 같은 날 <경천 12시>(1990)와 <아비정전>이 함께 개봉을 했어요. 오전에 대한극장에서 <경천12시>를 보고 중앙극장으로 넘어와 <아비정전>을 보던 중이었어요.

기대한 것과 다르게 <아비정전>은 굉장히 지루한 영화였어요. 당시에 홍콩영화라고 하면 액션이 주가 되고 굉장히 박진감 넘치게 묘사가 되는데다가 남자들의 우정이 기본적인 정서였는데, <아비정전>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예요. 지금 유행인 스타 대거 캐스팅을 이미 그 전에 선보인 <아비정전>이었는데 주인공들이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발 없는 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헤어진 사랑에 아파하고 또 다른 사랑을 만나 떠나고 이러니 당시의 저에게는 너무 재미가 없었던 거예요.

근데 그게 저 뿐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요. 휴일이었던 데다가 홍콩영화가 워낙 인기 있고 게다가 장국영, 유덕화, 유가령, 장만옥, 장학우, 양조위 등 홍콩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까닭에 매진을 기록했거든요. 그런데 <아비정전>이 시작하고 한 40~50분 정도 지났을까 어떤 관객이 일어서시더니 “우리 같이 퇴장합시다!” 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영화를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죠.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무례한 행동이었던 건데 당시에 사람들은 중국 무술, 그러니까 쿵푸를 볼거리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왕가위는 그런 한국 관객들의 기대감을 완전히 배신했던 거죠. 그렇다면 왕가위에게 쿵푸란 무엇이었을까요?

왜 엽문인가?  

‘중국 무술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제가 오늘 시네마톡의 주제로 정한 것인데요. <일대종사>는 이 주제에 대한 왕가위의 대답이라고 할 만한 영화입니다. 잘 알려졌듯 <일대종사>는 영춘권을 전 세계에 알린 ‘그랜드마스터’이면서 무엇보다 이소룡의 스승으로 유명합니다. 이미 <일대종사> 이전에 엽위신 감독이 <엽문>을 통해 엽문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이 두 작품은 전혀 다릅니다. 엽위신의 <엽문>이 항일전사로서 엽문의 액션을 볼거리로 전시한다면 <일대종사>는 엽문을 경유해 쿵푸 그 자체에 대해 말하는 작품인 거죠. 이전까지 홍콩의 쿵푸 영화가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했다면 <일대종사>는 삶이자 정신으로써의 쿵푸에 초점을 맞추는 최초의 영화라고 할 만합니다.

원래는 이소룡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죠. 그게 <해피투게더>(1997)를 만들던 1996년 당시였는데요. 왕가위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중에 이소룡이 커버로 등장한 잡지를 보게 됐대요. 그러면서 두 가지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의 죽음이 가져온 쿵푸 파이터로서의 전설, 그리고 여전히 아이콘으로 군림하는 액션 배우였다고 해요. 그의 말을 한 번 인용해 볼까요. “나는 자라면서 이소룡의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를 사랑했고 언젠가 이소룡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엽문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됐냐고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이소룡에 대해 공부하던 중 그의 스승인 엽문을 알게 됐다. 그랜드 마스터가 된 엽문은 내게 이소룡보다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엽문은 대륙의 뛰어난 쿵푸 마스터 중 한 명이었으면서 1950년대 홍콩으로 넘어왔는데, 그러면서 경쟁 관계에 있는 쿵푸 학교들과 치열하게 경합하였고 서로 겨루는 문파 간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이들은 서로의 쿵푸가 지닌 기술들은 서로 교류하며 보완해 나갔고 그럼으로써 쿵푸의 세계를 이뤘다. 나는 그런 중화권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가는 위기에 처한 것이 안타까웠다. 이를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영춘권을 위시한 쿵푸 문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대종사>를 만들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엽문이 죽기 3일 전의 모습이 담긴 8mm 비디오를 봤기 때문이라고 해요. (참고로, 엽문은 1893년 10월 1일 태어나 1972년 12월 2일 79세의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 영상 속에서 엽문은 굉장히 아파 보였고 삐쩍 말라 있더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살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해 <일대종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죠. 궁보삼이 딸 궁이에게 “너의 눈에는 승부만 있고, 세상이 없어” 다시 말해, 왕가위는 죽어가는 엽문의 눈에서 세상을 보았던 거죠. 그냥 세상이 아니라 쿵푸의 세계를 말이죠.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일대종사>가 최초 공개 됐을 때 왕가위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대종사>는 쿵푸영화가 아닌가?” 이에 왕가위는 이렇게 답했죠. “1970년대를 풍미했던 쇼브라더스의 작품들이 쿵푸영화다. <일대종사>는 쿵푸에 대한 영화다.” 많은 쿵푸 영화들이 누가 가장 잘 싸우는지, 누가 가장 화려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주목했다면 엽문은 그와 다르게 쿵푸의 정신과 철학을 보여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왕가위 감독에게 영감을 줬다는 겁니다. 그는 수많은 쿵푸영화들을 보며 자랐지만 늘 의문이었답니다. ‘중국 무술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준 인물이 바로 엽문이었고, 바로 <일대종사>를 만들게 된 거죠.

쿵푸는 무엇인가?

<일대종사>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때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쿵푸가 가장 성했던 시기입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중국 피난민들이 전쟁과 기근을 피해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으로 꾸준히 유입되었고 1941년에는 일본이 쳐들어와 홍콩을 4년 동안 점령했습니다. 1949년 중국에 공산주의 혁명이 발발함에 따라 또다시 많은 피난민들이 홍콩으로 몰려왔고요. 그래서 전쟁이 끝날 무렵 60만 명이던 인구가 1960년에는 무려 300만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지금 쿵푸를 말할 때 가장 유명한 영춘권도 바로 그 당시에 가장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시대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왕가위는 이런 얘기를 했죠. “쿵푸는 수평과 수직, 치욕과 영예의 중도이고 시대는 번영과 쇠락, 분단과 통일의 반복이며 그랜드마스터의 길은 존재함, 깨달음, 행동함이다.”라고요.

왕가위는 중화권 사람들이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쿵푸로 버티어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여요. 사실 왕가위의 모든 영화는 ‘화양연화’, 즉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긍정하는 영화가 아니었던가요. 게다가 그 기간이 썩 길지가 않기 때문에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고요. <일대종사> 이전 그의 영화에서 화양연화의 주제를 이루던 사랑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영화에서 사랑은 모두가 맺어지는 형태는 아니었죠. 그래서 왕가위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사는 “나를 좋아하기는 해?”라고 할 수 있죠. 그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왕가위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새로운 연인을 찾아 발 없는 새처럼 항상 날아다닙니다.

그 대상은 <아비정전>의 아비(장국영)가 만나는 미미(유가령)처럼 좀 천박한 여자이기도 하고 <해피투게더>의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처럼 동성애이기도 하고 <화양연화>(2000)의 차우(양조위)와 수리 첸(장만옥)처럼 불륜이기도 하며 <2046>(2004)의 극 중 ‘2046’의 소설 속 인간과 로봇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가치 평가가 개입되지 않습니다. 그저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되는 어떤 기억인 것이죠. 그래서 왕가위는 이 모든 형태의 다양한 화양연화를 가장 감각적이고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일대종사>도 마찬가지이죠. 중국의 가장 혼란한 시기, 쿵푸 마스터들은 서로 그랜드마스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대결을 펼칩니다. 이 때 굉장히 다양한 문파들이 선을 보이죠. 엽문이 강호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기 전 쿵푸의 최고수는 궁보살이었습니다. 이제 궁보살은 나이가 많아 은퇴할 때가 되는데 그 때문에 새로운 쿵푸의 고수를 찾아 나서게 되죠. 강력한 후보는 바로 엽문입니다. 엽문은 이소룡의 유작이죠 <사망유희>(1978)처럼 산에 오르듯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후보자들을 무찌르죠. 처음엔 팔괘장의 고수를, 그 다음에는 형의권의 고수를, 그 이후에는 홍권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과정을 두고 궁보살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영웅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흐름을 만들려는 것. 그래서 새로운 땔감이 필요합니다.”라고요. 새로운 흐름은 누구 한 명이 우뚝 선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서로 쿵푸를 다루는 과정에서 각자가 부족한 걸 서로에게 보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취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기도 하는 거죠. 쿵푸는 바로 융합을 통해 더욱 새로워지고 강해집니다. 쿵푸가 싸움이 아니라 문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겠죠.

쿵푸의 고수로 알려진 사람들, 홍콩의 액션 스타들만 봐도 누구냐에 따라 액션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룡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답게 쿵푸가 둥글둥글합니다. 누구를 죽이려거나 하는 무술이 아니죠. 지금 홍콩영화의 가장 뜨거운 스타인 견자단은 10년 전만 해도 악역으로 주로 등장을 했었습니다. 그의 쿵푸는 무섭습니다. 살기가 돌아요. 견자단은 극 중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를 실제 만나본 동료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매우 예민한 성격의 배우라고 합니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얘기일 텐데요.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한 인상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대종사>에서도 엽문 외에도 굉장히 많은 쿵푸의 고수들이 등장을 하죠. 후에 일본에게 협력하는 마삼의 쿵푸는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즉 자신이 최고수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무술입니다. 궁보살의 딸, 궁이의 쿵푸는 바로 복수죠. 엽문이 궁보살에 이어 그랜드 마스터가 됐을 때, 마삼이 아버지를 죽이고 가문의 비기를 훔쳐갔을 때 궁이는 아버지의 뜻과 다르게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엽문의 무술에서는 비가 튀지만 팔극권의 마스터 일선천(장첸)의 쿵푸에는 뼈가 부러지고 피가 튑니다. 엽문이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죠. 왕가위가 쿵푸를 말하면서 엽문을 내세운 건 바로 쿵푸가 갖는 교류와 다양성을 지키고 옹호하고자 함입니다.

쿵푸, 중화권의 등불

다시 말해, 쿵푸는 중화권을 하나로 묶는 정신이자 문화라고 할 만합니다. 엽문이 궁이를 다시 만나러 가려고 옷을 꺼냈는데 단추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고 하죠. 그러면서 다시 만난 궁이에게 엽문은 그 떨어진 단추를 건넵니다. 그 단추를 달아야 옷을 완전하게 여밀 수 있는 것처럼 엽문은 궁이에게 단추를 건넴으로써 그 자신의 영춘권과 궁이의 궁가 64수를 합하려고 하죠. 다만 <일대종사>가 진한 노스탤지어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건 궁이가 엽문이 건넨 단추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쿵푸는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죠.

이렇듯 왕가위의 영화에서는 ‘단추’와 같은 중요한 미장센이 등장을 합니다. <화양연화>에서는 ‘국수 통’이었죠. 국수 통은 극 중 차우와 수리 첸이 함께 국수를 먹음으로써 서로를 공유한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아비정전>에서는 ‘시계’였죠.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었죠. <해피투게더>에서는 ‘여권’이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을 나눈 아휘와 보영은 홍콩이라는 국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셈이죠. 이와 같은 ‘공유’는 왕가위의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그의 영화가 시간과 공간의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요. 앞서 언급한 화양연화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가위의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역사를 기록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에 자료 화면을 가져오길 즐기고 또한 화면상의 글을 통해 인물의 상태나 감정을 기록하기도 하죠. 그것은 그의 영화가 홍콩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짧은 순간 사랑을 나누기는 하지만 항상 떠나가거나 떠난 사람 때문에 아파하거나 눈물을 흘리죠. 쿵푸가 전면에 나서는 <일대종사>도 이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죠. 엽문은 부인인 장영성을 만나지 못하는 순간, 궁이에게 마음을 뺐기기도 합니다. 처음 대결을 펼칠 때 코가 맞닥뜨릴 정도로 부딪히는 순간은 꼭 섹스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들은 왜 정착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홍콩이라는 지정학 때문일 겁니다. 지금 홍콩영화계에서 홍콩이라는 지정학적 지역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은 두기봉과 왕가위입니다. 지금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었지만 그 전까지 중국은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왕가위 영화 속 주인공들은 홍콩의 운명처럼 어딘가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두려워했죠. 어딘가에 발을 붙이고 있어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그녀를 지나쳐 갈 뿐입니다. 왕가위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스텝프린팅 기법이 단순히 감각적인 화면이 아닌 것은 그런 홍콩의 처지와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이미지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방황하듯 정착하지 못하는 홍콩 사람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준 대상은 바로 ‘쿵푸’였습니다. 엽문이 번영과 쇠락 사이의 갈림길에 선 홍콩의 운명 사이에서, 부인 장영성과 궁이 간에 갈등하는 와중에도 그를 붙잡아 준 것이 쿵푸였죠. 쿵푸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중화권 사람들의 등불이 되어주었습니다. 왕가위가 수년간의 자료 조사 끝에 도달한 쿵푸의 핵심은 무언가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킨다는 행위는 방어한다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대(代)를 잇는 의미에서 쿵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왕가위의 인물들이 어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니 그의 영화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이미지가 자주 반복이 되는데요. <일대종사>는 들고 나가는 이미지가 대를 잇는 행위로 변주가 됩니다. 궁보살에 이어 엽문으로, 엽문에서 이소룡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홍콩의 역사도 이와 같지 않나요. 1936년부터 1953년까지를 다룹니다. 1936년의 광동 군벌 시절은 퇴폐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번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38년 불산이 일본군에게 함락되면서 중국은 쇠락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 접어들면서 홍콩은 새로운 역사기에 돌입합니다. 이때 중화권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쿵푸인 거죠. 중국, 홍콩, 대만 등으로 흩어져있는 중화권을 하나로 묶어준 등불이 쿵푸였음을 왕가위는 <일대종사>를 통해 말합니다.  

양조위, 엽문이 되다

사랑보다 이별에, 과정보다 순간에, 사건보다 감정과 관계에, 여자보다 남자 캐릭터에 집중한 왕가위는 언제나 남자 주인공의 눈 속에 무거운 눈물을 봉인해왔습니다. 하여 표정보다 눈빛을, 흔들림보다 떨림을, 변신보다 변화를, 과장보다 절제를 선호해온 왕가위에게 있어 단 한 명의 페르소나를 꼽으라면 단연 양조위라고 할 수 있겠죠. 이는 왕가위가 초기 <열혈남아> <아비정전>에서 작업했던 유덕화와 이후 작업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유덕화는 몸짓이 좀 과장된 배우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아비정전>에서의 그 마지막에 잠깐 출연했던 양조위의 출연은 이후 왕가위 영화의 페르소나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여요.

양조위는 촬영 전까지 아무 대본도 준비하지 않는 왕가위의 방식을 선호한다고 하죠. “왕가위 감독은 요구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나를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리고 캐릭터 자체로 변화시킨다. 나는 그 방식이 좋다”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양조위의 연기는 말 그대로의 연기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제2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신의 필터를 통과할 만큼의 정보만을 원하는 그에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던진다는 건, 곧 양조위 자신이 아닌 제3자를 연기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 발산이 익숙하지 않은 그는, 몸과 표정의 동선이 화려한 영화보다 미묘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왕가위 영화에서 유독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왕가위는 양조위에게 엽문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떠한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고 하죠. 대신 이소룡에 대해서만 공부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왕가위의 의도는 엽문을 어떤 특정한 형태라기보다 쿵푸 그 자체로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 거예요. 사실 <일대종사>는 ‘엽문’을 경유한 쿵푸 그 자체에 대한 영화이거든요. 이에 대한 양조위의 말을 들어볼까요. “우리에게는 강한 신뢰와 유대감이 있다. <일대종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우리는 완벽한 형태로서의 엽문을 창조하고자 했다.”

양조위가 엽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은 건 그가 신사적이고 교양이 있으며 생각이 깊은 신사라는 점이었습니다. 엽문은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40살이 되기까지 그가 원하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는데요. 2차 대전 이후 그는 모든 걸 잃었고 그가 홍콩에 도착해 영춘권을 지도하기까지의 행보는 공백으로 남아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엽문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고 동물적인 사람이 되었다죠. 양조위는 그에 완전히 매료됐고 엽문의 비전, 즉 긍정적인 캐릭터로서 그가 인생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쿵푸가 무엇인지 아이디어를 얻어 인물에 접근했다고 합니다.  

양조위는 엽문과 이소룡의 관계에 대해 “환상적인 조합이다.”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엽문과 이소룡은 완전히 다른 루트를 통해 동일한 목적지에 달한 사람들입니다. 이소룡이 자신의 글에서 꽤 자주 엽문에 대해서 묘사하고는 했는데 그를 일러 쿵푸인이 아니라 위대한 쿵푸 그 자체라고 묘사를 했다죠. 엽문 또한 쿵푸를 단순한 육체적인 단련이나 자기 방어 수담으로 삼지 않고 삶의 방식으로서 정신적인 수양으로 접근한 이소룡에게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엽문과 이소룡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건 곧 쿵푸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양조위는 얘기했죠.

<일대종사>의 엽문을 연기하기 위해 양조위는 4년 동안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합니다. 극 중 액션을 관객들이 진짜처럼 느낄 수 있도록 팔이 두 번이나 부러질 정도로 연습했다고 하죠. 그러면서 이 과정이 엽문 캐릭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해요. 책이나 자료를 보면서 이해하는 과정과는 달랐다는 거죠. 왕가위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에게 오랫동안 육체 단련을 시켰는지 그 의도를 알게 됐다는 겁니다. 건전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나요? 양조위의 연기를 이해하는 것은 또한 엽문(과 이소룡)을 통한 중국 무술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네마톡
(201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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