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종사> 양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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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는 연기의 ‘최고수’다. 홍콩영화를 말할 때 가장 첫 손에 꼽히는 배우이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다. 그가 이번에 출연한 영화는 영문 제목부터가 ‘그랜드 마스터 Grand Master’인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다. 이 영화에서 양조위는 중국무술의 전설이자 이소룡의 스승으로 더 유명한 ‘엽문’을 맡았다.

엽문은 영춘권의 달인 진화순으로부터 무술을 배웠다. 부인 장영성(송혜교)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영춘권을 연마하던 그는 팔괘장 제창자 궁보삼이 은퇴하면서 강호의 새로운 강자로 도약한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으로 집을 빼앗기고 자식들마저 잃자 부인과 떨어져 홀로 홍콩으로 건너간다. 그동안 궁보살의 딸 궁이(장즈이)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팔극권의 마스터 일선천(장첸)은 일본에 부역한 중국인 반역자를 암살하는 등 각자의 활동을 펼친다. 그와 다르게 홍콩에서 조용하게 지내던 엽문은 영춘권을 전수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그동안 양조위의 행보를 지켜봐온 팬들이라면 <일대종사>의 출연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비정전>(1990)을 시작으로 <중경삼림>(1994) <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 <2046>(2004) 등 왕가위의 대표작에 대부분 출연했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감정을 잘 표출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양조위는 육체를 앞세운 연기보다 감정의 언어를 선호하는 왕가위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엽문이라니? 우리가 언제 무술 하는 양조위를 본 적이 있던가?

무협영화로 마케팅이 이뤄지고 엽문(을 연기한 양조위)의 액션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지만 왕가위는 볼거리가 아닌 정신으로서의, 문화로서의, 종국에는 삶으로서의 중국무술을 파고든다. ‘중국무술이란 무엇인가?’ <일대종사>가 배경으로 하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때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쿵푸가 가장 성했던 시기다. 일본의 중국 침략과 이에 따른 기근, 그리고 대륙의 공산주의 혁명 등으로 중국 피난민들의 홍콩 유입이 대거 이뤄진 상황에서 중화권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다름 아닌 중국무술이었다.  

이에 왕가위가 양조위에게서 주목한 건 ‘모순’이었다. 양조위의 필모그래프는 껍질을 까야 비로소 그 속을 알 수 있는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첩혈가두>(1990)의 ‘아비’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정이 많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씨클로>(1995)의 ‘시인’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한 여인에게 매춘을 알선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그녀를 사랑했기에 고통스러워하며, <2046>의 ‘차우’는 여러 여자의 육체를 탐닉하지만 그런 방탕함은 옛 여인을 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일대종사>의 엽문은 또 어떤가. 대륙을 평정한 영춘권의 최고수지만 전쟁 통에 자식을 잃자 강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잠적의 길을 택한다. 그런 모순된 성격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거역할 수없는 운명으로부터 기인한다. 엽문에게는 애당초 운명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없다. 그래서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세상과 인연을 끊고자 하는 이의 눈은 차갑게 깊어지고 그 속에서 슬픔은 떨어지지 않는 눈물로 봉인된다.  

그런 엽문을 두고 극 중에서는 “눈에 승부 대신 세상이 담겼다”고 시적으로 표현한다. 안 그래도 양조위는 눈으로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독보적인 배우다. 특히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은 겨냥하는 목표물은 없지만 적중률은 백 퍼센트에 가깝다. 그 눈빛은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엽문이 영춘권을 통해 드러내는 중국 무술에 대한 철학도 양조위의 눈빛처럼 흡수를 기본으로 한다. 엽문에게 중국 무술은 승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문파가 다른 이들끼리 서로의 기술을 ‘공유’해 중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 됨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과도한 수식과 몸짓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표정보다 눈빛이, 흔들림보다 떨림이, 과장보다 절제가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도도한 변화를 바라는 엽문의 캐릭터를 더욱 강렬하게 웅변한다. 예컨대,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눈에 띄는 저항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그의 눈빛만큼은 끈질긴 생명력을 담보한다. 이는 생전에 스승보다 더 많은 관심과 인기를 누리며 중국 무술의 아이콘이 됐던 이소룡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배우로서 양조위의 이력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에서 활동했지만 그는 홍콩배우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성룡과 이연걸이 아크로바틱한 몸놀림을 선보일 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감정을 추슬렀고, 주윤발과 유덕화가 남자들의 의리를 위해 숨을 거둘 때 그는 소용돌이치는 운명에 슬픔을 곱씹으며 후일을 기약했다. 가슴에 뚜렷하게 남은 멍 자국과 눈 속에 깊이 각인된 슬픔을 삶의 동력으로 삼는 양조위의 연기력은, 그래서 <일대종사>처럼 미묘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왕가위 영화에서 유독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시사저널
NO. 1244

4 thoughts on “<일대종사> 양조위”

    1. (라이님한테만 들리게) 키가 작고 체구가 왜소해서 놀랐어요. ^^; 근데 진짜 인터뷰하는 동안 그 눈으로 지그시 쳐다보는데 정말 매력있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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