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종사>(一代宗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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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은 영춘권을 전 세계에 알린 그랜드마스터이면서 이소룡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왕가위가 <일대종사>에서 주목하는 건 엽문(양조위)을 경유한 ‘쿵푸’ 그 자체다. 이미 엽문을 주인공을 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일대종사>는 접근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격투로써의 쿵푸를 전시하는 대신 삶이자 정신으로써의 쿵푸에 초점을 맞춘다.

왕가위가 수년간의 자료 조사 끝에 도달한 쿵푸의 핵심은 무언가를 지키는 행위에 있다. 그것은 쿵푸가 홍콩이라는 국가의 운명과 궤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홍콩이 번영과 쇠락을 반복하는 동안 쿵푸 또한 그에 맞춰 군웅할거를 이루기도, 가치를 잃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지킨다는 행위는 방어한다는 개념과는 다르다. 오히려 대(代)를 잇는 의미에서 쿵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왕가위가 이를 대하는 방식은 진한 노스탤지어에 기반을 둔다. 전작을 통해 잊지 못한 사랑(의 파편)을 붙잡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왕가위는 <일대종사>에서도 날로 그 가치를 잃어가는 쿵푸의 혼을 되살리려 애쓴다. 하지만 흑백사진 속 가족과 영춘권 제자들과 함께 한 엽문의 아련하면서도 쓸쓸한 모습은 그것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영광임을 명시하고 있다.

왕가위가 지금 엽문을 소환한 것, 그를 통해 쿵푸의 필요성을 말하는 건 이 시대의 홍콩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 터다. 중국으로 반환된 지 벌써 16년이 된 홍콩은 이제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홍콩으로, 또한 홍콩 그 자체로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양성의 가치를 옹호한다는 것은 홍콩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중화권 구성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대종사>에서 왕가위가 지키는 행위로 쿵푸를 바라보는 것은 다양한 쿵푸 문파들(이 상징하는 중화권 문화)이 존재할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극 초반 엽문이 그랜드마스터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여러 문파들의 쿵푸인들로부터 도전을 받는 것은 승패 여부를 떠나 쿵푸가 지닌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한 <일대종사>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금 홍콩은 언급한 두 개의 정체성 한편으로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과 아슬아슬한 대치정국을 이루고 있다. 지금 다시 쿵푸를 말할 때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왕가위가 돌아왔다.  

맥스무비
(201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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