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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를 두고 현대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모노리스를 모델로 삼아 로봇 타스와 케이스의 형태를 잡았다고 말하는 등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다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터다. 나는 여기에 한 영화를 더 추가하고 싶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걸작으로 꼽히는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1956)다.
<인터스텔라>는 우주가 주요하게 등장하지만, 지구 또한 못지 않은 비중을 가진다. 애초 놀란 감독은 영화의 설정에 대해 “차가운 우주와 따뜻한 인간 감성을 대비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제목에서부터 ‘행성과 행성 사이’를 뜻하는 <인터스텔라>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지구와 우주 배경 사이에 발생하는 사건만큼이나 극 중에는 ‘사이’를 드러내는 개념이 꽤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수색자>로, 놀란은 큐브릭에게서 우주의 신비를, 존 포드에게서 개척의 테마를 가져온다.
우주로 향하는 농부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옥수수밭을 일구고 사는 농부다. 딸 머피(맥켄지 포이)는 아빠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아들 톰도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등 쿠퍼는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것만 같다. 근데 지구가 문제다. 모래바람이 매일 같이 불어닥쳐 정상적인 생활을 힘들게 하고 그에 따른 병충해로 식량 확보도 점점 어려워져 간다. 더는 지구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대신 쿠퍼에게 우주를 탐험할 기회가 찾아온다. 유독 딸 머피의 방에서 이유 없이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모래가 쌓여 특정한 이진법 숫자를 가리키는 등 이상 현상이 생긴다. 이를 해석해 딸과 함께 의문의 장소를 찾아가니 미국 항공 우주국이다. 쿠퍼는 농부가 되기 전 우주 비행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함께 했던 브랜드(마이클 케인) 박사는 쿠퍼에게 인류의 새로운 터전 확보를 위한 우주 탐험을 제안한다.
대의를 위한답시고 무고한 희생을 출혈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고 제안을 받아들인 쿠퍼는 집에 돌아와 걱정을 내비치는 장인어른에게 이런 요지의 얘기를 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죠. 우리는 탐험가이면서 개척자였잖아요.” 그때 이 둘이 얘기하는 장소는 문 앞의 테라스로 맥주 한 병을 들고 의자에 앉아 평원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자세는 흡사 서부 사나이들을 연상시킨다.
쿠퍼와 가족들이 사는 집과 주변의 풍경 자체가 그렇다. 옥수수가 자라지 않았더라면 드넓은 모뉴먼트 밸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이고 그 거대한 평원에 집 한 채 떨렁 자리 잡은 구도는 <수색자>를 금방 떠올릴 정도다. 잡아먹을 듯 밀려드는 <인터스텔라>의 거대한 모래 태풍도 <수색자>의 인디언들이 주인공 가족을 위협하며 말을 타고 달려들 때 생기는 모래바람 이미지와 흡사하다. 하지만, <수색자>의 눈에 보이는 외양적인 설정 외에 우리가 더욱 눈여겨 볼 극 중 관계가 있다.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웜홀, 블랙홀 등의 어려운 과학 이론을 대입하는 한편으로 사람의 감정,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아멜리아(앤 해서웨이)와 에드문드의 관계로 대표되는 이성 간의 사랑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쿠퍼와 머피의 부녀(父女)간 사랑이다.
이성의 차원을 넘어선 사랑
<수색자>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이든(존 웨인)이 인디언에게 납치된 동생 부부의 딸 데비를 되찾기 위한 10년의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든과 데비는 사실 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유사 부녀 관계로 봐도 좋을 만큼 서로에게 애정이 각별하다. 이든은 어린 데비를 만나자마자 두 팔로 안아 올려 애정을 표현한 것만큼 조카의 부모가 인디언에게 모두 목숨을 잃자 그들을 대신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데비를 찾는 데 주력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든은 외양적으로 변한 게 전혀 없지만, 꼬마에서 숙녀로 성장한 데비(나탈리 우드)는 더욱이 인디언 문화권에서 생활한 탓에 어린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런 데비와 마침내 조우한 순간, 이든의 감정은 어땠을까. 심경이 복잡하기는 데비도 마찬가지다. 납치 후 이제나저제나 이든 삼촌이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언제부터인가 기대를 저버리고 살아온 지 오래다. 그렇게 데비에게도 이든 삼촌은 애증의 존재다.
놀란 감독은 <수색자>의 이든과 데비의 관계처럼 <인터스텔라>의 쿠퍼와 머피의 사이를 가져간다. 그러면서 여기에 상대성이론을 대입해 좀 더 극적인 형태를 취한다. 자식 세대의 미래를 위해 우주 탐험을 결심한 쿠퍼에게 내려진 임무는 그에 앞서 탐사를 떠난 12인의 우주인 중 웜홀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보내온 3인이 각각 머무는 행성을 방문하는 것이다.
과연 인류가 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가는 행성은 이곳에서의 1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7년 정도가 되는, 인류의 시간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산처럼 보이는 거대한 파도의 습격에 예상외의 시간을 소비하고 인듀어런스호에 돌아오자 지구 시간으로는 무려 24년이 흐른 뒤다. 머피도 그새(?) 성인이 되어 브랜드 박사 수하에서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한 터. 지구를 떠날 때 그대로인 쿠퍼는 그동안 자신에게 전달된 지구에서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어른으로 변한 딸의 모습을 확인하며 느꼈을 감정은 인디언에게 납치된 후 처음 데비를 대면했을 때 이든이 느꼈을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이들을 헤어지게 한 건 미국인, 더 정확히는 백인 남성에게 부여된 개척의 운명 때문이다. 쿠퍼만 해도 더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기 위해 사명감 하나만 가지고 우주로 나섰다. 전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대의를 가지고 딸과의 헤어짐을 감수하였건만 제안받은 계획 자체가 음모였다면? 여기서부터 <인터스텔라>는 과학적 사고와 논리 대신 감정과 사랑의 위대함으로 관객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흔들기 시작한다.
개척은 미국(인)의 운명
브랜드 박사는 우주 탐험을 제안하면서 망설이는 쿠퍼에게 두 가지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플랜 A는 조건이 맞는 행성을 발견하면 전 인류를 모두 데리고 이주하겠다는 것. 다만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블랙홀 내부의 중력 자료를 가지고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아직 블랙홀 진입에 성공한 예가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플랜 B다. 선택받은 소수의 지구인이 500여 개의 수정란을 가지고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를 재건하는 것. 브랜드 박사의 제안에 쿠퍼는 단호하게 플랜 A가 아니면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쿠퍼가 우주 비행사에서 돌연 농부가 됐던 건 과거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 우주 계획을 세우며 죄 없는 대원들을 희생시킨 전력에 실망한 탓이 크다. <인터스텔라>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피하지만, 개척이 중요한 테마로 작용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미국 개척정신의 실체가 무엇인지 유추하도록 만든다. 더불어, 이 영화가 그 많은 서부극 중에서 왜 <수색자>를 중요한 레퍼런스로 삼았는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색자>는 미국 백인 남성의 개척 정신을 찬양한 기존 서부극과 달리 인디언을 학살한 피의 역사를 반성한 수정주의 서부극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 그래서 극 중 주인공 이든은 심리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인디언에게 적대적인 그는 10년을 찾아 헤매던 조카 데비가 인디언 문화에 동화된 것을 보고는 총구를 겨눌 정도로 인종차별주의자다. 이든에게 정의는 인디언으로부터 백인을 보호하는 것인데 끝내 데비를 받아들이는 건 그녀가 그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깨달아서다. 결국 데비의 뜨거운 사랑이 이든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이든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은 브랜드 박사다. 우주로 가 있는 동안 플랜 A를 실현할 방정식을 풀겠노라며 쿠퍼를 우주에 보냈지만, 브랜드 박사는 처음부터 불가능을 짐작하고 플랜 B를 가동할 계획이었다. 우주에서 써내려갈 새로운 인류의 역사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쿠퍼는 물론 선택받지 못한 다수 인류의 희생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게 브랜드 박사의 입장이다. 쿠퍼와는 대척점에 선 가치로 이는 머피도 마찬가지여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브랜드 박사는 그녀에게 모든 걸 실토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 공을 넘겨받은 머피는 아버지를 위해, 전 인류를 위해 플랜 A의 방정식을 풀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다. <수색자>를 포함해 개척을 다뤘던 거의 모든 미국 영화가 백인 남성을 해결사로 내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인터스텔라>는 여성과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진화를 모색한다. 남자들의 서부극이 대의를 위해 헛된 희생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나아갔다면 <인터스텔라>는 이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화를 가능케 하는 극의 추동력은 바로 ‘사랑’이다. 아멜리아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가치”다.
안 그래도 지구에서 머피가 방정식을 풀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 동안 우주에 있던 쿠퍼도 지구로 귀환할 우주선의 연료가 소진되어 희망이 없어지던 차다. 시간 여행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쿠퍼는 오로지 머피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그 누구도 신비를 풀지 못한 블랙홀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엄밀히 말해 시간 여행은 아니지만, 5차원 세계와 3차원을 잇는 블랙홀 속에서 우주의 쿠퍼는 지구의 머피에게 방정식을 풀 해답을 전수하기 위한 신호를 보내는 데 주력한다. 우주로 떠나기 전 머피의 방에서 있었던 불가사의한 현상은 얼마 후 우주로 떠난 쿠퍼 그 자신이 보낸 신호였던 것이다.
우주적 상상력의 극치
지구와 우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속하지만, 각각의 시공간에서 존재하는 인간들의 삶은 평행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 즉 사랑이 이를 가능케 한다는 걸 <인터스텔라>는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말한다. “우주로 나가면 인간의 죽음은 지구에서 보다 더욱 확실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더 정확히는 ‘미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영화로만 한정해 말한다면, 미국인은 늘 앞장 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왔다. 이것이 가장 강조된 장르가 서부극인데 그래서 서부의 사나이들은 늘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땅을 향해 떠나기를 반복해왔다. 서부극을 우주로 확장한 <인터스텔라>도 마찬가지다. 쿠퍼는 딸과의 극적인 재회를 이룬 후 에드문드를 만나겠다며 또 다른 행성을 향해 떠난 아멜리아를 찾아 머피의 곁을 떠난다.
쿠퍼는 그렇게 미국인의 개척 DNA를 뼛속 깊숙이 지닌 사나이로 계속해서 지구와 우주 사이의 새로운 터전을 향해 떠돌 것이다. 그처럼 영화는 지구와 우주는 물론 이성과 감성, 과거와 현재, 구인류와 신인류 등의 개념과 개념 사이를 유영하듯 떠돌며 극 중 평행우주의 세계를 일궈낸다. 그의 일환으로 <인터스텔라>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수색자>마저 하나로 묶어내며 장대한’ 스페이스 웨스턴’을 완성한다. 그야말로 우주적 상상력의 극치가 아닌가!
맥스무비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