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이파네마‘라고 불리는 해변이 존재한다. 40년 전 이 해변의 풍광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남미의 보사노바 작곡가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 지구 반대편에서 이 곡을 듣던 한국의 젊은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다. 김기훈 감독의 <이파네마 소년>이다. 역시나 해변을 배경삼은 이 영화는 바다 빛처럼 청량하지만 파도처럼 예측하기 힘든 청춘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해변에서 매일 같이 서핑 연습을 하는 소년(이수혁)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은 상상 속 유령 해파리가 유일하다. 첫 사랑과의 이별 후 헤어진 여자 친구를 잊는 게 두려워서다. 그런 소년 앞에 첫 사랑을 닮은 소녀(김민지)가 나타난다. 소년은 깊은 바다 속에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다며 엉뚱하게 접근을 시도하고 소녀는 신비로운 그가 맘에 든다. 하지만 소녀에게도 아픈 첫 사랑의 기억이 있어서 소년이 언제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불안감이 피어난다.
<이파네마 소년>은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극중 소년과 소녀는 지금의 사랑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한편 과거의 기억을 여전히 떨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계에 선 인물에 다름 아니다. “삶의 경험이 어떻게 시작되고 사라지는지, 어떻게 반복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유추해 보건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두 번째 사랑은 결국엔 새로 시작하는 또 하나의 첫 사랑인 셈이다.
김기훈 감독이 연출의 핵심으로 삼는 부분도 바로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심리다. 그런데 소년과 소녀를 구별해 경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상상 속 유령 해파리처럼 현실과 공상 사이를 부유하는 소년의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오가고, 소년보다 현실적인 소녀의 경우,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진행하는 식이다. 인물의 심리에 따른 일종의 대칭 구조로, <이파네마 소년>는 이미 태생부터 그런 형식을 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듯 이파네마는 브라질의 해변인데 한국의 계절 주기와는 정반대인 까닭에 감독은 이에 착안, 주인공들은 여름 해변에 있지만 이들의 기억은 동시에 겨울에 머물고 있음을 표현한다. 첫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이 일종의 균형 (혹은 순환)을 이루며 그 사이에서 아픔과 희열, 그러니까 청춘의 정신적인 성장이 이뤄짐을 상징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건 묘사보다 인물의 심리에 맞춘 디테일한 구조 쌓기에 더 공을 들이는 <이파네마 소년>은 실험적인 측면이 강하게 느껴진다. 9.11 이후 뉴욕의 반전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ANSWER-100 days after September 11>(2002), 실험영화 <Strange, Nerve, Familiar>(2004) 등으로 주목받은 김기훈 감독은 장편 데뷔작 <이파네마 소년>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만 인물의 대사를 지극히 절제하며 이미지와 형식을 통한 이야기 전달에 주력하는 까닭에 불친절한 설명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파네마 소년>은 예사롭지 않은 감독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지만 관객과의 소통에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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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