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네마 소년> 김기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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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감독은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주로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왔다. 장편 데뷔작 <이파네마 소년>은 실험적인 면모가 여전한 가운데 한국영화에서는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청춘영화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반갑다. 관객의 취향과 타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개성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김기훈 감독에게는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라는 보사노바 곡을 듣고 영화의 제목을 지었다고 들었다.
이 곡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만큼이나 리메이크가 많이 됐다. 그래서 여자 가수가 부를 때는 소녀를 소년으로 바꿔 부른다고도 한다. <이파네마 소년>의 제목을 거기서 차용하게 됐다. 우리 영화는 음악이 중요한 모티브가 됐고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들으며 어느 정도의 감정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국과는 정반대 지역인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이라는 존재 자체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때 크리스마스였는데 TV를 보다가 남반구의 해변을 보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한참 여름인 거다. 한국은 이렇게 추운데 저기는 해변에 T팬티를 입은 아가씨들이 즐비하다니. (웃음) 그런 인상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다. 극중 소년의 현재는 여름이지만 기억은 겨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국과는 정반대의 계절 대에 놓인 이파네마 해변이 배경으로 좋을 것 같았다. 

주로 공간에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는 편인가?
내가 속해 있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창작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도 유바리 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느낌에 영향을 받아서다. 유바리는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탄광도시였다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까닭인지 애잔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 느낌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의 겨울 장면 중에 여성 싱어 아스트러드 질베르토가 부른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담긴 LP를 고르는 중고 레코드숍이 등장한다. 유바리 영화제 참석 당시 묶었던 숙소 옆에 있는 레코드숍이었는데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두고 영화에 담게 됐다.  
 
부제가 있다면 ‘소년, 소녀를 만나다’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극중 남녀 주인공 이름은 소년, 소녀로 표기된다. 
<이파네마 소년>을 통해 청춘들의 원형을 보여주고 싶었다. 육체를 드러내는 것도 관객 서비스가 아니라 신화의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몸을 보면 소년 같기도 하면서 어른 같기도 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인데 이 영화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경험 사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거기에 우리의 모든 경험의 원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딱 스무 살의 소년과 소녀를 설정하게 됐다. 

소년 역을 맡은 이수혁의 경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영화와 잘 어울리더라.
이수혁은 패션모델 일을 하면서 실험을 많이 했던 편이라 센 이미지가 강하다. 직접 만나보니 의외로 상냥한 친구였다. 그게 독특한 카리스마와 어우러지다보니 연기 경험이 없더라도 극중 초현실적인 소년 캐릭터와 잘 맞았다. 배우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처음 하는 연기치고 생각했던 것보다 만족스럽게 표현이 된 것 같다.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극중에 살렸다?
그렇다. <이파네마 소년>이 한편으로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나. 이수혁에게도 첫 연기고, 내게도 첫 장편이다 보니까 설레고 두려운 마음이 영화와 동떨어지지 않고 잘 맞았다. 소녀 역의 김민지에게도 함께 그런 얘기를 했다. 너희들에게 이 영화에 필요한 요소를 발견해서 나에게 믿음이 있다. 스스로도 자신을 믿고 인위적인 제3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 캐릭터가 네가 되도록 해라, 고 얘기해줬다.

청춘영화라고 하면 의례히 청춘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격하게 달리는 모습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청춘의 클리셰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의도적으로 관습적인 형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거나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나온 건 아니다. 특별히 어떤 청춘물을 염두에 두거나 보지는 않았다. 다만 에릭 로메르의 <해변의 폴린느>(1983) 같은 경우는 레퍼런스 차원에서 보게 됐다. 이 영화를 기본적인 텍스트 삼아 해변의 느낌에 대해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배우와 스태프들과 공유를 했다.

겨울 해변을 묘사하는데 배경으로 알랭 들롱이 웃통을 벗은 <태양은 가득히>(1960)의 포스터가 보이고 소년이 읽는 책으로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 작품으로 설정해 공상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등 작은 디테일들이 돋보인다. 
소소한 발견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하나. 영화를 구상하면서 숨겨놓은 것들이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책처럼 노골화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극중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장면 중 유령 해파리가 뜬금없이 소년에게 ‘레이먼드 담배’를 피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실제로 레이먼드 담배는 없다. 개인적으로 느와르를 좋아하고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해서 레이먼드 담배라고 붙였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책 중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의 <아홉가지 이야기>를 보면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중년 남자가 꼬마 여자 아이에게 튜브를 태워주는 묘사가 있는데 우리 영화를 보면 소년이 아이에게 튜브 태워주는 장면이 있다. 이 단편을 볼 때 재미있는 인상이 남아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런 느낌을 자연스럽게 담았다.

그처럼 사건 묘사보다는 디테일한 심리나 형식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기승전결의 구조를 통해 기본적인 다이내믹함이나 드라마틱한 힘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결론으로만 치닫는 건 너무 답답하고 독선적이라고 해야 하나. 이야기가 계속 왔다갔다 스스로 재구성되는 것이 좋다.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종합예술로서의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개별적이고 형식적인 특성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관계를 맺는지가 관심인데 내 영화들이 실험적인 경향을 띄는 건 그래서다.  
 
안 그래도,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또한 기억에 사로잡힌 소년과 달리 소녀는 현실적이다. 그런 측면들이 영화 속에서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이 영화는 소년의 꿈일 수도 있고 소녀의 꿈일 수도 있다. 또한 소년의 사연일수도, 소녀의 사연일수도 있다. 내레이션을 도입한 것도 주인공의 내면으로 관객을 확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시점은 소녀다. 그런데 소년의 내레이션이 나오니까 소녀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소년의 고민이 계속 표현되다가 마지막 내레이션을 소녀가 하기 때문에 소녀의 영화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맨 마지막 장면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실에 남아있는 소녀에게서부터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늘 반복적인 경험을 하는데 그 속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지 못한다면 상실감만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이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그 동기가 바로 내가 <이파네마 소년>을 시작한 이유다. 삶의 결과라는 게 현실인 건데 그런 것에 대한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시점에서 관객들 각자가 다르게 보기를 바랐고 다르게 해석하기를 원했다. 혼란스럽더라도 그 혼란을 유도한 거다.

다만 두 개의 시간대가 존재하며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상영시간은 94분이다. 생각보다 압축적이다.
애초부터 90분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도 이 영화에 대해 템포가 느리다고 보는 사람이 있지만 정서적인 디테일을 유지하려면 덜 콤팩트하게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찍어놓은 필름을 다 붙여놓으니 꽤 길었다.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 내가 완성한 느낌이라고 판단을 했다. 전체적인 분량으로 보면 과감하게 잘라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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