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좀비> 새로운 장르적 감수성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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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좀비>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이미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해 2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가 드디어 개봉을 확정했다. 좀체 한국에서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좀비물인데다가 2000만 원대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됐지만 <이웃집 좀비>가 2010년의 한국영화계에 던지는 의미 하나만큼은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좀비종합선물세트

<이웃집 좀비>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영화다. 첫 번째는 <틈 사이>. 피규어 마니아가 혼자 있는 방에서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을 무성영화처럼 묘사한다. 두 번째는 <도망가자>. 좀비로 변해가는 남자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하는 여자의 코믹한 러브스토리다. 세 번째는 <뼈를 깎는 사랑>. 좀비로 변한 엄마를 위해 살을 도려내고 피를 뽑아내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다. 네 번째는 <백신의 시대>.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가 이를 뺏으러 온 괴한과 사투를 벌이는 히어로물이자 액션영화다. 다섯 번째는 <그 이후… 미안해요>. 좀비 바이러스 제거 이후의 세상이 배경으로, 좀비였던 남자가 인간으로 돌아온 후 겪는 차별을 다룬다. 그리고 여섯 번째 <폐인 킬러>. 마감에 쫓기는 남자(혹은 좀비)의 강박에 대한 짧은 이야기이자 영화의 크레디트이다.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기에 앞서 여섯 개의 ‘단편‘이 아니라 여섯 개의 ’에피소드‘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이웃집 좀비>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이웃집 좀비>는 좀비를 주제로 한 여섯 개의 각기 다른 단편을 모은 작품이 아니다. 좀비라는 공통 소재 외에도 여섯 개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하나로 관통하는 일정한 흐름을 갖는다. 이미 간략한 줄거리를 보고 눈치를 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웃집 좀비>는 ‘좀비 바이러스의 발생에서부터 제거 이후’를 시간 순으로 따른다. 떨어뜨려 놓아도 단독 작품으로 무방하지만 여섯 개의 토막(Episode)난 이야기들이 연대기 속에서 하나의 영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4명의 공동 각본, 연출이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이웃집 좀비>는 오영두, 장윤정 부부, 류훈, 홍영근 4인으로 이뤄진 영화제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에 의한, 을 위한 작품이다. <틈 사이>와 <도망가자>는 오영두 각본과 연출, <뼈를 깎는 사랑>과 <폐인 킬러>는 홍영근 각본과 연출, <백신의 시대>는 류훈 각본과 연출, <그 이후… 미안해요>는 장윤정 각본과 연출이고 촬영 장소는 <백신의 시대>만 제외하면 오영두, 장윤정 부부의 살림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홍영근은 연기를, 류훈과 오영두는 촬영을, 장윤정은 특수 분장을 겸업(?)하며 2000만 원대의 제작비를 가지고 각 에피소드 당 최대 3일의 촬영 기간을 넘기지 않으면서 그럴싸한 좀비영화를 완성했다.

특히 좀비물은 창작자의 취향을 심하게 타기 마련인데 <이웃집 좀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틈 사이>가 고함 소리 외에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무성영화의 구조를 띤다면 <도망가자>는 사랑 고백 도중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눈알처럼 B급영화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뼈를 깎는 사랑>은 제목 그대로 고어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사 도중 몇몇 사람이 잔인한 장면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또한 <백신의 시대>와 <그 이후… 미안해요>는 각각 액션과 사회고발의 성격을 섞어 기존 좀비물의 베이스 위에 또 하나의 재미를 얹혀놓는다. 이처럼 <이웃집 좀비>는 좀비물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각기 다른 색깔과 장르적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 이후… 미안해요>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

조지 로메로가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으로 현대 좀비영화의 대중화를 연 이후 좀비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눈에 띄는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조지 로메로가 <살아난 시체들의 밤>으로 미국 사회의 병폐를 은유한 이래 좀비는 학습 능력을 갖추기도 하고(<시체들의 낮>(1985)) 뛰는 것에도 익숙해졌으며(<28일 후>(2003)) 전 세계로 퍼져 로컬 좀비물이 쏟아져 나오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최근 좀비물의 경향은 과거와는 또 다르다. 이전의 좀비물이 주로 장르의 재미 측면에서 발전을 거듭해왔다면 근래 등장하는 작품들은 좀비를 현실 깊숙이 개입시킨다. 다큐멘터리 기법을 도입한 <REC>(2007)를 기점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극에 달한 이때 좀비물은 시대를 반영한 풍자로, 집단의 무의식에 스며든 공포의 발현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이웃집 좀비>의 출발도 바이러스다. 신종플루의 기세가 한풀 꺾인 이후 찾아온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결국 이 모든 사태의 이면에 도사린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와 비리를 전제로 한다. 물론 <이웃집 좀비>는 이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다만 신종플루와 관련한 제약회사의 음모론이 실제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생활형 좀비물’로 각광받는 <이웃집 좀비>의 현실감을 극적으로 높이는 장치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가운데 사회적 메시지가 짙은 <그 이후… 미안해요>가 유독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웃집 좀비>는 실제 오영두, 장윤정 부부의 옥수동 집에서 촬영됐다. 한정된 장소를 가지고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공간인양 영화적 속임수를 쓰는데 여기를 벗어나는 에피소드는 <백신의 시대>와 <그 이후… 미안해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백신의 시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다른 장소에서 촬영됐고 <그 이후… 미안해요>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심리적인 스케일을 외부로까지 확장한다. 이 에피소드는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여자에게 쫓기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좀비였다가 인간으로 돌아와 소수자로 전락한 이들의 힘겨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그 이후… 미안해요>는 <이웃집 좀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영화처럼 보인다.

사실 <이웃집 좀비>는 ‘좀비’보다 ‘이웃집’에 무게중심이 기울어진 영화다. 그 때문에 좀비의 활약상(?)을 기대한 이들에게 다소 심심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소박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발산하는 매력의 정수다. <이웃집 좀비>의 좀비들은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권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총구 앞에서 보호해야할 내 애인(<도망가자>)이자 우리 부모(<뼈를 깎는 사랑>)이고 지켜내야 할 백신(<백신의 시대>)이다. 그것은 한편으론 막강해진 국가권력 앞에서 항의해야할 목소리를 잃고 시위해야할 수족을 잃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 이웃집에 소수자가 살아도 박해하지 않고 이에 대한 편견에 대해 그것이 편견이라고 말할 줄 아는 태도가 이 영화에서 목격된다.

<이웃집 좀비>는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좀비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한국의 좀비물들은 그 시도 자체가 영화의 의미와 등치될 만큼 이벤트성이 강했을 뿐더러 세계적인 조류에서 멀리 떨어진 좀비물에 다름 아니었다. <이웃집 좀비>는 다르다. 최근의 경향을 그대로 따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 눈매마저 날카롭게 세운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이라고 불러도 마땅한 것이다.


저예산의 한계를 극복한 장르 문법

<이웃집 좀비>가 보여주는 새로운 감수성의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은 장르성이다. <이웃집 좀비>는 저예산 독립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저예산의 한계를 장르 문법에 기반을 둔 이야기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독립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개봉했던 독립영화를 보더라도, 김태곤 감독의 <독>은 행복한 가족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공포로, 안슬기 감독의 <지구에서 사는 법>은 권태기 부부의 이야기를 외계인 남편과 지구인 부인이라는 SF적 설정으로, 여명준 감독의 <도시락>은 결투가 허용된 가상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남자의 대결을 액션물로 풀어가며 두드러진 장르적 경향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2009년 독립영화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워낭소리>와 <똥파리>의 전국적인 흥행보다 장르에 방점을 둔 독립영화의 출현이라고 보는 쪽이다. 장르영화는 감독과 관객 간에 화술과 스타일에서 어떤 규칙을 전제하는 까닭에 관객의 흥미를 쉽게 끌어내기 용이하다. <이웃집 좀비>처럼 장르적 범위 안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용인하는 방식은 좀비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 영화가 관객의 거부감을 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장르영화는 굳이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제작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장르 규칙에 대한 강제성이 크지도 않아 이를 비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로 기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저예산에 맞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장르가 저예산으로 가능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집 좀비>가 이미 증명한 바, 이름난 배우의 섭외, 컴퓨터그래픽의 사용, 거액의 제작비 없이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용이하고 볼거리를 강화할 수 있기에 장르만큼 적합한 용기는 없는 셈이다. 다시 말해, 색다른 소재와 파격적인 설정에 드라마를 끼워 맞추는 대신 이야기에 장르성을 강화하고 그 속에서 색다른 시도를 해야 독립영화도 좀 더 지속적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기가 쉬워질 것이다. 

<이웃집 좀비>에서 특히 두드러진 장르적 움직임은 독립영화계의 변화한 인식을 가늠케 한다. 주류 영화계와는 차별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는 예전과 변함이 없지만 이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대중친화적인 사고의 폭이 유례없이 넓어진 게 사실이다. <생산적 활동> <경축! 우리사랑> 등으로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오점균 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다. “이야기를 가장 흥미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는 할리우드 장르 문법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야 한다. 단지 할리우드 것이라고 틀에 박힌 이야기, 전형적인 구성이라고 깎아내릴 건 아니다. 저예산영화들도 필요하다면 할리우드 장르를 적극 받아들여 관객에게 어필해야 한다.” 일상 생활 속에 침투한 생계형 좀비라는 장르적 설정으로 무장한 <이웃집 좀비>가 2월 18일 관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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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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