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 데드>(The Evil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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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관객들에게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슈퍼히어로물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킨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마치고 그가 초심으로 돌아가 만든 <드래그 미 투 헬>(2010)은, 그래서 낯선 작품이었다. 악령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분투기라는 구식의 설정에서부터 수공업적인 분장과 코믹이 가미된 공포연출까지,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작품이 바로 지금의 샘 레이미를 있게 한 <이블 데드>(1982)다.

<이블 데드>의 이야기는 썩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깊은 산 속 외진 별장으로 놀러간 다섯 명의 젊은 남녀가 우연히 죽음의 책에 갇혀있던 악마를 부르게 된다. 봉인이 해제된 악마는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대신 <이블 데드>의 진가는 저예산의 한계를 온전히 저비용 고효율의 연출로 극복하며 제작비($375,000) 대비 785배가 넘는 수익($29,400,000)을 올린 점에서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고립된 별장을 뱀처럼 공격해 들어오는 악마의 시점 숏은 샘 레이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진 카메라 워크다. <스파이더맨2>(2004)에서 닥터 옥토퍼스가 수술실에서 의사들을 살해할 때 등장하기도 했던 문제의 시점 숏은 악마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극도의 공포를 유발하는 효과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늘어난 촬영기간으로 배우가 다 떠난 뒤 애쉬 역의 브루스 캠벨이 1인 다역을 맡아 나머지 장면을 촬영했다거나, 그 과정에서 발목을 삔 캠벨이 바지 안에 부목을 대고 촬영을 감행한 일화 등은 이들이 뛰어난 아이디어로 열악한 환경을 이겨냈음을 잘 보여준다.

사실 샘 레이미는 특정장르에 천착하는 감독이 아니다. <이블 데드> 시리즈가 워낙 유명세를 탄 탓에 공포영화의 특정 브랜드처럼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실은 꽤 다양한 장르를 경유했음을 알 수 있다. <다크맨>(1990)을 통해 안티 히어로를 다뤘고, <퀵 앤 데드>(1995)로 서부극을 연출했으며 <심플 플랜>(1998)과 <사랑을 위하여>(1999)로 각각 스릴러와 멜로의 세계에도 발을 디뎠었다.

다만 공포영화의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이유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샘 레이미는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에게 공포영화는 표피적인 무서움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집단적인 무의식에 스며든 고통의 장르적 발현이다. 예컨대, <이블 데드>에서 죽어가는 친구의 도움 요청에도 겁에 질려 소극적이었던 애쉬는 <이블 데드2>(1987)에 이르러 ‘람보’를 연상시키는 전사로 거듭난다.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세력에 공격당한다는 설정은 당시 레이건 정부 하 공산권을 향한 미국 사람의 불안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물론 샘 레이미가 정색을 하고 현실 비판에 목매다는 건 아니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구식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다. 단지 주인공의 무의식을 잠식한 공포의 실체를 위해서 현실이 필요했을 뿐. 샘 레이미의 공포영화가 주는 묘미의 상당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드래그 미 투 헬>로 다시 <이블 데드>의 세계로 돌아온 샘 레이미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의 공포영화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가학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질리게 만드는 것은 내 장기가 아니다. 나는 그저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구식(Old-Fashioned)의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말하자면, <이블 데드>는 이미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은 클래식한 공포영화다. 하지만 무늬만 공포영화가 난무하는 작금에 <이블 데드>의 면모는 전혀 시간의 때를 타지 않은 첨단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 <이블 데드>는 원래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해영 감독이 선택한 영화였다. 보도(‘<록키>에서 <이블 데드>까지’)까지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필름 수급 문제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로 대체됐다. 카탈로그에 올라갈 글이었는데 취소된 까닭에 여기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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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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