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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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 틸덤 감독의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목만 가지고는 어떤 영화일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사람과 컴퓨터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테스트다. 컴퓨터의 대답이 인간의 대답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그 컴퓨터의 인공지능 지수를 매기는 것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엑스 마키나>에도 중요한 설정으로 사용됐다. <엑스 마키나>에서는 이미테이션 게임 대신 ‘튜링 테스트’로 소개됐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바로 이 테스트를 개발한 영국 출신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에 대한 영화다.

앨런 튜링은 누구?

영화는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자국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꽤 역설적인 상황이다. 앨런은 세계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해독 불가능 암호 에니그마를 풀고 영국이 속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기 때문이다. 에니그마는 24시간마다 바뀌는 완벽한 암호 체계를 갖고 있어 연합군은 이를 풀지 못해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영국 정부는 어떻게든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기밀 암호 해독 기관을 설립하고 앨런 튜링을 채용한다.

체스 챔피언, 언어학자 등 영국 각 분야의 수재들이 총집합한 이곳에서 앨런은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평가받는 ‘튜링 머신’을 개발해 24시간마다 1,590억의 10억 배의 경우의 수를 생성하는 에니그마를 풀어 인류 역사의 변화를 이끌었다. 엄청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영웅의 존재는 앨런 튜링이 41세 나이에 자살한 1954년 이후 50년 가까이 영국 정부에 의해 함구 되었다. 바로 그것이 <이미테이션 게임>이 앨런 튜링의 내레이션을 통해 일종의 회고담처럼 진행되는 이유다.

암호 해독 기관에 근무할 당시 상황이 영화의 주요한 뼈대를 이루지만, 극 중 앨런의 내레이션은 종종 학창 시절을 경유한다. 심문을 위해 되돌아보는 과거이니만큼 썩 좋은 기억은 아니다. 아니, 지우고 싶은 기억에 가깝다. 편집증이 심해 식사로 나온 당근과 콩을 접시에서 정확히 반으로 분리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그를 주변 학생들은 별나다며 괴롭힌다.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앨런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후 암호 해독 기관에서도 팀원은 물론 상사까지 무시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고립을 자처했다.

속된 말로 재수 없는 앨런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제로 앨런 튜링은 평생을 숨기고자 했던 비밀이 있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 학창시절 때만 해도 앨런을 암호학의 세계로 이끈 유일한 벗이자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동성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행여 성적 정체성이 드러날까 친했다는 사실을 부정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럴 정도로 당시 영국은 보수적인 사고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 박힌 상태였다. 영화가 앨런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의 사연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녀 또한 앨런만큼이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갖고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사회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 앨런이 속한 암호 해독팀의 시험 당일에는 여자가 지원할만한 부서가 아니라며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창 튜링 머신 개발을 돕던 중에는 결혼이나 하라는 부모의 성화에 암호 해독 기관을 스스로 그만둬야 하는 위기를 겪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앨런 튜링이었다. 그녀의 재능을 높이 샀던 앨런은 성적 정체성을 속여가면서까지 조안과 약혼을 해 끝내 튜링 머신을 완성,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자신과 같은 약자를 배려한 따뜻한 시선, 어떻게든 전쟁에서의 무고한 죽음을 막기 위해 헌신한 앨런에게 돌아온 건 ‘괴물’이라는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누가 괴물인가? 혹은 누가 더 인간적인가? <이미테이션 게임>은 이 질문을 두고 과거를 고백하는 앨런과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의 존재를 함구했던 영국 정부 간에 벌이는 또 하나의 튜링 테스트다. 영화를 연출한 모튼 틸덤 감독은 심문실에서 앨런의 고백을 듣던 경찰관(말하자면, 영국 정부의 은유)이 끝내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으로 방점을 찍는다.

셜록과 앨런의 이미테이션 게임?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튜링은 영국 TV 시리즈 <셜록>의 홈스 역할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맡았다. 누가 연출을 맡았더라도 동일한 캐스팅을 가져가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컴버배치는 앨런 역에 최적화된 배우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컴버배치는 천재 역 전문배우다. <제5계급>(2013)에서는 해커 ‘줄리언 어샌지’ 역을, TV 드라마 <반 고흐>(2010)와 <호킹>(2004)에서는 각각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위대한 화가이자 루게릭병에 걸린 우주학 박사인 반 고흐와 스티븐 호킹을 연기했다.

유독 컴버배치에게 비범한 역할이 돌아가는 이유는 <셜록>에서의 홈스 연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이 크다. 모튼 틸덤 감독은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소개 장면에서부터 컴버배치가 연기한 홈스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가져간다. 누군가 침입한 것 같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눈에 비친 앨런은 괴짜 천재에 가깝다. 각종 실험기구가 즐비한 집안에서 흩어진 청산가루를 모으던 중 경찰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 청소라면 필요할 것 같다고 상대방을 깔보는 극 중 앨런의 이미지는 누가 봐도 <셜록>의 홈스라 할 만하다.

사람과 컴퓨터는 아니지만, 모튼 틸덤 감독은 셜록과 앨런을 두고 관객들에게 누가 더 컴버배치에 가까우냐고 묻는 듯하다. 제목의 ‘이미테이션 imitation’, 즉 모방의 의미에서 착안한 감독의 의도적인 장난(?)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감독의 대단한 자신감이다. 컴버배치의 이미지를 적극 차용한 채 앨런과 셜록이 다른 캐릭터라는 걸 영화적으로 설득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버배치의 연기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컴버배치는 앨런 튜링 역할로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부문에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해를 산 천재 역이라는 점에서 앨런은 컴버배치가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좌절하고 꺾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도전이라 할 만했다. 튜링 머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끌어들인 조안이 자신으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걸 두고 볼 수 없기에 인위적으로 성적 정체성을 포기한 앨런의 기구한 운명은 관객의 동정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와 같은 앨런의 약한 고리, 인간적인 면모에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 바로 컴버배치의 연기였다.

컴버배치 또한 선남선녀가 즐비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독특하게 생겼다는 주변의 편견에도 불구, 런던 극예술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정통 연기파 배우로서 예사롭지 않은 능력을 발휘해왔다. 소녀를 유혹하는 변태 성향의 귀족 청년을 연기한 <어톤먼트>(2007)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셜록>에 캐스팅된 건 널리 알려졌다. 그와 같은 이중적인 면모는 컴버배치의 연기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앨런 튜링이 또한 그러했다. 불가능한 도전을 즐기는 천재 수학자이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공개적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아이러니.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의 영화이면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영화이다.  
 

시사저널
(20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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