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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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다들 아시겠지만 본 공사 웬만해선 소위 잘 나가거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영화인은 잘 만나지 않음이다. 본 공사가 그렇게 콧대가 높아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이다. 본 공사와의 이념과도 잘 안 맞을뿐더러 무슨 영화만 개봉했다 하면 재래식 언론들이 백미터 경주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이너뷰를 해대는 까닭에 본 공사까정 나서서 호들갑 떨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궁금증을 풀어줬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살인의 추억>. 올해의 기대작답게 개봉하자마자 무더기로 관객을 불러 모았고 지금 추세로라면 머지않아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친구>의 관객 수를 넘어설 만큼의 폭발력을 보이고 있음이다. 그래서 그 인기에 무임승차해 한 몫 잡아볼 겸 봉준호 감독을 만났느냐? 당근 아니다. 당 영화가 위에 열거한 대박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람 후 관객들의 반응이 재밌다, 씨바 돈 날렸다와 같은 단순 의견 피력이 아니라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어느 것이 실제고 허구인지 등 스토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의견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이와 같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언론들이 그것을 풀어주겠다며 던진 질문들의 수준은 과연 어떠했단 말인가? 맨털리티에 대한 모자이크 같다는 둥, 인물과 사건이 구체적인 질감을 읽게 된다는 둥 현학적인 질문을 남발할 뿐 아니라 이너뷰 재료의 답변보다 2.5839배는 더 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게 과연 이너뷰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독자 개무시의 이너뷰를 보면서 본 공사 화르르 불 타오르는 똥꼬를 부여잡고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4월 29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로 비밀리에 꼬셔 불러내었고 <살인의 추억>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관객의 입장에 서서 가장 궁금한 질문들만을 추려 그에게 냅따 던져 보았음이다.

다음은 본 공사와 봉준호 감독 간에  2시간 여에 걸친 접선 내용이다.



첫 질문이니까 간단하면서도 디피컬트하고 난해하면서도 심플한 질문부터 던져보도록 하겠다. 딴지일보는 자주 보나?
그럼요, 되게 좋아하는 매체고 맨날 보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쓸 때도 딴지일보 기사에서 도움받은 것도 꽤 있었는데…


본지 기사가 도움을 많이 주긴 한다. 흠흠.. 근데 어느 기사에서 도움을 받았나?
80년대 짜가 마크에 대한 소고, 그 기사. 프로스포츠, 나이스… 영화에 나오잖아요. “나이키가 아니구 나이스구만” 그거. 저도 짝퉁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 기사를 보니까 딱 총정리가 되더라구요.


아주 난리다. 속된말로 터졌다. 이번 주 흥행 순위 보니까 1등이던데. 영화 쫄딱 말아먹은 감독에서 대박 감독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기분이 어떤가?
별로 실감이 안 나요. 집에 그런 돈이 없는데 우리 와이프가 몇 억 어치 표를 샀나… (웃음) 제가 흥행을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플란다스의 개>도 쫄딱 망했고, 그리고 제가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들도 흥행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모텔 선인장> 경우도 서울 이만 몇 천 그랬거든요. 그래서인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저번에 회사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메가박스 앞을 지나는데 매진매진매진매진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옆에 가봤지. (웃음) 일렬로 늘어져있는 거 그거 바라보면서 좋아 가지구 ‘헤~’ 이러구 전철 타고 집에 갔지. 되게 신기하더라구요.


그럼 언제쯤 되야 실감할 거 같나?
지금은 실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에서 축하전화가 오니까 실감을 하려고 애쓰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당장 모 변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돈 나올꺼 아닌가?
이거 다 계산하구 하려면 한참 걸려요. 정산해서 저한테까지 오려면 오래 걸려요. 그걸 가지고 실감하려면 올 연말쯤이나 되야 되지 않을까… (웃음)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재래식 언론들하고 한 이너뷰처럼 각 잡지말고 걍 친구에게 썰 풀 듯 편안하게 한 번 얘기해봐라.
범죄영화가 찍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혹시나 딴지에서 그런 거 한 번 판매 해 줬으면 좋겠는데, 옛날 동서추리문고 판매 같은 거.


그런가? 알았다. 당 영화가 잭 더 리퍼 사건을 참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 영감을 많이 받았지요. 근데 100년 전의 영국 얘기니까 세부내용과 시추에이션은 워낙 달라요. 잭 더 리퍼라는 이름도 그냥 경찰서에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이름이었지. 그것도 범인 안 잡혔잖아요, 영구미제잖아요. 영구미제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 그런 거에 힌트를 많이 얻었지요.

되게 재밌구 그 시대에 대한 느낌이 화~악! 나요. 런던에서 이 때 사람들이 이런 꼬라지로 살았구나, 이 때 귀족들이 이랬고 이 때 사회상이 이랬고 사건만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냄새가 물씬 나거든요. 우리영화도 시대적인 공기나 분위기가 많이 스며들어 있잖아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 시대에 대한 흔적을 부각 안 시키고 은근히 보여주려 열라 노력하더라.
그런 거 일부러 생색내면 민망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훌륭한 영화들이 이미 앞에 많이 있었구요. 사실 우리 영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형사들이 범인 못 잡는 영화잖아요. 형사들이 실패하는 그 점이 특이한건데, 왜 실패했는지 따져보다 보니까 그것이 시대상하고 맞물린 거였거든요. 되게 무능하고 어둡고 한마디로 조까튼 시대였기 때문에 범인도 못 잡고 우리는 이렇게 엿같이 패배하지 않았느냐, 라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시대상이나 분위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원론적인 질문은 요기까정. 사실 이 영화 만든 목적이 먼가요, 무엇을 참조 했나요와 같은 질문은 본지가 아니더라도 재래식 언론이라든가 주간영화 찌라시덜에서 많이들 했다. 그러니 이런 원론적인 사항이 궁금하면 얘네들 꺼 보시덩가 하시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본 이너뷰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 않나. 썰이 길었다. 그럼 본 이너뷰의
하이라이트 들어간다.)


양복 쫙 차려입은 송재호 아저씨가 등장할 때 기차 길에 서서 후까 잡으며 담배에 불 붙이는 씬 나온다. 그거 <영웅본색>에 대한 오마쥬 아닌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그렇게 등장하잖나.
으하하하하! 기찻길… 상상력 기막히시다. 할튼 <영웅본색>까지는 아닌데 우리 영화가 원체 꿀꿀하다보니까 멋있는 사람도 없고, 간만에 한 번 약간 폼을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함)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그렇고, 귀 재료가 만든 영화엔 항상 뽀일라실이 나온다.
네, 당신 영화엔 왜 항상 보일러실이 나오냐고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구요. 어릴 때 보일러실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 근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실제 그 당시 경찰서를 보면요 미국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이중거울 돼있고 안에서 취조하는 거 밖에서 막 들리구 이런 거 전혀 없었어요. 창고, 보일러실 심지어는 경찰관 옆에 있는 여관있지요, 여관방에 들어가서 방구들에 앉아 가지고 취조하고 이랬어요. 여인숙 같은데 끌고가서 때리고 그 당시에는 다 야매였어요, 야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리얼하게 그런 썰렁한 파이프들 있는 지하실에서 취조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요.


뽀일라실과 관련하여 당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취조할 때 뽀일라 수리공의 등장시간에 대한 것이다. 그 넘을 장시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간엔 뽀일라 수리공이 범인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다, 이거 단서다, 이런 의견덜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해명 바란다.
그러니까요. 저로서는 의외의 반응인데… 너무나 허접한 취조 분위기 있잖아요, 취조하고 있는데 막 왔다갔다하고, 신경 안 쓰고, 옆에선 빤스 입고 취조하고 있고. 너무나 부조리하고 뻘쭘한 그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건데 영화가 워낙 사건이 강렬하다보니까 관객들이 예민하게 단서로 받아들여서 미안하더라고.

난 그냥 뻘쭘하고 조악한 느낌을 살릴려고 한 거였는데. 또 이강산 기사님이 연기가 서투르시다 보니까 느릿느릿 걷잖아요. 웬지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거야. 그런데 그 시퀀스가 그럴 수 있는 시퀀스 같아요. 거기가 드라마의 어떤 핵심적인 몬가를 차지하는 시퀀스가 아니라 박해일이 등장하는 중간 과정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찍을 여유가 있었고 관객들도 드라마, 내러티브 상으로 그 단락에서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눈이 가게 되고 예를 들어 더 긴박하고 아수라장 상황에서는 그런 인물이 심어져 있어도 눈에 띄지도 않죠. 드라마 흐름 탓도 있는 거 같아요.


박현규에 대한 부분도 몹시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박현규가 범인 인 것처럼 몰고 가는데 실제에도 그런 넘이 있었나?
사실 실제 사건에서도 유전자 조사를 받고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언론 상에 거의 범인처럼 발표가 되긴 했었고. 하지만 유전자 결과가 아닌 걸로 드러났지요. 근데 그 인물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언급이 되면 피해가 될 거 같아서 피하고 싶고, 그리고 범인이 아닌 걸로 명확히 판명이 났으니까.


그럼에도 당 영화를 보고 나면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박현규는 투수 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는 것처럼 그 인물의 위치,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니까 박해일 배우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그를 밑그림으로 해서 계속 생각하잖아요. <우울한 편지>를 계속 보내는 놈이 있다, 그가 범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잖아요. 이미 그는 범인 또는 범인 같은 것이고 앞에 나왔던 용의자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라는 느낌이 생성 돼가고 있잖아요.

근데 투수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듯이 그 자리에 해일이가 싹 들어가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미 캐릭터 자체보다 그 캐릭터의 포지션 자체가 드라마 상에 이미 있었어요. 그 인물은 사실 형사나 관객들이 범인을 잡고 싶은 욕구가 되게 강하게 몰고 가는 드라마니까 형사나 관객들의 입장에선 걔가 범인이고 싶어요.

그 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 감식이 아니라고 나오니까 그게 인제 거의 불덩이와 얼음이 충돌하듯이 그 접점에서 뜨거운 경계선이 생기는 거죠. 어떻게 보면 박현규라는 것은 실질적인 사건의 인물, 캐릭터라기 보다는 하나의 어떤 형사나 관객의 욕망이 하나로 집결되는 어떤 포지션인 거 같아요.


본 우원도 박현규가 범인이 아니라는 FBI의 서류장면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따. 그래서 FBI 이 넘들도 조사를 날림으로 했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가 범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김상경의 심정에 동화 돼 버린 거죠. 영화를 보면 얘는 범인이다, 로 몰고 가고 있잖아요. 그니까 <우울한 편지>를 계속 신청한다, 그리고 또 얘가 버스 타고 사라졌을 때 여중생이 죽는다, 손이 부드럽다, 이 모든 것이 강한 심증일 뿐이지 이게 다 정확한 물증은 아니니까. 그 지점에서 형사들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실제 사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서 내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게 사건이 5년에 걸쳐서 일어났잖아요, 초창기 일수록 더 개판이예요. 현장보존도 안 되고. 근데 그 5년 동안 과학수사도 발전을 하더라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실제 사건에서도 여중생이 죽었을 때 거의 클라이막스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땐 정말 형사들이 과학수사를 했어요. 실제 사건에서는 유전자를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보냈어요. 형사들도 정말 승부수를 제대로 던진거지. 그동안은 두들겨 패고 풀려나고 그걸 반복하고 억지 수사만 하다가 이번엔 정말 승부수를 던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는 범인이 아니라고 온 거야. 그거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칼하고 웃기기도 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졌었어요.

영화에도 그게 고스란히 반영이 돼 있어요. 특히 관객들이 영화 안에서 김상경의 시점이나 심정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맨날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그랬다가 정작 서류가 얘를 배신하게 되잖아요. 대사도 “이건 다 거짓말이야” 이러는데 실제 사건에서도 그렇고, 그 비극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침내 과학수사라는 게 본 궤도에 오르고 승부를 던졌는데 거기서는 정작 아닌 걸로 나오니까 얼마나 허망했겠어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도 실제로 있었던 걸 차용한 건가?
그건 실제가 아니라 픽션인데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장치예요. 연극 원작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가 FM 라디오 신청하는 그거랑 무모증 에피소드 그런 건데 연극에 고스란히 있어요.

사실 박현규 캐릭터랑 잘 맞을 거 같기도 했어요. 뽀얀 피부를 한 애가 앉아서 그 음악을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섬세한 그런 느낌과 잘 맞을 거 같기도 했고, 또 유재하가 죽은 가수잖아요. 그 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사람. 그래서 더 끌리기도 했고, 그래서 <우울한 편지>를 하게 됐죠.


마지막 기차 터널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심장이 쪼리뽕 될 정도로 정말 벌렁벌렁하더라. 그 장소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인가? 아니면 현장 헌팅하다가 발견하고 넣은 장면인가?
처음 시나리오에는 기차 클라이막스가 원래 터널이 아니었어요. 그냥 뻥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게 항상 답답했었거든요. 뭔가 아쉽고 클라이막스에서 이런 식으로 풀어 가지고는 과연 비쥬얼한 이펙트가 있을까… 근데 헌팅하다가 터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터널 덕분에 그동안 여러 가지 매듭이 안 풀렸던 생각들이 쫙 정리되면서 참 좋았었어요.


어떤 매듭?
일단 빛과 어둠이 있고 그 터널이 반대쪽은 안 보이잖아요. 박현규가 어둠 속으로 쫙 사라져서 퇴장하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았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는 그 느낌. 대부분 관객들이 잘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송강호가 해일이한테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 치는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그 터널 경계선에 서 있는데 송강호는 비를 막 맞고 있고 박해일은 말짱하게 비를 안 맞고 있어요. 그게 해일이 쪽 표정연기에도 도움을 줬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을 했는데 그 서로 다른 경계선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근데 그건 영화 보면서 느끼기는 힘들어요. 빗소리 사운드가 계속 나기 때문에 별로 인식하기 어려운데 예를 들면 그런 설정이라든가 그리고 터널이니까 기차가 나올 꺼 아니예요. 형사와 박해일을 서로 갈라놓는, 운명적으로 완전히 끝나 버린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FBI 서류를 찢어 놓고. 그니까 터널로 인한 일타사피의 효과라고나 할까 모든 매듭을 다 풀어줬어요.

그 시각적인 느낌하며 터널 그 자체의 느낌도 좋았고 그 이끼가 잔뜩 낀 질감이라든가 어두컴컴한 느낌. 좀 으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더러 터널 때문에 비로소 모든 장면들을 구성할 수 있었고 클라이맥스에 대한 고민이 풀렸어요.

사실 클라이막스 부분은 콘티를 안 해놓은 상태였거든요. 대부분의 씬들이 클랭크 인 할 때 콘티북이 통째로 책이 한 권 있을 정도로 미리 정교하게 짜 놨었는데 클라이막스는 비워 놓은 상태였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 터널로 컨셉을 잡게 되면서 모든 매듭이 다 풀렸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그게 귀 재료가 범인에게 하는 소리라는데?
그거 애드립이예요, 내가 계속 강요한 애드립이지. 장소는 사천의 한 피자집, 때는 늦은 밤. 그거 찍기 며칠 전부터 강호 선배 불렀어요. “잘 모르겠다”와 “아, 씨발 모르겠다” 그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는 건데 내가 강호 형 거기 모가 또 하나 있을 꺼 같아요, 뭔가 하나 더 나와야 한다, 그동안 박두만 역할을 몇 달 동안 해 오셨으니까 박두만 만이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걸 나보다 더 아실 꺼 같다, 모 좀 하나 해 주세요, 내가 강요를 했거든, 괴롭혔어요. 근데 막 고민하면서 죽을려구 그러더라구.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 보면은 마지막에 신하균이랑 강물에 들어가 갔고 “내가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면서 다리 확 짤라 버리잖아, 그게 얼마나 웃겨.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착하다면서 왜 또 짤라 짜르기는. 그 점이 되게 강렬하잖아요. 그 예를 들면서 내가 막 그런 모시기가 있어야 되요, 그랬더니만 괴로워하더라고.

그랬더니 강호 선배가 그 대사를 딱 생각 해 오신 모양이야. 현장에서 딱 한거지. 처음에 스탭들은 대체 뭔 소리야 저게, 멀뚱했던 모양인데 두고두고 볼수록 좋았어요. 그렇게 ‘밥을 먹고 다니냐’ 한 버전도 있고 안 한 버전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를 편집에서 하게 됐지.


그럼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의 주제는 몬가?
주제? 아! 씨바,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특히 말하기 복잡한데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는 정말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이죠.

<살인의 추억>은 제목 그대론 거 같아요. 사실은 살인의 악몽이죠. 역설적으로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없다 그런 건데, 작게 보면 형사들이 실패하는 아픈 기억,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 그 시대의 살았던 우리 모두의 씁쓸한 아픔 같은 거, 그게 주제죠.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가 씨바 이렇게 살았었구나. 저렇게 엿 같은 시대에서 나름대로 낄낄거리면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보면 되게 부조리 하자나요,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잖아. 한복 여고생들이 태극기 들고 뛰어가고 그 때는 그게 리얼한 거였잖아,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부조리 한 거지. 불과 십 몇 년 전인데, 사건 자체도 강렬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저런 꼬라지로 저런 범인도 하나 못 잡고 여자애 죽는 거 하나 못 막고, 그렇게 살았었구나, 슬프다 씨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그게 주제죠 사실.

임상수 감독님이 처음 제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반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우리가 이 꼬라지로 살았었구나, 라는 반응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반응이 가장 기뻣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했고, 그거 같아요.


(사실 당 영화의 주제에 대한 질문을 날렸을 때 봉준호 감독은 웃으면서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본 우원에게 ‘어렵다’는 의미는 아픈 기억을 설명해야 하는 가슴 쓰라림 이런 카인드의 맥락으로 들려왔다. 고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귀 재료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시기 몇 살이었나?
고2때부터 방위병 때까지 걸쳐진, 그니까 대학교 2, 3학년 때까지.

그럼 귀 재료는 당시에도 이 사건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나?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기억이나 관심은 있었죠. 근데 저도 이 영화 다시 시작하고 있기 전까지 다 잊고 있었어요. 영화 작업 들어갈 때부터 그 당시 신문이나 자료 찾고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다가 ‘아~ 이 정도까지 끔찍했었나’, ‘이렇게 많이 죽었었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됐죠.

그렇다면 귀 재료 역시 당 영화를 찍으면서 반성의 기분이랄까, 느꼈겠다?
클라이막스에서 소녀가 죽을 때 민방위 사이렌 등화관제 하면서 불 꺼지잖아요. 마치 그 여자아이는 끔찍하게 죽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 외면하는 거 같은 느낌. 실제 사건에서 그 소녀가 죽은 날이 1990년 11월 15일 이었어요. 우리 매달 15일은 민방위 날이었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에 제가 처음 영감, 아이디어를 받았던 게 그 신문기사의 날짜를 보고 그 여자아이가 그렇게 죽어 가는데 만약에 온 천지에서 민방위 훈련 내지 등화관제 훈련을 하고 있는걸 상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열이 받는 거예요. 등화관제를 지금은 안 하지만 80년대에만 했던 거잖아요. 그게 영화적인 모티브예요. 어둠을 만드니까. 그래서 영화 속에 등화관제가 등장하게 된 거였고, 모두가 셔터문 닫고 커튼 내리고 불 끄고 이러잖아요, 저도 그랬을 꺼란 생각이 막 들었거든요.

그 여자아이 죽었을 때 90년 11월이면 저는 방위병 생활 할 때였고. 웬지 내가 범인이 아님에도 느껴지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거 있잖아요, 우리는 몰랐었고 우리는 다 그냥 모든 걸 방조했고, 우리는 먹고살기 바빴고, 이런 느낌들. 개인적인 반성이라든가 돌이켜 보는 질문 하셨는데 이 영화는 저의 개인적인 느낌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그 시대를 추상적으로 ‘어둠의 시대’, ‘독재정권의 시대’로 설정 해 가지고 꼭 그렇게만 접근한 건 아니예요.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 영화 보면 여고생들 태극기 흔들고 그러는 장면 나오잖아요. 저도 그런 거 동원 많이 됐었거든요. 남학생이지만 전국체전 행사에 동원 됐었고, 그 당시에 학교 다녔던 사람들은 그런 경험 많을 꺼예요, 그렇죠?

그렇다. 본 우원 같은 경우도 올림픽 때 관중 없다고 별루 잼없는 육상경기에 불려나갔던 적이 있다. 닝기리.
괜히 새벽에 나오라고 해서 학교 앞에 청소시키고, 우리가 왜 그런 걸 하냔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열 받는데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거 같아요. 시대상이 영화 속에 반영되지만 그게 일제시대나 그게 아니라 우리가 나 자신도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직접 살았던 시대니까.

실제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당근 만나보고 이너뷰 해 보았겠다?
경인일보라고 있는데 가장 가까이서 빨리 취재하고 정보량도 많고 화성사건은 그 신문이 가장 뛰어났어요. 거기 유일하게 6년 간 다 취재했던 박 모 기자라고 있었는데 그 분한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그 당시 그 지역에 실제 있었던 형사 조 아무개 씨라고 있는데 지금은 전라도에서 여관하고 계세요. 이 양반 인터뷰나 그런 것도 도움이 많이 됐었고. 오고 가며 주민들도 만났었고, 시나리오 쓸 때 그 쪽 동네 자주 갔었어요, 사진도 많이 찍었고.


박두만은 그럼 조 아무개 씨를 모델로 한 건가?
딱 정해진 모델은 아니고 이런 저런 인물들에서 뒤섞었어요. 우리 영화가 연극원작도 있잖아요, 연극원작에서 빌려온 에피소드도 있고. 실제 내가 만났던 형사들, 제가 한 상상력 막 뒤섞여 있어요.


당 영화에 대한 화성주민의 반응은 어떤가? 압박이 들어오고 있나?
직접적인 압박은 못 느껴요. 사실 영화에서는 지명이 전혀 안 나오거든요. 그리고 화성이란 특정지역의 묘사 같은 건 하나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고. 왜냐하면 이게 특정시대에 포카스를 맞춘 거지 지역성에 맞춘 영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화성주민들을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그 동네 가면 괜히 으시시하다, 끔찍하다 그러는데 그건 편견이 있어서 그런 거지 사실 거기 가보면 평범한 농촌이에요. 다른 지역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근데 정말 재수 없게, 운 나쁘게 그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런 것을 겪었던 것일 뿐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시대에 초점이 맞춰있지 그 지역이 특이하다거나 그 동네 풍토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런 접근은 전혀 없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사건 자체에 대해 그거를 스릴러적인 장치로 엽기적인 묘사로써 즐기고 있다거나 이러지 않고 사건 자체에 저의 분노나 슬픔 같은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떳떳한데 그래도 좀 죄송한 마음은 있어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민감하고 잊고 싶고 그럴텐데 본의 아니게 내가 영화에서 그 지명을 거론 안 해도 다른 매체들에서는 무조건 화성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래 버리니까 그 거를 우리가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그런 면에선 죄송하긴 한데, 저는 오히려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주민들께서 직접 영화를 보신다면 아픈 기억이긴 해도 그래도 어떤 카타르시스나 위로를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쉽게 그냥 잊는다고 먹고살기 바쁘니까 잊어버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 기억할 건 기억하자라는 입장이니까 떳떳하지요. 근데 모 심정적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화성살인 사건 수사하면서 잡혀온 용의자 중에 조사를 받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황경일 씨.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명노열 씨라고 그 때 열아홉 살로 걔는 성당에서 헌금한 돈 훔치다 걸렸어요. 그러니까 좀도둑이지. 그 당시에는 무슨 사건이든 경찰서에 오면 일단 한 번 화성사건 쪽으로 물어보고 그러는 거야. 또 여자를 약간 성추행해서 들어왔다 그러면 당연히 물어보고 그 쪽 조사를 하는 거야 옆에서. 근데 명노열 씨는 헌금통에서 돈을 훔치다가 그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고 그랬는데 죽어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서장 모가지 날라 가고 그 밑에도 파면되고 그랬었죠.


송강호에게 그렇게 애드립을 많이 요구했다는데, 그의 애드립엔 만족하는 편인가?
강호 씨의 최대 강점이 절정 초식이라고 해야할까, 우리 영화에서 송강호씨의 연기를 보면 애드립과 애드립 아닌 거에 경계선이 없어요. 하수급 배우들을 보면 써준 대사 다하고 그 다음에 애드립 탁하면 저거 애드립이구나 표나고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신 우리 영화에서 강호 씨의 대사 중에 저게 애드립이다 싶은 게 사실 내가 콘티에 써 준 대사가 있고 반대로 그냥 차분하고 평범한 듯한 대사라서 저건 당연히 시나리오에 있었겠지 생각하는데 애드립인 게 있어요. 그니까 애드립이 애드립처럼 돌출 되지 않아요, 그 경계가 없어. 모든 게 다 캐릭터와 리얼한 품안에 쏴아~ 들어가요. 그게 제일 훌륭한 점인 거 같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강간의 왕국 같은 건 애드립이 아니에요. 콘티에 내가 적어 준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애드립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건 그만큼 생동감 있게 라이브 하게 한다는 거 아니에요. 반대로 상경이 하고 책상에 누워있는 거 있지, 백광호 얘기 다시 하면서 그 때 보면은 상경이가 “두들겨 패야 해” 그러면 “너 많이 변했다” 차분하게 말하는데 그게 또 애드립이에요. 그 대산 시나리오에 없던 거야. 되게 차분하고 드라마의 정곡을 찌르는 대산데 오히려 그런 건 애드립이거든요. 관객들이 보면서 느끼는 “이건 애드립일 꺼야”, “이건 시나리올 꺼야”라는 그게 사실은 되게 많이 달라요.

그 작업하는 게 서로 재밌었어요. 내가 써 주면 거기에 몰 덧붙여서 그 양반이 더 하고, 또 그 얘길 듣고 재밌어서 내가 하나 거기에 만들면 서로 토스하듯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나리오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또 중요한 거는 내가 쓴 것이건 자기가 애드립으로 만들어 낸 것이건 그게 다 박두만 캐릭터 품안에 돌출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거지. 그게 과연 역시 괴물 배우 송강호의 절정내공이 아닐까.


강간의 왕국 씬에서 송강호가 김상경을 날라 차기 할 때 그게 서로 약속이 돼있던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맞은 김상경이 송강호 한테 열라 삐져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촬영 첫 날 첫 캇트였어요. 근데 영화에서도 둘이 사이가 안 좋잖아요. 배우들도 오히려 그 상태로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 신경전을 하면서 갔어요. 근데 뒤에 가선 서로 친해졌어요. 그니까 영화의 흐름과 되게 비슷했어요. 이 장면에서 요구하는 게 액션영화도 아니고 합을 맞춰 가지고 딱 하면 딱 피하고 그런 느낌은 너무 깰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배우들한텐 참 미안하지만 싸워보자 이러면서 무술감독 없다, 안정장비 없다, 그냥 좀 해달라, 했어요.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났고 그걸 다시 반복해서 하거나 리허설을 해서 하면은 생동감이나 리얼리티가 살수가 없는데 강호 선배가 노련하게 리드를 잘 해줘서 상경이는 진짜로 맞고 머리 쥐어 잡히고 되게 고생했죠. 근데 아닌게 아니라 좀 삐졌을꺼야. (웃음) 그 때 나랑 강호형이 가서 막 달래주고, 되게 고생했죠. 이단옆차기도 예상했던 게 아니라 지형 자체가 경사지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구. 사실 그 장면에서 정말 감사 드리고 싶은 것은 물론 강호형도 고맙고 상경이도 고맙지만…


박현규라는 캐릭터에 박해일은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
예, 원래부터 염두에 뒀어요. 그 친구가 99년도에 <청춘예찬>이란 연극할 때 처음 보고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내가 팬이었는데 시나리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랑 모좀 하자, 재밌는 거다, 했어요. 초창기에 시나리오에는 그 인물의 캐릭터 이름 자체가 그냥 박해일이었어요. 근데 계속 준비해 오던 1~2년 동안 박해일 선수가 점점 유명해져 가지고 배우 이름을 극중에 그냥 쓰기가 부담스럽더라구. 그래서 박현규로 바꾼 거예요.


귀 재료는 코미디를 유발하는데 있어 슬로비디오를 많이 이용하는 거 같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 찾았을 때 이성재가 기뻐하는 장면도 그랬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현장 검증할 때랑 채석장에서랑.
맞아, <살인의 추억>에 슬로 모션이 딱 두 번 나왔을 꺼야. 현장검증 때 아수라장 되는 거는 아수라장의 생생한 현장을 오히려 좀 시간이 정지 된 듯이 이렇게 세세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커트 되는 게 빠르잖아요. 뛰어가면서 막 소리지르고. 아수라장 자체를 아수라장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수라장 자체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거죠. 물론 사운드는 시끄럽지만 슬로모션이 딱 걸리면서 그 엄청 뒤엉킨 기자, 형사, 백광호, 그 뒤의 주민들 다 철저히 볼 수가 있잖아. 그 순간 아수라장의 현장에 빠져들었다가 갑자기 거리가 확 생기면서 물끄러미 하나하나를 보게되는 느낌, 그런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정속도로 찍은 버전도 있었어요. 그 진흙창에서 배우들 굴려놓고, “자 슬로우 모션 하니까 한번 더 갈께요” 하니까 그 배우들의 표정이란 정말 너무 미안하드라구. 그렇지만 모르는 척 했지 찍어야 되니까.(웃음) 그러고 보니 슬로모션은 혼잡스러울 때만 썼네. 채석장에서도 그 수 백 명의 공사장 인물들이 모여있는데 송강호의 얼굴로 카메라 쫘악 들어가면서 모든 주변의 그 것들이 확 지워지잖아요. 뭔가 아수라장이었다가 그 아수라장으로부터 확 떨어져 나올 때, 그럴 때 쓴 거 같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근데 귀 재료의 코미디는 독특한 게 이거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 때리게 만드는 성격이 짙다. 네, 은근하고 뻘쭘한 유머가 많죠. 성격이 그래서 그런가? 근데 그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거든요. 코미디 영화에서 웃긴다 그러면 기를 쓰잖아요. 여기서 한번 웃겨주고, 폭소 한 번 이런 게 많은데 저는 그렇게는 못하고 성격상도 그렇고 또 그렇게 하다보면 너무 오바하게 되는 거 같고.

이 영화에서 나오는 웃음은 사실 형사들이 하는 여러 가지 짓거리 때문에 웃게 되잖아요. 무덤가에서 절 한다거나 목욕탕에서 무모증 환자 찾는 거처럼. 그런데 실제 에피소드에서도 그랬고 저는 그 모든 걸 그냥 공포이건 웃음이건 모두가 사실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호러영화에서처럼 여기선 겁 한번 주고, 여기서는 폭소, 여기서는 슬픔, 뭐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건 되게 싫어하거든요. 모든 게 인물들의 리얼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원래 인간들이 항상 희로애락 겪으면서 사니까. 형사들의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니까 그 모든 감정들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당 영화에 대한 기사가 모두 호평 일색이다.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본 우원의 작지만 날카로운 눈은 피해 갈 수 없음이다. 당 영화에서 단점을 찾아냈다. 그것도 결정적인 단점을. 베드신이 너무 짧다.
으하하하! 짧을 뿐더러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지. “빠진 거 같은데?” 이게 다잖아. (계속 웃음)

그러니까 말이다. 보여주려면 좀 더 화끈하게 보여주지 왜 그랬나, 토끼 빠굴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에로틱한 거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런 말하면 강호형이 신경질 내려나? 사실 강호 선배 데리고 에로틱한게 되지도 않지. 근데 하여튼 둘의 관계를 보여준 장면이 나른하고 일상적인 느낌이잖아요, 대낮이지 또 여관에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둘이 동거하는 집이 아니고 여관이란 말인가?
여관이에요. 에로틱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뻘쭘한 얘기하면서 시골 형사의 일상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명랑 빠굴 사회를 앞당기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누워있잖아요, 그러다가 금방 또 백광호에 대한 정보를 듣고. 원래 시골 형사들이 동네 미장원이나 목욕탕 집 아저씨 등 거점을 확보하면 정보가 금방 들어오거든요. 어쩌면 둘의 관계도, 나중엔 애까지 낳고 살지만 아마 그렇게 출발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직접 형사들을 인터뷰 하다가 들은 얘긴데 살 섞어서 나온 정보가 진짜 캡 정보다, 그런 말이 있어. 그냥 어디서 주어들은 정보랑은 완전 질이 다른 정보다 그거죠. 예전에 그런 사건 있었어. 신창원이 레지들이랑 동거하다가 도망가고 그랬쟈나요. 근데 한번 뉴스에 잠깐 나왔던 사건이 있는데, 신창원을 추격하던 형사 하나가 신창원과 동거했던 다방 아가씨를 성추행 비스므리하게 해서 고소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나랑 인터뷰하던 형사는 그 얘기를 하면서, “물론 그게 안 좋은 거지만 그게 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수산데, 노하우야, 그 자식이 성추행하고 그런 건 실수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갔어. 신창원의 여자와 살을 섞으면 그건 정말 바짝 다가가는 거거든. 성공했으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나왔을 꺼야” 이러시드라. 나는 수긍하는 척하면서 들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저건 심하다, 했는데 그런 맥락이 있드라구요. 그러니까 송강호와 전미선의 캐릭터들의 역사를 상상해보면 아마도 그렇게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귀 파면서 백광호 얘기 해 주자나요.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 중요했지.

송강호가 목욕탕에 수사 나갔다 온 후에 전미선과 나란히 눕잖나. 근데 전미선 가슴을 무심하게 만져주 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드라. 그게 감독 생각인지 배우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만져주는, 그거 말이 너무 우낀다. (웃음) 그렇죠. 그게 콘티에 딱 있어요. 부라자 위에 손을 올리는 게 콘티에 있고 저도 결혼생활을 7년 넘게 하다보니까 남녀가 같이 누워있는 분위기는 잘 알죠. 유일한 현장에서의 고민은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을 것인가, 겉으로 만질 것인가인데 나나 강호씨나 베드신 경험이 없고 모질지가 못해서 미선씨 눈치를 딱 보다가 강호선배가 미선씨 죄송합니다 하면서 위로만 했어요…



이렇게 끝났다.


뜬금없나, 그래도 할 수 없음이다. 2시간이나 계속된 질문과 대답으로 봉준호 감독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고 아직 물어볼 꺼리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아쉽게도 그와의 이너뷰는 베드신에 대한 대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니덜이 좀 이해해 주시라. 요즘 봉 감독 좀 바쁘겠냐?


아닌게 아니라 그 날 봉준호 감독은 본지와의 접선을 포함하여 약속이 4건이나 더 있었고 개봉을 전후하여 <살인의 추억>과 관련해서 반복되는 이너뷰에 거의 미칠 지경이라는 표현까정 썼드랬다.


그럼에도 당 이너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한 것이었다. 봉 감독 자체가 본 공사에 몹시 호의적인 인물인지라 친구들끼리 노가리 까듯 반말도 섞어가며 거의 허물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너뷰가 진행됐고 영화가 한창 상영 중임에도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 얽힌 많은 궁금증들을 속 시원하게 까 밝혀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을 이미 보신 독자라도 당 이너뷰를 열람한 후 다시 영화를 보게되면 그 느낌이 처음 볼 때와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 영화가 갖는 주제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역시 본지가 봉준호 감독을 만나 장시간에 걸쳐 이너뷰를 하게된 이유였음이다.


궁금증은 풀리셨는가? 그럼 봉준호 감독과의 이너뷰를 여기서 마친다. 졸라~


(2003. 4. 29. <딴지일보> 사진 편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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