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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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브라운관에서는 1990년대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한창이다. 그와 달리 영화계에서는 2003년의 한국 영화를 기념하는 상영회가 조용하지만 의미 있게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지난 8월과 10월 각각 <장화, 홍련>과 <살인의 추억>을 기념하는 특별상영회가 열려 이목을 끌었다. 일찌감치 전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관객들이 몰린 것인데 두 작품처럼 2003년에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양수 겸장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졌다.

(비록 흥행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 영화사상 전례 없던 외계인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있었고 고급한 사극을 지향했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도 발표됐으며 박찬욱 감독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올드보이>도 그해에 나왔다. <바람난 가족> <황산벌>과 같은 발칙한 영화와 <싱글즈> 같은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고 한국영화사(史)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를 배출한 것도 2003년이었다.    

사상 최초로 2억 명 관객 돌파가 유력한 2013년의 흥행 수치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2003년의 충무로에는 각 장르별 영화가 골고루 나올 정도로 창조적인 기운이 넘쳐났다. 할리우드가 성립한 범죄영화의 공식을 새롭게 비틀었던 <살인의 추억>의 경우처럼 한국영화는 공장식의 찍어 팔기 형태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가 정체성으로 인정받던 그야말로 호(好)시절이었다.

그 출발은 김대중 정부시절부터였을 거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영화계에 1500억 원이 투입됐고 이를 통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창의적인 인재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의 경우, CJ, 롯데와 같은 대기업 주도하에 흥행이 될 만한 영화들만 만드는 지금의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은 한편으로 2003년과 같은 알찬 해가 나오기 더 이상 힘들다는 역설적인 예고이기도 했다. 2003년의 영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04년의 한국영화계에서는 호시절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올드보이>(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사마리아>(베를린 감독상) <빈집>(베니스 감독상)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석권하는 동안 한국영화의 수익률은 1년도 되지 않아 예년의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후로 대기업의 투자, 제작, 배급이 일원화된 시스템이 영화계를 완전 장악하면서 2003년의 다채롭던 시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게 불과 10년의 일이다. 2003년에 발표한 작품들이 시발점이 되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고 장준환 감독은 오랜 만에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발표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50%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다시 한 번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일지도 모른다.

흥행과 천만이라는 수치는 산업의 폭발력을 보여주는 지표일지 모르지만 영화의 질을 입증하는 증거는 아니다. 한해 백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어도 극장,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작품이 특정 회사와 성격의 장르에 치중된다면 이건 불공정한 게임이다. 2억 명 관객 동원과 한국영화 점유율 50%에 더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양성이다. 201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2003년을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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