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와 <풀밭 위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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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가 첫 선을 보이자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극 중 성기와 음모 노출이 있었다며 언론들이 ‘충격’, ‘파격’과 같은 요란한 단어들을 총 동원해 보도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앞뒤 문맥은 싹 거세한 채 자극적인 요소만을 한 줄의 헤드라인 삼아 기사화하는 것이 작금의 언론의 행태다. 육체의 기능이 쇠락한 70대 노()시인 이적요(박해일)가 17세 여고생 은교(김고은)를 만나 젊음을 대리 욕망한다는 이야기로 보건데, 영화의 문맥상 성기와 음모 노출은 그리 충격적이고 파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굳이 <은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창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노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오래된 역사다. 미술 쪽으로 눈을 돌리면,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1865)가 대표적이다. 완전히 옷을 벗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을 모델로 한 그림이 파리의 살롱 드 레퓌제에서 공개되자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관람객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특히 그림 속 여인이 매춘부로 알려지면서 비난의 반응은 분노와 역겨움으로 바뀌었다. 당시 매춘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질병이나 타락, 심지어 죽음에까지 빗대어지는 존재였던 까닭이다.

빅토린 무랑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올랭피아>에 앞서 마네의 또 다른 그림 <풀밭 위의 점심>(1863)에서도 모델이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여기서도 나체로 등장하는데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신사와 점심을 먹는 장면은 대조되는 옷(?)차림과 중앙의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의 구도로 인해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고로 관람객들의 반응이 떠들썩했던 건 당연지사. 이에 대한 당시의 기사를 보면, ‘어떤 이들은 수치심에 소리를 질렀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웃어넘겼지만, 그중에는 작품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라고 전한다. 이는 <풀밭 위의 점심>이 얼마나 논쟁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만하다.

실제로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이 공개되면 논란이 되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예컨대, 전경의 풀밭과 후경의 시냇가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한 방식처럼 전통적인 회화의 관습을 무시한 것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는 보수적인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명망 있어 보이는 신사들이 매춘부와 저렇게 놀아나다니!’라는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마네는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욕망이라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법인데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점잖은 남자가 그 대상이 매춘부라는 이유로 아름다운 나체를 거부한다는 건 위선이자 허위라는 것이다.

정지우 감독은 <은교>를 영화화한 배경에 대해 “원작의 지나친 솔직함에 끌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씨네21 852호 정지우 감독 인터뷰 중에서) 잘 알려졌듯, <은교>는 박범신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박범신은 노인의 사랑, 그것도 상대가 여고생인 것에 대해 “욕망은 중립적인 가치이며 시간차에 따라 구획되는 것도 아니다. 노욕은 따로 없다. 욕망이 있을 뿐이다.’라고 트위터(@parkbumshin)를 통해 밝혔다. 그의 말처럼 욕망은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숨이 멎는 날까지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사회가 임의로 정해놓은 관습이 있어서 금기라 불리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경우, 그 대가는 비극적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창작자들은 금기를 욕망의 자연스러운 형태로 인정하며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기를 서슴지 않는다. 경직된 사회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인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정지우의 <은교>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정지우는 데뷔작 <해피엔드>(1999)부터 금지된 사랑에 초점을 맞춰왔다. 유부녀와 정부(情夫)의 관계에 이어, 31세 여강사와 17세 남고생(<사랑니>(2005)), 일본인 친구를 둔 식민지 시대의 모던보이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모던 걸(<모던보이>(2008))의 사랑까지, <은교>도 일관된 작가의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이들 영화의 핵심은 ‘세상 밖으로’다.

<은교>의 시인 이적요는 대중소설이 가볍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제자 서지우(김무열)의 이름을 빌려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리 만족해오던 터다. 하물려 성적기능이 퇴화한 그에게 욕망이란 그렇게 숨겨야하는 대중소설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서재에 파묻혀 숨어 지내오던 이적요에게 별안간 나타난 소녀 은교는 철저히 잊고 있었던 욕망이 눈을 뜨는 기회로 작용한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자연의 본능이다. 금기를 관습화하는 이성의 감옥, 그러니까 무수한 책들로 둘러싸인 서재를 박차고 극 중 정원으로 묘사되는 자연으로 나와 은교를 사랑하는 이적요의 모습에는 비로소 해방감이 감지되는 것이다. (아직 앎과 경험이 미천한 서지우는 지식으로 습득한 관습과 금기에 매몰된 나머지 17세 여고생을 탐하는 이적요를 비난하며 결국엔 연적이 되고 만다.)

밖으로 나온 금기의 사랑이 비록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정지우는 보듬고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들의 행위가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같다. 그림 속 매춘부와 신사가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에는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이 읽힌다. 마네의 화풍에도 거리낌이 없어서, 숲속이지만 중앙에 스며든 빛으로 인해 서광이 비추듯 그늘의 어두운 부분이 환하게 탈색되어 음습한 기운을 완전히 제거한다. 또한 여자의 새하얀 살결과 남자들의 검은 정장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어 맴으로써 떳떳한 욕망임을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빅토린 무랑 외에 그 옆의 남자들이 (왼쪽부터 차례로) 마네의 처남과 동생인 점도 그림의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풀밭 위의 점심>은 마네가 처음 살롱에 접수했다가 거절당한 후 떨어진 작품을 따로 모은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올랭피아>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상의 금기에 도전했고 동료 화가 자크 에밀 블랑슈의 표현에 따르면, “갖가지 소문과 농담이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고, 거리에서는 이 잘생긴 청년을 노골적으로 비웃었으며 사람들은 이 말쑥하고 단정한 청년을 ‘그 쓰레기를 그린 놈’이라고 불러댔다.”고 한다. 이를 견디다 못한 마네는 결국 프랑스를 떠났지만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는 프랑스 화단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처럼 <은교>의 이적요는 17세 소녀를 사랑한 죄(?)로 끝내 많은 걸 잃지만 그의 사연을 다룬 영화는 전국에서 200만 가까운 관객이 보며 흥행에 성공했다. 창작자들의 사회적 도발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체감하지 못하는 속도로 서서히 조용하게 너그러워진다. 세상은 그렇게 진보하고 변해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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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의 인용구는 <세계명화 비밀>(모니카 봄 두첸 지음 | 생각의 나무)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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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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