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 윈> 폴 지아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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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늙은 테디 베어 인형을 연상시키는 풀 지아매티는 그 외모로만 봤을 때 그리 호감 가는 배우는 아니다. 지아매티의 캐릭터에서 일관되게 감지되는 건 외모에서 기인하는 특징이다. (그는 심지어 <혹성탈출>(2001)에서 원숭이 분장을 한 채 등장했다!) 잘나지 않은 얼굴과 몸매는 역설적으로 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장이요,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원동력 같은 것이다. 비슷한 유형의 배우라고 할 만한 잭 블랙이 그런 신체적 특징을 과도하게 희화화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과 달리 폴 지아매티는 웬만해선 붕 뜨는 법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충실하며 현실에 촘촘히 발 붙인 연기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며 일상의 매력을 발산한다.

지아매티는 필모그래프가 쌓일수록, 극 중 첫인상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볼매’ 배우의 전형이다. 예컨대, 단역과 조역을 전전하던 그는 배우 생활 13년 차에 출연한 <아메리칸 스플렌더>(2003)와 <사이드웨이>(2004)를 통해 일대 전환을 맞았다. <아메리칸 스플렌더>에서 미국 언더그라운드 코믹북 작가이자 시인이고, 집요한 수집광이면서 살림에는 서툰 하비 피카의 복잡한 심리를 연기한 그는 비평가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또한 <사이드웨이>에서는 이혼의 아픔을 와인의 깊은 맛으로 달래는 영어 교사이자 와인 애호가인 마일즈로 출연하며 미국 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바야흐로,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이면서 탄탄대로의 경력을 이어갔다.

연기파에 속하는 지아매티는 스타 파워를 자랑하는 배우와는 사뭇 다른 행보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보했다. <신데렐라 맨>(2005), <일루셔니스트>(2006), <더블 스파이>(2009) 등 메이저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과 <프리티 버드>(2008), <바니스 버전>(2010), <윈 윈>(2011)과 같은 인디 영화의 주연을 오가며 영화라는 그라운드를 폭넓게 활용하는 전천후 배우로 입지를 다진 것이다. 다만 각각의 영역에서 요구하는 연기의 쓰임새를 보면 지아매티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특징적인 이미지라는 표적에 와서 깊게 꽂힌다. 메이저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는 믿음직한 조력자요, 인디 영화에서는 특유의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집단의 화합을 중재하는 캐릭터로 기능하는 것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품이 <신데렐라 맨>이라면 <윈 윈>은 후자에 속한다.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임스 브래독을 다룬 <신데렐라 맨>에서 지아매티는 가난으로 좌절하는 제임스 브래독을 링 위로 이끌어 기어코 위대한 복서로 조련하는 불굴의 링 매니저 조 굴드를 연기했다. <윈 윈>은 변호사이자 레슬링 코치인 마이크가 변호 도중 의뢰인의 손자를 어쩔 수 없이 맡게 돼 대체가족을 이루는 이야기다. 마이크로 출연한 지아매티는 <신데렐라 맨>의 조 굴드와 달리 <윈 윈>에서는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선다. 타인에 호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가족과 손자를 키울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의뢰인 사이를 중재하며 두 가족의 행복을 동시에 충족한다.

<신데렐라 맨>과 <윈 윈>에서 보이는 지아매티 캐릭터 간의 차이는 사실 주연이냐 조연이냐 차이일 뿐, 공통적으로 남을 설득할 만한 능력을 지닌 지적인 인물의 유형을 이룬다. 필모그래프 전체적으로 보건대,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외모나 재산처럼 외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별로 없지만 내적으로는 깊이 있는 인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아매티의 연기가 좋은 평가를 받은 캐릭터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앞서 언급한 <아메리칸 스플렌더>의 하비 피카나 <사이드웨이>의 마일즈 외에도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의 블라디미르 체르코프 역이나 <일루셔니스트>의 울 경감 역할이 그렇다. 이처럼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입체성은 코믹북 작가나 와인 애호가,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의 수제자(<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등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대체하는 지적인 능력에서 획득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지아매티가 가진 출신 배경을 동원했을 때 훨씬 흥미를 돋운다. 예일대학교 졸업생인 그는 드라마 과정의 연기 부문을 수료한 것은 물론 미술 교육 과정까지 마친 예술학도였다. 예술에 조예가 깊고, (또한 Sci-Fi의 열광적인 팬이다) 특히 재능을 보인 연기를 직업으로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집안 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지아매티는 예일대학교 르네상스 문학 교수인 아버지(후에 최연소 총장이 되었다)와 연기자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1967년 6월 6일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뿐 아니라 형은 연기자로, 누나는 보석 디자이너를 성장하는 등 지아매티는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기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다만 그 자신의 외모적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지옥의 묵시록>(1979)의 로버트 듀발이나 <엘리펀트 맨>(1980)의 존 허트와 같은 개성 있는 연기자를 롤모델로 삼아 연기력을 키워왔다. 지금 지아매티의 경력으로 보자면 듀발이나 허트의 명성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간의 연기 활동을 감안하자면 가까운 미래에 그들과 같은 지위를 획득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굳이 그런 연기자가 되지 않으면 또 어떠랴. “나는 많은 것을 갖지 못한 배우다. 어떤 배역이 됐든 연기를 하기만 바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뭐든지 연기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아매티는 스스로의 말처럼 연기를 한다는 자체가 중요할 뿐, 배역의 중요도나 인지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조연 배우라는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한다.” 하지만 출연하는 영화마다 스크린 속에서 거침없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폴 지아매티는 누가 뭐래도 당당하게 연기하는 배우다.

beyond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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