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버스터(?) 시대의 도래와 함께 한국에 수입되는 음악영화에는 나름의 공식이란 게 생겼다. 국내에서만 무려 350만 관객을 동원한 <비긴 어게인>(2013)이 증명한바, 남녀의 달콤한 사랑이 감미로운 음악으로 예쁘게 포장된다. 실제 뮤지션이 배우로 참여해 극 중에서 부른 노래 중 몇몇은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얻는다. 그것이 지금의 음악영화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위플래쉬>(2014)는 그런 선입견을 잠재우는 전대미문의 음악영화다. 남녀 간의 사랑도 없고 솜털처럼 귀를 간질이는 음악도 없다. 음악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스승과 제자가 있을 뿐이다. 플레처(J.K. 시몬즈) 교수는 음악 천재를 만들겠다며 제자를 폭군처럼 밀어붙인다. 이에 질세라 손에 피를 흘려가며 드럼을 두드리는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음악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일념 하나로 지옥 훈련을 악착같이 버텨낸다. 여기서 음악은 멜로디와 가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 역할로 변주된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데미언 채즐 감독은 관객에게 이 영화를 갱스터 영화나 필름 누아르와 같은 범죄물처럼 보아줄 것을 주문한다. 영화 초반, 아버지와 만난 앤드류는 악명 높은 플레처 교수와의 첫 만남의 소감을 전한다. 부자(父子)가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극장. 영화의 카메라는 <리피피>(1955)가 상영 중인 극장 간판을 눈에 띄게 노출한다. <리피피>는 프랑스 범죄물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이제 막 징역을 마치고 출소한 늙은 범죄자가 마지막 한탕을 꿈꾸다 좌절하는 내용을 담았다.
<위플래쉬>는 ‘리피피’ 리듬을 타는 듯한 제목의 필름 누아르 영화를 골라 흑백 필름이 주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 이미지를 옷으로써 활용한다. 첫 만남에서 흰 티셔츠를 입은 앤드류와 검은색 슈트를 입은 플레처는 극단적인 색의 대비만으로 대립을 예고한다. 아니나 달라, 플레처는 앤드류의 드럼 연주가 잘못됐다며 면전에다 철제 의자를 던져대고 총을 쏘듯 잔인한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앤드류는 청중이 보는 앞에서 플레처에게 대드니, 하얗게 순수했던 그의 의상은 어느새인가 플레처가 입은 검은 색의 슈트로 바뀌어 있다.
천재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플레처와 앤드류의 경우처럼 악마와의 거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플레처가 자신의 지도 방식을 두고 앤드류에게 해명 조로 했던 말,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고 가치 없는 말이 바로 ‘잘했어 good job’야” 이에 아무 말 하지 않음으로써 동조하는 앤드류나 플레처에게 인간의 약한 본성은 극복 대상이었던 셈이다. <리피피> 역시 전과가 있는 인물이 다시금 범죄의 세계에 손을 대는 원인으로 인간의 약한 본성을 꼽는다. 물론 플레처와 앤드류가 범죄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리피피>를 예로 들며 음악을 폭력처럼, 연주 무대를 전쟁터처럼 묘사하는 <위플래쉬>는 음악영화를 가장한 범죄물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