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Once)


사용자 삽입 이미지뮤지컬영화는 음악에 관한 영화인가, 음악이 배경인 영화인가. 이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말 그대로의 뮤지컬(musical)은 음악을 앞세운 영화일 수 있지만 꼭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뮤지컬은 사랑이 주제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랑은 그것이 이뤄지기 전까지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이를 표현하기에 현실의 시간을 무시하고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뮤지컬만큼 적당한 장르는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뮤지컬영화는 음악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음악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러브스토리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른다.

“때로는 음악이 말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존 카니 감독의 <원스>는 뮤지컬영화다. 그것도 단돈 십만 달러, 즉 우리 돈 약 9천만 원으로 불과 14일 만에 완성한 저예산 인디뮤지컬영화다. 적은 예산과 기간만으로는 화려한 뮤지컬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만큼 존 카니 감독은 우리가 과거에 보았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뮤지컬영화와는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아트필름 뮤지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원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거리에서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연주하는 가난한 뮤지션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음악이 삶의 전부인 길거리 음악인을 등장시켜 지극히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주인공들이 표출하는 감정을 이들의 노래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 그런 까닭에 <원스>는 음악이 영화 내내 등장할 만큼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이야기를 단순화해 최대한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연주를 통해 하나의 호흡을 이루는 경지의 즐거움을 남녀가 합일하는 사랑의 순간처럼 구성함으로써 음악과 사랑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진행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원스>는 음악이 주인공 남녀의 감정을 대체하기 위한 들러리가 아닌 전면에 나서는 ‘진짜’ 뮤지컬영화다.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음악이 불쑥 끼어들어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든가 율동과 함께 등장해 현란한 화면을 구성하는 경우가 없다. 존 카니 감독은 영화 기획단계서부터 “음악이 시작되면 등장인물들이 주인공 주변으로 모였다가 음악이 끝난 후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식의 뮤지컬영화의 클리셰를 철저히 배제하려 했다”고 나름의 원칙을 정했을 정도다. 대신 하루 일과 중 하나로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리를 걸으며 듣는 자연스러운 행위로서 음악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그 음악들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등장인물의 심정과 사연을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백 퍼센트 구현한다. 가령, <원스>의 남녀 주인공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저 ‘그’ 혹은 ‘그녀’로 지칭될 뿐. 이는 서로에게 감정을 품고 있지만 이름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할 만큼 미묘한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영화의 주제곡인 ‘Falling Slowly’의 가사는 “나는 당신을 잘 몰라요/ 하지만 당신을 원해요/ 이해 못 할 말들이/ 날 바보로 만들기에/ 난 대꾸할 수가 없어요/ 침몰하는 이 배를 붙잡아줘요/ 이제 당신이 자유로워질 때가 왔어요…”와 같은 식으로 그들의 감정을 적극 반영한다.

<원스>는 화려하거나 인공적인 맛은 전혀 없지만 지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뮤지컬영화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뮤지컬영화를 ‘립싱크’에 비유할 수 있다면 <원스>는 ‘라이브’라 할 만하다. 안 그래도 감독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자”고 배우와 함께 의기투합했다니 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 외에 촬영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이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촬영기법은 ‘들고 찍기’와 ‘롱 테이크’다. 노래가 시작되면 라이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웬만하면 다른 각도의 장면이 삽입되는 경우가 드물고 카메라 한 대가 음악이 끝날 때까지 모두 촬영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들고 찍기는 뮤지컬영화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촬영법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주인공인 그가 거리의 악사라는 점에 착안,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원스>가 사실주의에 의거한 뮤지컬임을 알려주기 위한 인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는 기본적으로 영화가 취하고 있는 음악에 대한 존중에서 기인한다. <원스>를 연출한 감독에서부터 두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악을 업으로 삼았던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감독인 존 카니는 베이시스트로 시작해 뮤직비디오 연출에 입문했으며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 역시 밴드 및 왕성한 음악활동 경력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이들은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충만함에 대해 누구보다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 터. 몇몇 되지 않은 관중을 상대로 펼치는 한산한 거리 음악회,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황량한 집 등 초라하기 그지없는 미장센으로 무장한(?) <원스>와 같은 사실주의 뮤지컬은 자칫 영화를 빈곤하게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원스>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뮤지컬영화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음악과 이야기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뮤지컬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이 하나같이 관객의 심금을 울릴 정도로 호소력 있기 때문. <원스>는 과거의 뮤지컬영화와는 정반대되는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장르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차원의 장르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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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53, 354호
(2007.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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