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Mars’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영화 <마션>의 개봉에 맞춰 화성에 소금 개천이 흐른다는 NASA(미항공우주국)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전부터 화성에 대한 소식은 언제나 뉴스거리였다. 2024년부터 매년 4명씩 24명을 화성에 보낸다는 ‘마스 원’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또한, 나사에서 쏜 화성 탐사선 ‘큐리오 시티’가 보내온 ‘드레스 입은 여성’ 사진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많은 행성 중에서도 유독 화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구와 비슷한 환경 때문이다.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인 화성은 하루가 24시간 40분이고 지구와도 가깝다. 이에 미국은 1960년부터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 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래서 화성은 Sci-Fi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한다. <마션> 전에 <미션 투 마스>와 <레드 플래닛>의 우주인들이 외계 생명체를 찾아 화성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필립 K. 딕의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원작으로 한 <토탈 리콜>의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화성의 언덕 위에 있다가 헬멧이 벗겨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오려는 장면으로 기억되고는 한다.
안 그래도 요즘 나는 <화성 연대기>를 읽고 있다. <화성연대기>는 <화씨 451>로 유명한 레이 브래드버리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화성을 배경으로 쓴 30여 편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가 10년 넘는 기간 동안 우후죽순으로 썼던 단편들을 제목처럼 연대기 순으로 모았다. 지구인의 화성 착륙부터 정착하기까지 화성 이주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주’는 미국 역사의 뿌리다.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지금의 미국 역사가 시작됐다. 미국의 백역사는 이를 광활한 자연을 일군 ‘개척 Frontier’ 정신으로 규정하고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학살하고 차지한 흑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미국의 폭력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우려해 화성을 경유한다. <화성 연대기>의 첫 번째 꼭지 ‘로켓 여름’에서 추운 겨울날 지구의 로켓이 착륙하면서 배출한 가스가 화성의 모든 것을 녹이고 인위적인 여름 기온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로켓 여름이라는 시적 표현으로 은유한다. 그리고 마지막 꼭지 ‘백만 년짜리 소풍’에 이르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화성에 온 인간들이 화성인을 어떻게 사멸시켰는지를 보여준다.
레이 브래드버리가 <화성 연대기>의 단편들을 비롯해 한창 작품을 집필하고 있던 1950~60년대 당시는 미국의 우주 탐험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던 시기였다. 1965년 미국의 마리너 4호는 화성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고 1969년에는 아폴로 11호가 역사적인 달 착륙을 이뤄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 ‘우주여행은 우리 모두를 다시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화성 연대기>의 첫 페이지에서 우주여행의 신비에 대해 언급했다.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만큼 미국이 다시는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 테다.
한편으로, 1950~60년대는 수정주의 서부극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수정주의 서부극이란 기존의 서부극이 미국 폭력의 역사를 개척 정신으로 은폐하고 있다며 이를 폭로한 장르였다. 존 포드의 <수색자>,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들 작품에서 젖과 꿀이 흐르던 이상향의 서부는 총알이 난무하고 피와 살점이 튀는 살육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폭력이 판치는 서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되고 (<황야의 무법자>) 오히려 선의 편이라 믿었던 공권력이 실은 악으로 간주하던 무법자들에 의해 처단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며 (<와일드 번치>) 서부의 침입자로 묘사되던 인디언이 미국 역사를 함께 일궈가야 할 동반자라는 사실 앞에서 혼란을 느낀다. (<수색자>) 그와 같은 불온한 기운이 미국 기성세대의 베트남전 옹호에 맞선 플라워 세대의 저항과 맞물리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폭발을 불렀고 서부극은 물론 수정주의 서부극은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화성 이야기를 하면서 서부극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마션>을 비롯해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서부극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부극의 문법을 이어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체면이 깎인 개척 정신의 긍정성 복원을 우주 배경의 Sci-Fi로 이루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급한 영화들을 개봉 순에 따라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을 연대기로 따라가다 보면 <화성 연대기>에서처럼 어떤 흐름이 감지된다. 이들 작품은 모두 지구로의 귀환을 결말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는 우주선을 수리 중 파편을 맞고 우주 미아가 되어 헤매던 중 가까스로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인터스텔라>의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인류의 새로운 터전 확보를 위해 우주 탐험에 나섰지만,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딸을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간절히 바랐다.
압권은 <마션>이다. 동료들과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모래 폭풍의 충격을 홀로 화성에 남은 식물학자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 기지 안에 감자밭을 일구는 등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다행히 생명을 보전하는 데 성공한 와트니는 자신의 생존을 지구에 알려 우주인 동료들과 NASA의 도움으로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인류의 땅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다.
지구로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마션>은 <그래비티>의 모티브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와트니 역의 맷 데이먼이 어느 행성에 고립된 우주인을 연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인터스텔라>의 설정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마션>은 두 영화가 이룬 토대 위에서 더 나아간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그래비티>의 스톤 박사는 지구의 땅을 밟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지만, <인터스텔라>에서의 지구는 더는 인류가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쿠퍼는 우주로 나가고 딸이 보고 싶어 지구로 돌아온 후에도 또다시 새로운 행성을 향해 우주선에 오른다.
그리고 <마션>의 와트니는 본의 아니게 화성에 남게 됐지만, 낮 영상 35도, 밤 영하 63도까지 떨어지는 불모의 땅에서도 살아남을 수, 아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증명한다. 의미하는바, 지구로의 귀환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그래서 <마션>의 결말 역시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 와트니가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또 다른 출발을 예비한다. 제2의 와트니 들이 다시 한 번 우주로 향해 나아가는 장면으로 화성 탐사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개척(실상은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은 미국의 운명 같은 것이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미국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새로운 땅을 찾아 길을 닦는, 소위 개척 정신은 미국인의 유전자로 이식됐다. 서부는 개척 정신이 발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할리우드는 이를 배경 삼아 서부극의 장르를 발전시켜왔다. 메마른 모래 만이 바람에 나려 을씨년스러운 땅 위에 철도를 놓고 도시를 건설하니, 서부극은 미국의 신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선전물이 되었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거짓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정주의 서부극을 만들거나 이에 열광했다. 강조하건대, 서부극은 신화의 세계다. 수정주의 서부극은 아름답게 포장된 미국 개척 정신의 신화를 깨는 장르다. 수정주의 서부극을 통해 미국 역사의 민낯이 폭로되면서 서부극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수정주의 서부극만이 드문드문 등장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게 이 장르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부극은 사멸했다고 할 수 있을까. 수정주의 서부극을 통해 위험한 곳으로 전락한 서부의 대체지를 물색하던 할리우드가 찾은 신세계가 있다. 바로 ‘우주’다. 예컨대, <마션>의 화성 배경은 와트니에게 우주 헬멧 대신 카우보이모자를 씌우면, 화성탐사차량이 아니라 갈기를 휘날리는 말 위에 앉히면 영락없는 서부에 가깝다. 와트니가 감자밭을 일구는 거주 모듈? 서부 사나이가 잠시 목을 축이고 쉬었다 가는 오두막이 연상되지 않는가. <마션>의 화성은 서부극에서 묘사했던 바위산과 모래로 뒤덮인 개척 시대의 미국 서부와 무척이나 닮은꼴이다.
할리우드가 우주 개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머나먼 행성으로 탐험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이 시점에 집중하고 있는 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미지의 행성으로만 인식되던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다음 단계, 즉 정착을 위한 움직임도 예전과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마스 원’ 계획과 더불어 NASA는 인류의 화성 착륙을 2039년으로 못 박고 하와이에서 모의훈련을 진행 중이다!) 이의 배경을 이해하면 <마션> 국내 포스터의 홍보 문구,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는 좀 다른 의미로 와 닿는다.
개척을 사명으로 삼는 서부 사나이들은 어딘가에 정착하는 법이 없다. 사람이 정착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 서부 사나이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서부극의 이야기 구조다. <마션>의 와트니는 비록 서부 사나이는 아니지만, 화성으로 다시 나갈 일은 없겠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우주인의 이름으로 화성으로, 또 다른 행성으로 나아가 개척 정신을 전파할 예정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우려처럼 미국이 우주를 서부에서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서부를 우주로 대체한 Sci-Fi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화성은 지금 그 시험대에 올랐다.
ARENA HOMME
2015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