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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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은 김려령의 동명소설을 <완득이>(2011)의 이한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거기에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등 지금 가장 잘 나가는 아역 배우들이 총 출동하는 작품이니만큼 팬들의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더 많은 관심을 모으는 배우는 따로 있다. 바로 김희애다.

김희애의 영화 출연은 무려 21년 만이다. 1993년에 발표된 <101번째 프러포즈>에서 그녀는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첼리스트를 연기했다. 숫기가 없어 선 자리에서 매번 퇴짜를 맞는 노총각의 순수한 사랑에 감동을 받는 사랑스러운 여인 역할이었다.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그녀의 미모가 가장 뛰어났던 20대 시절에 출연한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실제로 김희애는 채시라, 고(故)최진실과 함께 199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라디오 프로그램 <김희애의 인기가요>를 진행하며 높은 청취률을 기록했다. 잠시나마 가수(?)로 활동하며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곡으로 당시 음악 프로그램의 대표 격이었던 <가요톱10>에서 오랫동안 상위권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니, 지금 세대들이 보기에 김희애는 전성기를 진즉에 넘긴 왕년의 스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마 그 계기는 <꽃보다 누나> 때문이었을 터다. <꽃보다 누나>는 젊은 이승기가 누나뻘을 훌쩍 넘기는 여배우들을 ‘모시고’ 터키와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김희애는 가이드를 해본 적이 없어 쩔쩔 매는 이승기를 뒤에서 다독이며 도움을 주는 자상한 태도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샀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꽃보다 누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희애는 남편을 잃고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 엄마 현숙 역할을 맡았다.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쉽지 않지만 내색은커녕 두 딸과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웃음을 잃지 않는 엄마다. 그런 엄마와 첫째 딸 만지(고아성)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발생한다. 언제나 밝고 명랑하던 둘째 딸 천지(김향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남편에 이은 둘째 딸의 죽음까지, 엄마 현숙은 속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만지와 단 둘이 사는 삶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우아한 거짓말>의 언론시사회 당일, 상영이 끝난 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21년 만의 영화 출연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김희애가 답변 도중 그만 울음을 터뜨려 주변 분위기를 숙연케 한 것이다. “많은 주제의 이야기가 있는 다양한 영화들이 존재하지만 한 번 쯤은 꼭 다뤄져야 하는 소재라고 생각해서 이 작품에 동참하게 됐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니까 내가 연기를 제일 못 한 것 같다. 어쩜 이렇게 다들 연기를 잘 하나”
 
그녀가 느낀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우아한 거짓말>은 감독의 연출력보다는 원작소설의 힘과 이를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열연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특히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등 아이들의 사연이 중심에 서는 만큼 김희애는 전면에 나서는 대신 이들의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야 말로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엄마들의 의무일 텐데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희애는 함께 연기하는 아역 배우들이 빛나도록 절대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는 것이다.

대신 그녀는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연기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에 따뜻함을 부여한다. 예컨대, 딸 천지의 죽음에는 그녀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화연(김유정)을 비롯해 몇몇이 개입되어 있는데 엄마 현숙은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용서의 덕목을 몸소 실천하며 이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바로 그와 같은 설정을 살리기 위해 엄마의 포용력과 누나의 포근함을 모두 겸비한 김희애를 이 영화에 캐스팅할 이유일 테다.

이는 단순히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그 하나 만으로 나올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녀는 좋은 연기자이면서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엄마이기도 하다.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에게 보여준 누나의 역할 외에도 그녀는 여행 도중 시간이 날 때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화나 문자를 통해 안부를 묻는 등 엄마의 정체성도 결코 잃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우아한 거짓말>에서 김희애가 보여주는 연기를 일러 ‘생활 연기’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우아한 거짓말>처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화려함이다. 김희애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가진 화려한 미모를 철저히 벗어던진다. 그녀의 얼굴엔 화사한 미모 대신 피붙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이를 감내하느라 쌓인 피로감이 깊게 배어있다.

김희애가 간담회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개인적으로는 그녀에게서 현숙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자신의 연기를 질책하는 그녀의 울음은 극 중에서 딸 천지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의 자책감과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기자들이 김희애의 울음이 진짜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이한 감독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완벽히 표현하는 배우이다.” <우아한 거짓말>을 보게 된다면 김희애를 향한 이한 감독의 찬사에 상당 부분 동의하게 될 것이다.  

시사저널
NO. 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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