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표종성이 절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류승완 감독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 대해 “내 필모그래피 최초의 멜로드라마”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이에 더해, “영화가 뒤로 갈수록 서부극의 구조를 따르는 것 같다.”고 나름의 인상을 덧붙였다. 류승완 감독은 나의 의견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중요한 건 <베를린>이 남북한의 첩보원이 등장한다고 해서 단순히 스파이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혹자는 북측의 첩보원 표종성(하정우)과 련정희(전지현)와 동명수(류승범), 남측의 국정원 요원 정진수(한석규)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 아랍의 테러 단체 등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생소한 조직도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다. <베를린>은 그 자신이 철통같이 믿었던 조직에게 버림받은 우리의 주인공들이 존재 증명, 즉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 까닭이다.

개인적으로 <베를린>에 700만이 넘는 관객이 몰린 것은 이와 같은 설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쪽이다. 극 중 동명수를 제외하면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네 처지와 그렇게 닮아있을 수가 없다. 스파이라는 특별한 세계가 등장하지만 그 세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행동은 현실 세계의 여느 조직에서도 쉬이 목격할 수 있는 풍경에 가깝다.

예컨대, 표종성은 귀신 같이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여 ‘고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북한의 영웅이다. 하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지도 체제가 바뀌면서 혼란한 틈을 타 권력을 잡으려는 동명수의 계략에 표종성은 하루아침에 배신자로 전락하고 만다. 표종성은 그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걸었건만 당성을 의심받고 급기야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기에 이르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혼란의 정체는 개인의 욕망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무조건적으로 조직에 충성한 결과다. 그것이 어디 표종성의 경우에만 해당할까. 가족 내에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신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버지 세대 대부분의 경우, 오로지 잘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건만 지금은 어떤가. 부인으로부터 황혼 이혼 당해, 자식들로부터는 경멸스럽다며 외면받기 일쑤다.

그들에게 조직은 곧 자신 그 자체다. 이들은 조직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면 자기 존재가 부정당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이들은 욕망에 근거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조직이 원할 거라고 판단되는 어떤 것에 왕왕 자신의 모든 걸 바치고는 한다. <베를린>의 정진수가 그런 유형에 속할 터인데 (극 중 표종성이 “난 당신이 목숨까지 거는데 이해를 못하겠어.”라고 하자 정진수는 “일인데 무슨 이유가 있냐.”라고 답한다.) 류승완 감독은 우스개처럼 ‘어버이 연합’이 모델인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버이 연합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수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극우적인 쓸모만 무조건적으로 고집하는 집단 속에서 개인의 가치나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버이 연합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더 큰 맥락에서 우리 사회가 지금의 성장에 이르게 된 데에는 대기업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는 전제가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과정에서 조직이라는 가치는 개인의 행복을 억누르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 절대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첩보물은 조직이라는 시스템에 희생당한 개인의 가치를 설파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장르다. 최근의 첩보물, 즉 <본> 시리즈부터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이들 영화들은 하나같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극을 이끌어가는 심지로 삼는다. 예컨대, 불법 무기 거래 현장 습격의 실패로 조직의 불신임을 받자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정진수와 달리 동명수의 음모에 넘어가 부인 련정희를 스파이로 오인하고 급기야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표종성은 심각한 딜레마를 겪게 된다.

결국 정진수와 표종성은 ‘짐이 곧 조직’이라는 신념이 무너지자 반응하게 되는 두 가지 경우의 수라 할 만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쪽은 당연히(!) 표종성이다. 그게 꼭 <베를린> 속 상황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정진수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 없이 시스템이 ‘강제한’ 삶의 방식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니까, 북한 정권으로부터 속된 말로 ‘팽’을 당한 후 조직으로의 복귀를 호소하기보다 오히려 총구를 겨누는 표종성은 <본>의 제이슨 본처럼 시스템 상의 버그와 같은 존재다.

이런 버그 들이 조직의 요구에 의해 표준화된 인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은 인간으로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감정’이다. 정진수처럼 조직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이들에게 개인의 행복은 애당초 순위에도 들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그 무엇이다. 사랑? 련정희가 “뱃속에 애가 있어요.”라고 하자 “그건 내 애는 아니잖아.”라고 응수하는 것이 정진수다. 그에게 사랑은 이처럼 먼 나라, 남의 사연일 뿐이다. 그런 이들에게 가족은, 이웃은, 친구는 단순히 일의 대상일 뿐이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증발된 순수한 상태의 개인적인 감정이다.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을 일러 멜로드라마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표종성은 동명수로부터 아내 련정희가 미국과 내통하는 첩보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근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의심의 정체는, 련정희가 사랑했던 표종성은 북한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인 건지, 자연인으로서의 그인 건지에 대한 딜레마다. 전자이면 인간병기로서 조국을 위해 아내를 버려야만 하고, 후자이면 인간적인 감정을 앞세워 아내를 얻는 대신 조국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도 그와 같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소수의 풍족한 자들을 제외하면 우리는 매일 같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인간적인 삶을 하나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조직에 속해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의 행복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간적인 삶을 누리겠다며 조직의 논리에 등을 돌리게 되면 자유를 얻는 것과 동시에 배고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베를린>을 두고 서부극이라 언급했던 건 후자의 경우와 관계가 있다. 이는 단순히 표종성과 동명수의 목숨을 건 마지막 대결이 서부극의 무대를 연상시키는 벌판에서 이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부극의 주인공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자유 수호가 그의 의무이기에 애초 조직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웬만해서 혼자 움직이는 서부극의 주인공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자다. 그는 정착하지 못한 채 늘 어딘가로 떠돈다. 표종성의 처지가 꼭 그렇다. 련정희가 목숨을 잃었기에 그에 대한 복수심 차원에서 베를린을 떠나 북한으로 향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을 선택한 그에게 이제 돌아갈 조국 (혹은 조직) 따위는 없다.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의 결말을 두고 속편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만약 제작이 되어 표종성이 복수에 성공하더라도 그는 다시 북한을 떠나 어딘가로 향할 수밖에 없다.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인터뷰 말미에 “<베를린>의 특수한 세계를 일반적인 조직으로 치환하면 우리가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고 얘기했다. 류승완 감독은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며 <베를린>을 만들면서 “사람은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제야 그가 이 영화를 두고 말한 멜로드라마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지금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시스템에 들어가기를 갈망하고 조직은 그런 개인을 희생양 삼고 있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분노하는 우리 안의 표종성이 절실한 시대다.
 

ARENA
2013년 4월호

4 thoughts on “우리 안의 표종성이 절실하다”

  1. 쓸쓸하네요. 조직..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히 조직을 벗어나면 무엇을 하든 힘이 들어요. 올초부터 조직을 벗어나 개인으로 활동하려 했지만 그것이 너무 힘들어 벌써.. 반 포기 상태에요. ㅋ

    1. 그래도 이쁜이님은 조직의 룰에 완전 충성하지는 않잖아요, 허구헌 날 반차 아니면 결근 ㅋㅋ 농담이고요 ^^; 예, 맞아요. 조직에서 벗어나서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큰 맘 먹고 조직에 투신하면 막 조직이 없어지고 ㅜㅜ 그래도 이쁜이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

    1. ㅜㅜ 전 아직 [헤이와이어]를 못 봤어요. 많은 분들이 좋은 영화라고 평을 하던데 기회되면 꼭 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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