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우디 앨런이 깨달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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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한동안 영국 런던(<매치 포인트><스쿠프><카산드라 드림>)에서 영화를 찍다가 이번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갔다. 한국에서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제목으로 개봉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Vicky Cristina Barcelona>가 그것이다. ‘뼛속까지 뉴요커’로 잘 알려진 우디 알렌의 필모그래피에서 고향을 떠나 타지를 전전하고(?) 있는 영화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디 앨런의 심적인 변화가 느껴지는 것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우디 앨런 특유의 코믹한 연애극이다. 비키(레베카 홀)와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는 단짝 친구지만 애정관만큼은 물과 기름이다. 약혼자 있는 비키가 욕망을 자제하는 편이라면 크리스티나는 솟구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비키는 논문준비 차, 크리스티나는 휴가 차 바르셀로나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서 멋진 화가 후안(하비에르 바르뎀)을 만나 동시에 사랑하게 된다. 비키는 후안과의 불장난같은 사랑이 죄스러울 지경이고 반면 크리스티나는 아예 그의 집에 들어가 동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후안의 전처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가 등장하면서 관계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서로를 견제하던 크리스티나와 마리아가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후안까지, 이들 셋의 기묘한 동거가 펼쳐지는 것이다.

내용은 얼핏 복잡한 것같지만 영화가 말하는 바는 꽤 단순명료하다. 애정관이 서로 다른 비키와 크리스티나를 앞세워 좌충우돌하는 연애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칠순 넘은 노예술가의 삶의 통찰력이 깊게 배어 있다. 누구의 애정관이 옮고 그르냐는 대결구도를 넘어 삶은 완벽할 수 없기에, 그래서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진행될 것같았던 이들 주인공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완벽한 사랑의 형태를 지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착했기 때문이다. 집착은 결국 또 다른 집착을 낳기 마련인데 고로 완벽은 허상일 뿐이라고 우디 앨런은 말하는 것같다. 한때 주변의 부러움을 살 만큼 완벽한 커플로 군림하던 후안과 마리아가 서로 죽이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건 완벽한 사랑을 꿈꾸다 이루어지지 않자 틀어진 경우일 터다. 크리스티나도 다르지 않다. 셋의 동거생활에 만족하던 중 갑자기 도진 공허감으로 후안과 마리아에게 결별을 고하니, 완벽이란 것도 실은 완벽한 상태가 아닌가 보다. 즉, 이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완벽하지 않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끌고 가는 동력일 뿐 아니라 우디 알렌이 내세우는 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연애극이지만 달콤한 사랑의 순간보다 싸우고 집착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극중 마리아의 대사를 빌자면, “충족되지 못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로맨틱하다.” 우디 앨런이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비단 그것이 이 영화 속 사랑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면 이 험한 세상에 대처하는 우디 앨런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필모그래피를 자세히 살펴보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멜린다와 멜린다>(2004) 이후 꽤 오랜만에 맛보는 우디 앨런표 특유의 ‘생활밀착형’ 코믹 연애극이다. 하지만 <매치 포인트>로 시작된 런던 삼부작에는 생활보다는 사건이, 희극보다는 비극적인 요소가 극을 지배했다. <매치 포인트>가 웃음기 빠진 치정극이었다면 <스쿠프>는 후반부 갑자기 심각해지는 연쇄살인범 얘기였고 국내 (수입됐지만) 미개봉인 <카산드라 드림 Cassandra’s Dream>은 부와 출세를 쫓다 패가망신하는 두 형제의 비극이었다. 뉴욕 시절의 생기발랄했던 영화와 비교하자면 이는 우디 앨런에게 큰 변화였다.

우디 앨런은 왜 갑자기 뉴욕을 떠난 걸까. 알려진 바로는 제작비 유치가 뉴욕보다 수월해 런던과 바르셀로나로 배경을 옮겼다고 하지만(<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바르셀로나 시의 적극적인 제안과 후원으로 이뤄졌다!) 그 외에도 우디 앨런 나름의 사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면서 줄곧 든 생각인데 새로운 예술적 이상향을 찾아 유럽에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우디 앨런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페데리코 펠리니, 잉그마르 베리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유럽 출신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습관처럼 얘기했다. 그는 늘 유럽을 꿈꿨다. 다만 뉴욕도 예술적인 환경에서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곳인 만큼 영화 찍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테다. 문제는 9.11 이후 뉴욕은 과거와 달리 예술 하나만 생각하기에 너무나 정치적인 장소가 됐다는 점이다. 비행기 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우디 앨런이 <매치 포인트>를 위해 런던행을 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법. 그에게 뉴욕은 더 이상 예술적 이상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런던도 예술만 생각하기에는 뉴욕 못지 않게 지정학적으로 심각한 장소였다. 아닌 게 아니라, 런던 삼부작만 떼놓고 보면 과연 우디 앨런의 영화일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고향을 떠난 자가 낯선 땅에서 느끼는 위협과 불안감이 짙게 서려있다. 도무지 뉴욕 시절에 보이던 낙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면 우디 앨런이 낭만과 자유로 대변되는 예술적 기운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가 영화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포진한 가우디의 건축물을 훑는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화음악 사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던 그가 이번엔 ‘바르셀로나’를 부르짖는 노래를 질리도록 들려준다. 그동안 사라졌던 유머가 되살아난 점만 봐도 우디 앨런이 얼마나 바르셀로나의 예술적 기운에 만족해하는 지가 눈에 선하다. 뉴욕에 버금가는 완벽한 예술의 도시를 찾은 셈이다. 그렇다면 우디 앨런은 앞으로 바르셀로나를 제2의 예술적 거점으로 삼을 생각인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이에 대한 답변이 될 만하다.

앞서 이 영화를 살펴본 바, 세상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향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부족하기에 아름다운 것이 세상사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내세우는 바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그동안 너무 예술적 이상향에 집착했다. 제2의 뉴욕을 찾기 위해 런던으로, 바르셀로나로 오랜 시간 방황했다. 너무 완벽한 사랑을 꿈꾸다 신경쇠약에 걸린 마리아처럼 비극을 양산했고, 완벽한 사랑의 발견에 들뜬 크리스티나처럼 바르셀로나 찬양에 열을 올리다 갑자기 공허감이 찾아들었다. 고향 뉴욕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우디 알렌의 그동안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는 작품이다. 아무리 찾아봐야 뉴욕만한 이상향은 없다. 비록 뉴욕이 예전처럼 이상적인 예술적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겠지만 우디 앨런 자신이 좀 더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기에 다시 연애하고픈, 다시 사랑하고픈 장소가 됐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바르셀로나가 배경이지만 역설적으로 뉴욕에 대한 노감독의 절절한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래서 우디 앨런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이후 차기작으로, <매치 포인트> 이후 5년만에 뉴욕으로 돌아와 <뭐든지 잘될 거야 Whatever Works>를 촬영했다. 기가 막히게도 노신사와 10대 소녀의 러브스토리다! 우디 알렌이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레시안
(2009.5.1)


 

One thought on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우디 앨런이 깨달은 것은?”

  1. 막장..제목 땜에 짜증났어….
    영화는 괜찮았는데 말이지….
    내가 우디앨런이라면 한국에서 상영안할거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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