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990년대에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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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1월 9일)에 경향신문 사옥에서 한윤형 씨와 1990년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를 박경은, 이혜인 기자님께서 기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진은 정지윤 기자님께서 찍어주셨습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계에 90년대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촉발된 90년대를 향한 그리움은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를 거쳐 지난 한해 동안 대중문화계를 꿰는 키워드였다. 올 초 방송됐던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는 그 정점이었다. 방송 이후 각종 차트와 라디오, TV프로그램은 90년대 음악이 장악했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도 앞다퉈 90년대 가요를 오디션 곡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최근 시작한 Mnet 음악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는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으로 여진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문화 논객 허남웅(42), 한윤형(33)이 이 같은 현상을 짚어봤다.

토토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허남웅(이하 허): 노래라는 매개체가 환기시키는 기억은 강렬하다. 90년대 노래를 전면에 내세운 <토토가>는 그래서 사람들을 강하게 자극한 것 같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엔딩곡 ‘기억의 습작’이 그렇고, <응답하라> 시리즈에 소개된 90년대 음악들 역시 프로그램 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윤형(이하 한): 원래 10대 때 들은 노래가 가장 좋고, 또 잊혀지지도 않는다. 내 또래가 ‘응칠세대’(1997년에 고등학생이었던 세대)쯤 되는데 <응답하라 1997>을 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30대 초반에 벌써 10대를 환기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또래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부모 돈으로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던 10대가 행복했다고 떠올리는 것이다.

사회가 호황기였다면 <응답하라 1997> 흥행이 안됐을 수도 있다는 건가.
한: 그렇다. 현재에 몰입하면 추억 환기는 좀 뒤로 미뤄질 수 있다. 30대 초반에 10대를 찬란한 시절로 기억하는 건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20~30대에게 청춘 회고는 좀 빠르다. 특히 ‘응칠세대’로 불리는 30대는 청춘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다. 어떤 영화를 보면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이나 이효리가 춤추는 장면도 회고의 대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삶이 팍팍해져서이다.

허: <응답하라>, <토토가>,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건 90년대 학번들이다. 당시에는 문화적으로 융성했고 사건도 많았다. 그런 혜택을 누렸던 문화 생산자들이 지금의 20대 이야기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청춘을 소구할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이야기를 발견하는 대신 자신들이 겪었던 90년대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오히려 지금 20대에 대해서는 스펙만 따지는 세대라고 치부하며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은 게으른 것 같다.

지금 문화제작자들은 왜 20대 콘텐츠를 만들지 않을까.
허: 당시엔 대학생문화, 청년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문화가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이 됐다. 특정 세대로는 돈을 벌 수 없다. 1800만명이 관람한 <명량> 같은 영화가 나오는 건 전 세대를 묶으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 덧붙이자면 산업화는 됐는데 대중문화 파이는 줄어들었다. 한국의 주류 가요시장이 걸그룹 위주로 된 것도 그렇다. 걸그룹이 춤추는 건 우리 아버지나 나나 누가 봐도 상관없다. 자녀나 부모가 보는 문화가 비슷해졌다. 하나의 산업 속에 다 합쳐지고 있는 셈이다.

90년대 대중문화를 10대나 20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놀랍긴 하더라.
한: 지금 누리는 대중문화와 연속성이 있어서다. 지금의 문화 상품에 비해선 엉성하기 했지만 7080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금 문화와 많이 연결된다.

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10대, 20대가 즐기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전자에선 ‘사랑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게 되고 후자에서는 대학 입시와는 관계없이 놀고 즐기는 장면들을 마주한다. 지금 10대나 20대에게는 판타지와 다를 바 없다

한: <논스톱> <남자셋 여자셋>류의 방송 프로그램은 진작에 다 멸종했다. 청소년 드라마라고 <공부의 신> 같은 게 나오지 않나. 90년대 호황기가 너무 찰나여서 계속 소구되는 것 같기도 하다.

허: 7080문화와 달리 90년대는 정치적인 것을 연상할 필요도 없다. 7080을 이야기하면 박정희, 민주화가 연결되지만 90년대나 2002년 월드컵을 보며 김대중, 노무현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대중문화에 대한 허기짐으로 90년대를 추억한다는 말도 있다. 
한: 대중문화는 취향의 문제니 각기 평가를 다르게 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허: 90년대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댄스 음악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록이 최고야 이렇게 말하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 와서 <토토가>를 보니 개성 있고 다양했다. ‘왜 그때 다 도매금으로 묶었지?’하는 생각은 들더라.

한: 현재의 문화를 10~20년 후에 되돌아본다면 지금 90년대 문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겠나.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면서 과거 회고 주기가 짧아진 것 아닌가.
허: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가 90년대 후반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를 저주받은 세대라고 지칭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한 것 같다.

한: 200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다 금융위기 이전에 졸업한 내 또래는 그나마 좀 낫다. 지금은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허: 내가 1학년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 시급이 1200~1300원이었다. 한달 죽어라 하면 30만원 벌었고 그렇게 두달 모으면 80만원 정도이던 등록금의 상당부분을 커버했다. 그런데 지금 카페 시급이 5000~6000원으로 올랐지만 같은 시간 일해서 등록금 반도 충당할 수 없다.

한: 10대 때는 명문대에 가면 그걸로 끝이라 생각됐는데 지금은 아니다. 명문대를 졸업하면서 학자금 대출 2000만원 이상 끼고 시작하니 뭘 가릴 상황이 안된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니더라도 집안 소득수준에 따라 토익점수가 다르다. 학벌은 붕괴됐지만 의미없는 사교육은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는 시스템이 너무 체계화돼 있어서 그렇다. 답답하고 숨막히다 보니 자꾸 이전의 가까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거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과거를 호출하면서 ‘그때가 나았는데’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 같다.

허: 우리 때만 해도 대학생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실존적 고민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취업을 위해 계속 스펙 쌓고 취직공부만 해야 한다.

한: 실존적 고민이 사라진 세대다.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보면 실존에 대한 고민이 없다. 돈, 직업에 대한 고민만 있다.

허: 여러 사람이 한 군데로만 몰리면 뭐든 산업화되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지금 한국 교육도 그렇고 대중문화도 그렇다. 자연히 한 군데로 몰리면서 다양성이 없어진다. 그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문화다. 그런데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대중문화는 판타지로만 가고 있다.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현실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쪽으로 기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본과 엮여 있어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이 과거에 성공한 결과물에 집착하게 만든다.

실존적 고민이 사라진 시대에 대중문화는 어떠해야 할까.
허: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많은 비평가들이 다양성을 외치지만 묻히고 만다. 90년대가 잘된다고 하니 또 90년대를 앞다퉈 팔지 않나.

한: 해석의 다양성조차 용인하지 않는 사회다. 자연히 활력도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평균압이 너무 강하다. 할리우드 흥행작이면 다 봐야 하고 뭔가 화제가 되고 있으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흐름에서 뒤처지고 소외되는 것 같다.

허: 영화라는 장르만 놓고 봤을 때 앞으로 장르나 세대가 특화되는 영화는 갈수록 사라질 거다.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서 산업적으로 성공한 과거의 사례들을 가져오려는 시도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20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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