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좀비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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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의 개봉이 가까워지면서 좀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사실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월드워Z>에 대한 소식이 있기 훨씬 전부터 ‘살아난 시체’들의 활약은 영화 외에도 대중문화 곳곳에서 눈부실 정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좀비 열풍

예컨대, <월드워Z>의 원작소설인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는 좀비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좀비의 발생부터 전 세계적인 창궐, 그리고 좀비로 인해 파괴된 문명사회의 재건까지를 전통적인 서사가 아닌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허구의 좀비물에 리얼리티를 가미한 형식이 주요했던 것. 이를 미국의 J. L. 본과 스페인의 마넬 로우레이로가 각각 일기체를 도입한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과 블로그체를 차용한 <종말일기 Z>로 이어 받아 좀비물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만화 쪽에서는 로버트 커크먼이 이야기를 쓰고 토니 무어가 그림을 그린 <워킹데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좀비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수의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워킹데드>는 미국에서 좀비만화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 기세를 모아 프랭크 다라본트(<미스트><쇼생크 탈출>)가 제작한 동명의 TV시리즈가 시즌2까지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 모았다.

소설과 만화, TV에서의 좀비의 활약이 주로 미국 주도인 것에 반해 영화에서는 국경을 초월하는 추세다. 2009년이 정점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철학자가 좀비가 되는 체코의 <못 말리는 좀비들>, 나치 잔당들이 좀비로 되살아난 노르웨이의 <데드 스노우>,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1978)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은 켄 포리가 출연한 세르비아의 <좀비 습격>, 감염된 영어를 들으면 좀비로 변하는 캐나다의 <폰티풀>, ‘생활형 좀비물’로 각광받았던 한국의 <이웃집 좀비>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국적의 좀비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좀비가 각광받는 이유

요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좀비 열풍은 유난한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물의 유행과 더불어 좀비물은 시대를 반영한 풍자로, 집단의 무의식에 스며든 공포의 발현으로 각광받고 있다. <워킹데드>의 로버트 커크먼이 말하는 좀비물의 의의에 대해 들어보자. “훌륭한 좀비물은 우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보여준다. 그 기저에는 늘 사회 비판과 사색이 흐르고 있다.”

사실 좀비물은 리처드 매드슨이 소설 <나는 전설이다>(1954)를 통해 좀비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조지 로메로가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으로 좀비의 실체를 현실화하면서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로 정착했다. 다만 좀비와 같은 장르물은 이야기상의 정해진 패턴 같은 게 있어서 시대상을 통해 진화를 꾀하고는 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미국 내의 흑백 갈등을, <시체들의 새벽>(1979)이 소비사회의 모순을, 스티븐 킹의 소설 <셀>(2006)이 무분별한 휴대폰 사용에 따른 폐해를 은유하며 그렇게 발전해왔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 좀비물의 진화가 오랜 시간을 두고 완만하게 이뤄졌다면 최근처럼 급격한 형식의 변화를 꾀한 사례는 없었다. 이는 시대 반영의 측면에서 이 세계가 과거와 다르게 스피디한 변화의 진화의 기로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왜 아니겠는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에 맞춰 전 세계는 1일 생활권, 아니 실시간 정보 교류가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에 반해 전쟁과 전염병처럼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급속도로 번져나갈 만큼 피해의 규모 역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래서 작금의 좀비물은 사스, 조류독감, 돼지독감과 같은 전염병과 걸프전, 이라크전 등을 거치면서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 생화학무기의 공포를 진화의 동력으로 삼는다. 실제로 좀비는 접촉을 통한 감염으로 개체수를 늘려가는 특징을 보인다. 죽은 시체가 살아난다는 설정은 지극히 허구이지만 전 세계가 감염과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비는 전염의 세상을 은유하는 도구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좀비물의 인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감염의 기원을 찾아 그 경로를 밝히는 <세계 대전 Z>는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워킹데드>는 좀비 세상에서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또한 이라크 참전 중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을 집필한 J. L. 본은 그 자신이 전장에서 느꼈던 공포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즉, 현실은 좀비물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이 세상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끔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한국 좀비물의 현재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아쉽게도,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한국 시장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장르문화 팬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될지언정 그것이 폭발력을 갖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팬들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좀비처럼 설정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에 대해서 한국 팬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는 <연가시>(2012)처럼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변형된 형태의 좀비물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정도다.  

<연가시>는 감염되면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연가시가 등장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 또한 감염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만약 국내에서 획기적인 설정의 좀비물이 등장한다면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은 갖춰져 있는 셈이다. 적극적인 쪽은 소설에서다. 국내 모 출판사가 실시한 좀비 문학상이 3년 동안 계속되면서 (그리고 곧 4회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섬 그리고 좀비>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의 섬>과 같은 결과물로 나타났고 김중혁과 같은 인기 작가도 <좀비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에 비해 영화 쪽은 좀 잔잔한 편이지만 36시간 내에 사망하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을 다룬 김성수 감독의 <감기>가 또 한 편의 변형된 좀비물로써 개봉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블록버스터 좀비물인 <월드워Z>가 큰 인기를 얻는다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좀비영화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극사실주의를 반영한 좀비물이라면 사실주의에 호의적인 국내 팬들의 구미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좀비물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오락성과 예술성을 양수겸장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중문화다. 전 세계적인 좀비 열풍이 가능한 이유다.
 

매거진 M
(2013.6.5)

2 thoughts on “왜 좀비에 열광하는가”

  1. 올해 한국의 좀비물로는,, 샤이니의 가 있었죠ㅋㅋㅋ < 월드워Z> 빨랑 보고싶네요. 책으로 먼저 읽고싶기도 하고.

    1. 옷! 좀비노래인가요? 샤이니 노래는 제가 잘 몰라서… 예, 저도 < 월드워Z>는 기대작이긴한데 과연 책이랑은 전혀 다른 모양새라 좀 불안불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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