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Watchmen)


사용자 삽입 이미지<새벽의 저주>(2004) <300>(2007)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방한에 맞춰 내년 3월 개봉 예정인 <왓치맨>의 영상 일부가 11월 10일 공개됐다. 이번 행사는 영상 공개는 물론 이에 따른 감독의 장면 소개 및 기자회견까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고 호주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진행된 이날 로드쇼에서 <왓치맨>의 영상은 10분씩 세 부분으로 나눠 총 30분 분량이 공개됐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영화들이 개봉 직전까지 기본 정보 외의 것을 공개하길 극도로 꺼리는 상황에서 <왓치맨>의 영상 공개는 꽤 이례적인 일이다. <왓치맨>의 원작인 동명의 그래픽 노블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폭 넓게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영화 개봉에 앞서 인지도 상승을 위해 전략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의 영상은 <왓치맨>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도 실체를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끔 줄거리, 캐릭터, 볼거리에 맞춰 엄선돼 공개됐다. 비록 완성된 영화를 시사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부분 영상만으로도 <왓치맨>의 진가를 파악하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다.


원작에 충실하다

먼저 공개된 영상은 오프닝이었다. 때는 1985년. 정부 후원 하에 활동하는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 여부를 주제로 벌이는 TV 토론을 시청 중이다. 이때 갑자기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괴한의 습격에 한바탕 싸움을 벌이지만 힘에 밀리던 코미디언은 23층 창문 밖으로 내팽개쳐져 목숨을 잃고 만다. 이에 맞춰 배경음악으로 밥 딜런의 ‘시대가 변해가네’(The Times They are A-Changin’)가 흐르고 원작 만화의 주요 장면이 실사로 이미지화돼 몽타주(특정 장면을 병렬적으로 조합한 편집) 형식으로 제시되며 타이틀 시퀀스가 진행된다.

1960년대 당시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미국에서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불리던 ‘시대가 변해가네’를 타이틀 시퀀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건 꽤 의미심장하다. <왓치맨>이 베트남전을 주요하게 언급하면서 미국이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슈퍼히어로가 출현하는 대체역사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미국의 영웅적 행위가 세계 평화를 불러왔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왓치맨>은 기존 슈퍼히어로물이 가지고 있던 설정을 완전히 해체한다. 정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에서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왓치맨’은 특정 슈퍼히어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자들’(Watchmen)을 뜻한다. 이를 통해 <왓치맨>은 미국 정부에 의해 이용당하는 슈퍼히어로에 의해 세상이,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앨런 무어가 쓰고, 데이브 기븐스가 그린 그래픽 노블 <왓치맨>은 슈퍼히어로 집단이 그들과 연관된 살인사건을 위해 다시 뭉치면서 냉전 당시 그들의 목적을 다시금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1986년부터 1년 동안 DC코믹스를 통해 연재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왓치맨>은 잭 스나이더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흥미 위주로 다루던 기존 장르에 현실과 정치를 대입하니 슈퍼히어로물은 이제 그들의 가면 뒤에 감춰진 이야기, 즉 심리학적 리얼리즘이자 누아르로 변모했다. 하여 <왓치맨>은 표면상 코미디언의 의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형태를 띤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치적인 관점과 장르 자체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가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왓치맨>의 영화화에 많은 제작사들이 군침을 흘린 건 당연지사. 그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12개 챕터로 이뤄진 <왓치맨>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는 실패했다. 잭 스나이더가 메가폰을 잡기까지 거쳐 간 감독의 면면은 화려하다. 테리 길리엄(<12 몽키즈> <여인의 음모>)은 2001년 <왓치맨>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왓치맨> 각색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가 원한 건 다섯 시간 버전의 TV 시리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레슬러> <레퀴엠>)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이번엔 예산 문제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폴 그린그래스는 <본 슈프리머시>(2004) 이후 차기작으로 <왓치맨>을 점찍었지만 비평적인 찬사만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 제작사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유나이트 93>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사공을 많이 거치면서 <왓치맨> 각색은 그만 산으로 가고 말았다. 연출자로 확정된 이후 잭 스나이더는 각본을 보자마자 “이것이 정녕 <왓치맨>인가?” 할 정도로 원작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1985년 배경이 2000년대로, 리처드 닉슨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베트남전은 아랍권을 겨냥한 테러와의 전쟁으로 바뀌어 있었다. 잭 스나이더의 첫 번째 임무는 이야기를 본 상태로 돌리는 것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내 관점을 관객들이 궁금해 하겠나. 원작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은유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원작과 다르게 수정된 각본을 원작에 가깝도록 수정했다.”

잭 스나이더는 <왓치맨>의 대사를 술술 외울 정도의 열혈 팬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잭 스나이더가 <왓치맨>의 최선의 연출자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해야 한다면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가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했다면 대단한 영화가 됐을 거다.” 15년 동안 <왓치맨> 프로젝트를 지켜봤던 프로듀서 로이드 레빈의 얘기다. “잭 스나이더도 마찬가지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300>을 멋지게 리메이크 하고 영화화하지 않았나.” 잭 스나이더는 “무엇보다 팬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원작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려 했다”고 연출 의도에 대해 밝힌다.


리얼리즘을 구현하다

두 번째로 공개된 영상은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이다. 시계수리공을 꿈꾸던 존 오스터맨은 냉전시대가 도래하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된다. 그곳에서 만난 제인 슬레이터(로라 멘넬)와 사랑을 키워가던 중 원자물리학 테스트용 금고실에 갇히는 사고를 당하게 되니. 불멸의 초자연적 존재 닥터 맨해튼으로 거듭난다. 닥터 맨해튼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항복을 얻어내고 미국 정부는 그 덕에 소련과의 대치 상황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닥터 맨해튼은 자진해서 화성으로 망명을 떠난다. 그의 공백을 타고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이 임박한다.

이 영상은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 ‘원작에 충실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는 이야기와 대사는 물론 장면의 구도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만화의 컷을 그대로 재현한 연출에서 확인된다. 촬영감독 래리 퐁과 미술감독 마이클 윌킨슨은 “촬영 들어가기 전, 앵글의 구도가 맞는지, 다르게 배치된 소품은 없는지 해당 장면의 만화 컷을 다시 살펴보며 오차가 없도록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다. 잭 스나이더 역시 이를 단 한 번도 제지하는 경우가 없었다. 감독 자신에게도 <왓치맨>을 연출한다는 건 곧 그래픽 노블의 컷들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리얼리즘을 구현하려 했다. “<왓치맨>은 <300>과 같은 블루 스크린용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실제다.” 여기에는 <왓치맨>을 현대의 신화로 바라보는 감독의 정서가 반영돼 있다. 안 그래도, <왓치맨>은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인간의 고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전쟁에 대한 공포, 즉 세계 평화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공하는 <왓치맨>은 조화롭게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곧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의 도덕성에 대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인 셈이다.

<왓치맨>의 세계관은 단순히 이야기와 대사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종말론의 기운을 품고 있는 <왓치맨>은 누아르의 미술적 분위기가 흠뻑 묻어난다. 주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뉴욕은 익히 알고 있는 낭만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해가 비추는 날이 거의 없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웃음기를 찾을 수 없으며 도시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 징후가 짙게 드리워 있다. 잭 스나이더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데보라 스나이더는 “<왓치맨>은 미술적인 면에서 <택시 드라이버>와 유사하다. 거기에는 현실을 부정하는 비루함이 묻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비루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잭 스나이더에게 원작의 배경을 구현하는 실제적인 공간은 중요한 요소였다. <300>과 달리 CG를 위한 블루 스크린에서의 촬영을 최소화하고 세트작업을 늘린 건 이 때문이었다. 닥터 맨해튼이 망명을 떠나는 화성과 오지맨디아스(매튜 구드)의 남극 요새 장면을 제외하곤 모두 세트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그래픽 노블 속 뉴욕이 워낙 수많은 빌딩들로 짜인 형태일 뿐 아니라 광대한 음모이론이 기저에 깔려 있어 주로 내부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까닭에 닫힌 공간이 주는 폐쇄성과 불안함을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는 흡사 견고한 성을 쌓는 과정과 흡사했다. 보충하자면, 원작자 앨런 무어는 <왓치맨>의 크레딧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했을 정도로 영화화에 반대했다. 조금이라도 구조가 흐트러지면 원작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훼손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앨런 무어는 극중 또 다른 이야기인 <검은 수송선>을 삽입해 영화가 절대 구현할 수 없는 그래픽 노블만의 구조를 창조했을 정도다. (<검은 수송선>은 영화 속에서 다뤄지지 않지만 이후 DVD에 삽입될 예정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잭 스나이더는 앨런 무어를 작가로, 예술가로 존경하는 입장에서 “그의 원칙을 최대한 존중해 영화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밝힌다. 주관적 해석이나 관점을 철저히 배제한 잭 스나이더의 리얼리즘은 곧 원작의 견고한 구조에 티끌만 한 흠집도 내지 않으려는 그래픽 노블 그 자체의 리얼리즘 실현이었던 셈이다.


캐릭터의 재미를 배가하다

마지막 영상은 나이트 아울Ⅱ(패트릭 윌슨)와 실크 스펙터Ⅱ(말린 애커맨)가 감옥에 갇힌 로어셰크(재키 얼 할리)를 구출하는 장면이다. 이들 셋은 그 전까지 어떤 기로에 서 있었다. 나이트 아울Ⅱ는 일찍이 슈퍼히어로를 은퇴한 후 나약하게 생을 보내던 중이다. 실크 스펙터Ⅱ는 그녀의 어머니와 코미디언 사이에 있었던 과거 일로 연인인 닥터 맨해튼과의 사이가 악화되고 그가 화성으로 떠나버리자 마음을 잡지 못한다. 로어셰크는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감옥에 수감돼 정체가 탄로 난 상태다. 습관처럼 집에 돌아온 나이트 아울Ⅱ 앞에 실크 스펙터Ⅱ가 나타나고 서로를 위로 삼아 원기를 회복한다. 이를 계기로 로어셰크를 구출한 이들은 본격적으로 사건의 배후를 캐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원작과는 약간의 변화를 꾀한 슈퍼히어로의 모습이다. 특히 나이트 아울Ⅱ의 경우, 그래픽 노블에서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해 힘도 빠져 있고 늘 졸린 모습으로 다니지만 영화에서는 격투에 능한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등장한다. 잭 스나이더는 “나는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원작에는 액션 장면이 별로 없지만 이것만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했다”고 캐릭터 변화의 의도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는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애초 기획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 또한 앨런 무어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사실 앨런 무어가 <왓치맨>을 기획할 당시, 그는 DC코믹스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마이너한 슈퍼히어로들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려 했다. 기존 역사를 뒤집어 대체역사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보다 대중적으로 친근한 슈퍼히어로를 등장시켜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DC는 이미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븐스가 관심을 갖던 블루 비틀과 캡틴 아톰 캐릭터를 가지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었고 결국 나이트 아울과 닥터 맨해튼, 로어셰크와 실크 스펙터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이를 모를 리 없던 잭 스나이더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왓치맨> 캐릭터에 기존 캐릭터를 혼합하는 방식을 택한다. 예컨대, 나이트 아울Ⅱ는 앨런 무어가 가져오길 원했던 블루 비틀과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배트맨 코스튬을 얼마간 도용(?)해 변화를 준 캐릭터다. 다만 닥터 맨해튼의 경우, 원작에서부터 이미 슈퍼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였기에 영화 속에서는 원작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가장 크게 변화한 캐릭터는 오지맨디아스다. 원작의 모습은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다고 연출진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앨런 무어가 슈퍼맨을, 잭 스나이더가 배트맨을 특별히 고른 건 이들 캐릭터가 슈퍼히어로를 대표하는 까닭에 일종의 패러디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던 탓이다. 이를 통해 노리는 효과는 바로 이것이다. ‘만약 슈퍼히어로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앨런 무어는 슈퍼맨을 이미 시효가 다한 캐릭터로 봤다. 선악이 혼재한 작금에 선을 대표하는 슈퍼맨은 시대에 뒤떨어진 캐릭터였던 것. 그래서 닥터 맨해튼은 갈수록 인간에 대한, 세계 평화에 대한 관심을 잃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소 간 핵전쟁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역할로 기능하기까지 한다.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나이트 아울Ⅱ는 성불구자 비슷하게 등장하는데 이 같은 설정에는 세계 평화를 앞당기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다.

종합해보면, 결국 <왓치맨>은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굉장히 복잡한 답변을 준비해두고 관객의 생각과 변화를 요구한다. 다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극중 중요한 메타포로 쓰이는 문구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 이제나 저제나 <왓치맨>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은 2009년 3월 5일까지 이 영화의 움직임을 언제, 어디서든 예의주시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ILM2.0 414호
(2008.11.25)

3 thoughts on “<왓치맨>(Watchmen)”

    1. 오~ ‘망토에 피로 쓴 누아르’ 표현이 굉장히 멋진대요 ^^b 전 이번 주 목요일 < 왓치맨> 개봉하자마자 극장 콜!입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