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Hulk)


무협이면 무협(<와호장룡>), 서부극이면 서부극(<라이드 위드 데블>), 사회비판드라마면 사회비판드라마(<아이스 스톰>), 에. 또.. 음… 모냐…. 긍까….. 그거, 잔잔한 유머가 돋보이는 인간극장 삘 다분한 <쿵후선생>과 <결혼피로연>까지.

어떤 소재든 맨졌다하면 쫙! 빠진 모냥새를 만들어내어 세간의 찬사를 받았던 아시아의 작은 꼬추 이안이 이번에는 글씨 미국 만화 캐릭터 <헐크>를, 그것도 블록버스터로 만든다 하여 기염을 토했더랬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삼팔선 넘나들 듯 특정장르에 집착하지 아니한 창작욕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동양의 감독이 양키 감수성 물씬 묻어나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마블코믹스를 영화로 맹글었다고 하니 참 말들이 많았드랬다.

일각에선 ‘교장선생님 훈화시간만큼이나 존나게 졸린 영화’ 라고 학을 띄었다. 딴 일각에선 ‘블록버스터의 일반상식을 히떡 바꿔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과연 당 영화의 진실은 무얼까… 를 디벼보는 것이 이 개봉영화검열평의 의무 아니겠냐. 해서 디볐다. 어서 따라들 온나.


1.

잘 아시겠지만 당해 영화 <헐크>는 <엑스맨>,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등 온갖 맨들의 종갓집인 스탠 리 옹의 마블 코믹스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대표 캐릭이다. 국내에서는 80년대 초반 <두 얼굴의 싸나이>란 제목으로 케베쑤에서 방영되어 역시나 선풍기적인 인기를 모은 적이 있었드랬다.

평상시엔 샌님처럼 얌전떨다가 빡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화를 주체하지 몬하고 바야바처럼 변신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적인 모티브가 백미인 <헐크>. 이 작품에 우리가 품고 있는 아련한 추억이란 아마 미테와 같을 테다.

투악투악 찢겨져 나간 옷 조각을 뒤로한 채 아담과 이브의 낙엽처럼 국부만을 살짝 가린 청바지의 위용, 그 무지막지한 인상과 보디빌더스런 팔뚝 그리고 王자가 아로새겨진 갑빠를 앞세워 적들을 응징하는 선 굵은 몸부림.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헐크>다.  

하지만 이안이 만든 <헐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헐크>가 아니다. 미량의 천 조각으로 자신의 좌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모습은 여전하나 CG로 새롭게 태어난 헐크의 우량한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이야기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기대했던 그런 슈퍼 영웅적 활약담을 다룬 것도 아니다.  

대신 아버지의 무모한 과학적 욕망 탓에 본의 아니게 튀나오는 자신의 악마성으로 고뇌하는 쥔공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 분)와 그의 아버지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 분) 사이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디비고 있음이다.

전작을 통해 주로 인간을 탐구하고 개인간의 운명적인 관계에 관심을 두었던 경력답게 이안은 <헐크>에게서 초록빛 살덩이가 내뿜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본 것이 아니라 약하디 약한 인간의 가녀린 심성을 목격하였고, <프랑켄슈타인>의 주제처럼 과학의 맹신이 인간에게 보답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캐치해 낸 것이다.

그래서 당 영화의 초반부는 아버지한테서 변형된 유전인자를 물려받게 된 배너 家의 기막힌 사연을 소개하고, 브루스 배너가 <헐크>가 되기 전까정 겪는 갈등 그리고 베티(제니퍼 코넬리 분)와의 사랑동안 보여지는 소심한 성격과 같은 카인드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관객덜이 학수로 고대하는 <헐크>의 모습은 영화가 시작되고 무려 1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는 얘기. <두 얼굴의 싸나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액숑보다 드라마적인 요소에 더욱 힘을 쏟은 당 영화는 매우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다.  

게다가 당 영화는 중반부 이후부터 <헐크>의 괴력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긴 하는데 전체적인 구도가 선과 악의 맞짱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으로 설정되어 있고 풍기는 분위기가 비극적인 가족사에 더 기울어져 있기 땜시롱 오락적인 요소보다는 억쎄게 재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때문에 당 영화는 느와르처럼 매우 어둡게 처리가 되는데 맨시리즈를 영화화한 다른 작품과 구지 비교하자면 팀 버튼의 <배트맨> 쪽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2.

하지만 팀 버튼이 <배트맨>을 영화화하는데 있어 이야기는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는 대신 자신의 장기를 살려 미술적인 면에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안은 그 반대로 접근하고 있음이다.

위에서 보셨겠지만 이안은 기존의 <헐크> 이야기를 자신의 세계관에 맞추어 재구성하였다. 그렇지만 영화의 형식은 만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성에 충실하도록 하였음이다.

이런 의도는 슈퍼면역 시스템을 실험하는 장면을 만화스럽게 표현한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편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단 장면을 전환하는데 있어서 당 영화는 기존의 편집처럼 장면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배너가 아버지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데서 착안, 마치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로 전이되듯 다음 컷이 앞의 컷을 서서히 잡아먹는 것처럼 장면을 연결하고 있음이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꾀한 거다.  

물론 원작이 만화이다 보니 만화적 특징의 도입 역시 필요했다. 그래서 이안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만화의 컷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바로 분할화면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분할화면처럼 상하 혹은 좌우 두 개로 단순히 화면을 나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분할된 장면을 만화의 컷처럼 불안정하게 배치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만화책을 보는듯한 인상을 받도록 하였다.  

이렇듯 물줄기 흘러내리는 듯한 편집과 만화의 컷 개념을 도입한 화면분할은 내용과 형식의 일치라는 점에서나 아이디어적인 면에선 꽤 훌륭했다. 게다가 이안의 스타일리스트 적인 면모를 보여준 대목이기도 하고. 근데 분할화면 같은 경우 영화를 전개해 가는데 있어서 이야기를 늘어지게 만드는 최악의 효과를 내고 말았으니 이를 우째 쓸까나…

몇 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장면은 그 수만큼의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당 영화에서의 분할화면은 하나의 컷만으로도 충분히 정보제공이 되는 것을 쓸따리없이 나눈 것에 불과하다. 형식에 너무 집착한 거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정보만 많아지게 된 꼴이 되었다. 안 그래도 초반부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끄는 바람에 늘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분할화면까정 말썽을 부리니 당 영화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이게 모하자는 플레인가’ 하는 의문 뿌라스 불안감이 엄습해옴이다.  

그리고 아니나 달라 당 영화의 쥔공 <헐크>가 관객의 기대감을 온 덩어리에 받으며 그 광포한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웅성웅성대는 소음이 들려왔다. 환호의 웅성웅성이 아니라 어이없음을 호소하는 웅성임말이다.  

나오라는 <헐크>는 안 나오고 어디서 <슈렉> 한 마리가 예의 그 초록빛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낸 거다. 그러타. 당 영화는 알고 보니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합성된 영화였던 거시다.

이런 닝기리…


3.

눈치들 까셨겠지만 당 영화의 결정적인 패착은 CG로 구현된 <헐크>다. 앞 대갈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안은 당 영화를 최대한 만화책처럼 하기 위해 헐크의 모습마저도 실사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더 가깝도록 만들고 말았음이다.

슈렉의 얼굴을 상하로 4~5미터, 좌우로 2~30센치 꼬집어 늘려 놓은듯한 고무인형스런 모습에서는 과거 실제 보디빌더인 루 페리뇨가 연기했던 <헐크>에서 보여지는 아날로그적인 인상 구겨짐이라든지 실제로 살아있는 근육의 움직임 덕에 받았던 공포시러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음이다.

요로코롬 이안의 <헐크>는 현실성이 결여되다보니 무려 5미터에 달하는 거대 괴수가 화면을 수놓으며 별의 별 지랄을 떨어대도 무섭기는커녕 어설픈 실사와 CG의 부조화스런 결합으로 존나게 우습게만 보일 뿐이다.  

광활한 대지 위를 발판 삼아 하늘로 피융피융 날아오르는 꼬라지를 대하면 <와호장룡>의 외전을 보는 것 같고, 어찌저찌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입성한 후 난리법석을 피는 안하무인격 행동은 <쥬라기공원 2>의 헐크版을 보는 기분이다.

그뿐이냐, 얘가 제트기 꽁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간힘 쓰는 모습이라든지 날아오는 미사일을 입으로 확 물고 퉤 뱉는 장면을 보면 씨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음이다.

안다. 이안이 자신의 작가적 역량도 살리고 블록버스터적인 재미도 살릴라고 한거. 근데 아니신걸 우쩌란 말인가.  

전반부의 드라마는 늘어지는 경향을 보여 지루하기만 하고 후반부는 씨쥐와 실사가 따로 놀아 스펙터클한 맛도 못 줄뿐더러 초반의 진지함과 막판의 황당함은 서로 충돌만 할 뿐 결합하지 못 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게다가 재미없는 게 길긴 또 존나게 길다.

아마 유니버셜은 <와호장룡>에서 보여준 경이로운 액숑씬에 감화되어 이안을 <헐크>의 감독으로 영입한 거 같은데 윗대가리덜 이하 관계자덜이 당 영화의 완성본을 보고 지었을 벙찐 표정을 생각하면 내가 다 웃음이 나온다.

“어, 머여 씨바… 이거 액숑 블록버스터가 아니잖아… 조뙜다!”

결과적으로 당 영화를 보건데 전반부는 무슨 지루한 철학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고 후반부는 아동필 물씬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한 기분이 드는 것이 이안은 원작만화 <헐크>의 이야기를 너무 작가적으로 접근하였을 뿐 아니라 만화라는 매체를 너무 과대해석하고야 말았다.

결국 이 두 가지 필이 서로 찰떡같이 붙지 못하고 개떡같이 따로 노는 꼴이 죽도 밥도 안 된 영화를 만들어 내고 말았으니 이안이 <헐크> 프로젝트의 적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 이것이 당 영화가 유일하게 남긴 철학적이자 스펙터클한 교훈이다.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작업은 이래서 어려운 거다.


4.

재래식 영화 언론의 대표 주자 <쒸네 21>의 이번 주 409호 찌라지를 보면 <헐크>와 관련, ‘누가 리안과 <헐크>를 모함했나’라는 기사가 나온다.

<헐크>의 국내 개봉에 발맞춰 미국에서 떠돌고 있는 이런저런 악소문덜의 실체를 까밝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 독자의 환심을 사고 그들을 고스란히 영화관으로 끌어 모으겠다는 의도.  

좋다. 어차피 영화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나 재미라는 것이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매체니까. 근데 개봉 첫 주에 관객덜이 많이 몰렸다고 해서 이걸 기준으로 <헐크>가 괜찮은 영화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이건 존나 곤난하다.

‘그러나 일반관객은 동의하지 않았다. …(중략)… 다수의 저널리즘 평론가들이 욕하기에 바빴던 리안의 신작 <헐크>에 (일반관객들이) 다시 열광적 박수를 쳐주고 있는 것이다’

니덜도 알다시피 요즘 영화의 홍보 전략은 그 규모와 파장이 매우 커서 화제작의 경우 작품성과 평단의 어떤 평가에도 상관없이 첫 주에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요즘 블록버스터급 영화덜이 개봉하는 주에 극장을 최대한 많이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 바로 그런데서 기인하는 게 아니냐.

<헐크> 역시 그런 전략을 취함으로써 개봉한 첫 주(6/20~22) 입장수익 6,212만 달러를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2위 <니모를 찾아서>의 입장수익을 4,000만 달러나 능가하며 말이다.

근데 <헐크>의 다음주 성적은… 전 주에 비하면 몹시 초라함이다. <미녀삼총사-맥시멈 스피드>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전주 입장수익보다 4,000만 달러나 줄어 고작 1,800만 달러만 벌어들이는 대폭적인 하향세를 보여줬다. 영화가 구리다는 사실이 영화 개봉과 함께 관람객덜의 입소문으로 알려진 거다.

<쒸네 21> 니들도 영화 봐서 알겠지만 이안이 만든 <헐크>, 결코 관객들이 좋아 할만한 영화가 아니다. 만약 니들 표현대로라면 <데어데블>같은 영화도 미국에서 개봉 첫 주에 일반 관객들로부터 열광적인 박수를 받은 영화니까 볼만한 영화가 됐어야 했는데 우리 관객덜, 이 영화에 열광하기는커녕 돈 아깝다고 욕만 바가지로 하더라.

업계 1위 고수하랴, 영화 관계자들 비위 맞추랴 니네들 고충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니덜 잡지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독자가 있기 때문인데 왜 <쒸네 21>은 독자들의 입장에 서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 사람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대변하고 자빠졌냐. 제발 언론의 본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응, <쒸네 21>아…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요는 당해 영화 <헐크>가 생각만큼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기사를 보는 독자제위덜께서는 <쒸네 21>과 같은 재래식 언론덜의 <헐크> 똥꼬핥기에 현혹됨 없이 피 같은 입장료 사수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그런 전차로 본 우원은 당 영화를 워스트 주녀에 뽕하며 <헐크>에 대한 개봉영화검열평을 여기서 마친다.


(2003. 7. 7.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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