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OldBoy)


전작이 쫄딱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강렬한 스타일 덕에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을 배로 더했던 박찬욱 감독, 그가 신작을 내 놓았다. <올드보이>.

거기에 국내 최고 연기파 배우 중 1人인 최민식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 젊은 아덜도 소화하기 힘들다는 마카로니 파마를 멋지게 소화하여 눈길을 끈 점, 또한 그 선하디 선한 눈망울 덕에 악역은 평생 맡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유지태가 악당(으로 보이는) 역에 캐스팅 된 점 등 당 영화가 뿜어대는 화제는 실로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라 아니 할 수가 엄따.

그리고 개인적으로 <은실이> 시절부터 눈 여겨 보아왔던 ‘영채’ 강혜정이 출연한다는 것까정… 므흣

그러니 이 문제적 영화를 본 우원이 어찌 기냥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으랴, 해서 늦었지만 검열평 올린다.

1.

당 영화 <올드보이>는 츠치야 가롱(Tsuchiya Garon)이 이야기를 쓰고 미네기시 노부야키(Minegishi Nobuaki)가 그림을 그린 일본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 이에 대해선 잘 알고 있겠지만 이 만화가 국내에 소개된 지 벌써 7~8년이 지났고 또 원작이 있다니까 그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자너, 그래서 원작만화에 대해 잠시간 썰 풀자면..

결혼을 앞둔 며칠 전 원인도 모른 채 실종된 주인공 고토, 깨어나보니 침대와 테레비만 딸랑 있는 어느 방안에 감금되어 있다. 그 방에서 자신이 왜 갇혀있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군만두로만 연명한지 10년, 풀려난 뒤부터 고토는 자신을 이케 만든 장본인을 찾아 나선다.

근데 독자제위덜께서는 본 우원이 원작의 이야기를 얼마간 까발렸다고 해서 지금 혹시 ‘씨바, 당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허, 오해 마시라. 관람에 방해될 정도까지는 밝히지 않을테니. 그랬다 그 후환을 어케 감당하려고…

웬만해선 당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는 불지 않겠지만 그래도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완전 백지상태에서 당 영화를 관람하고 싶다면 지금 즉시 빠꾸 버튼 누질러 다른 기사 찾아보시덩가 하시고.

애니웨이, 그래서 군만두 맛을 단서 삼아 자신을 10년 동안 감금한 이를 만난 고토. 결국 고토는 그가 자신의 학창시절과 관계 있는 넘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머리는 좋았으나 하는 꼬라지나 생김새가 형편없어 반에서 왕따를 당했던 그의 뼈저린 고독을 고토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감금당했다는 기상천외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원작만화는 그렇게 끝맺음된다. 절라 허무하게…

이것이 원작만화 <올드보이>의 대강의 스토리다. 모, 이거 알았다고 크게 걱정은 마시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이유도 모른 채 사설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풀려난 뒤 이를 밝혀낸다는 원작의 설정은 따르고 있되 그 외의 부분들은 상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혀 다르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사실 원작 <올드보이>의 경우, 감금당하는 쥔공의 설정이나 그가 그 이유를 추리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재미는 끝내줬으나 그것에 비해 결말이 허탈할 정도로 시시하고 게다가 인물들의 깊은 묘사 없이 오로지 이유를 밝히는 데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전체적으로 앙상하고 건조한 느낌이 든다.

박찬욱 감독이 많은 언론에서 당 영화를 ‘과잉’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얘기하는 까닭은 아마 이런 부분들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영화를 ‘과잉’으로 보이게 하였을까? 그런 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인물에 대한 묘사다.

당 영화에서 감금당하는 역을 맡은이는 ‘오늘이나 대충 수습하고 살자’는 엄청난 뜻이 담긴 이름의 오대수(최민식 분), 그리고 그를 15년(영화에서 감금기간이 5년 늘었다)이나 갇혀있도록 만든 이는 ‘젠틀맨’ 이우진(유지태 분)이다.

원작에선 이들이 단순히 쫓는 인물과 의도적으로 쫓기는 인물의 구도 속에 인물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박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당 영화에서 오대수와 이우진은 처한 상황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도 만화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대수가 굉장히 폭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칙칙한 인상을 준다면 이우진은 그와는 정반대로 무척 차분하며 치밀하고 깔끔하게 그려지고 있다. 게다가 살고 있는 장소조차 ‘몇 평 안 되는 감옥 또는 단칸방 vs 100평이 넘는 사치스러운 펜트하우스’로 처리됨으로써 둘이 대립하고 있는 구도를 더욱 강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감정이입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인물의 성격이 잘 살아나도록 하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정반대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보면 오대수, 이우진 모두 복수가 살아가는 원동력(?), 즉 성격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또한 시간차이는 있지만, 같은 처지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 역시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니까 둘은 다르게 보이지만 실은 같은 인물인 셈이다.

사설감옥에서 15년 만에 풀려난 오대수가 옥상에서 자살하려는 남자의 넥타이를 붙잡고 있는 구도가 나중에 이우진에게 같은 모습으로 적용되는 등 당 영화에서 이야기적으로든, 형식적으로든 반복의 형태가 눈에 띄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당 영화는 차고 넘친다는 인상을 준다.  

3.  

그런데 이런 느낌이 드는 건 단지 반복의 구도가 되풀이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 영화에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스똬일에 있어서도 역시 차고 넘친다는 과잉의 느낌이 드는데 특히 영화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는 폭발적인 음악소리를 접하고 있노라면 감독이 ‘나 이 영화 존나게 넘쳐나게 만들 거야, 씨바!’ 라고 작정하고 들어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졌던 메마르고 차분한 맛이 돋보였으며 그로 인해 안정감을 주었던 스타일과 비교하면 그 느낌이 더욱 확연해진다.  

일단 사운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 영화에는 정말 음악이 많이 나온다. 영화 시작한 다음 중반정도에 가서야 음악이 흘러나오던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하면 상영 내내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해도 될 정도다.  

게다가 마빡 하나가 스크린을 반이나 차지하는 클로즈업이 사용됨으로써 굉장히 극단적인 기운이 감지되며, 컷 수에 있어서도 당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서 많은 편인데 특히 오대수가 15년 동안이나 갇혀있던 사설감옥에서의 생활을 5분 정도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의 컷 편집은 분할화면까정 끌어들이면서 보다 빠르고 현란하게 구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누아르 화면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촬영기법이라든지 거친 입자가 돋보이는 화면 등 <올드보이>에는 많은 영화적 기교가 사용되고 있고, 세트구성에 있어서도 오대수가 갇히는 방, 미도(강혜정 분)의 방, 대수와 미도가 잠시 묶는 여관의 벽지를 격자무늬의 컬러풀한 것으로 설정하여 색깔 있는 화면을 만든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오대수가 자신이 감금되었던 장소에서 17:1로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다른 장면들과는 달리 원 컷트 원 씬으로 단순간단명료하게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폭이 여타의 과잉이 느껴지는 장면들에 비해 더 크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린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 낼 수가 있다. 감독이 생각한 의도가 단순히 돈을 많이 들이고 기교로 무장한다고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하고 그런 기교들이 스토리를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할 때 가장 적합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얘기.

그니까 종합해 보자면 당 영화에서의 ‘과잉’은 그냥 겉멋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복수’라는 폭발적인 감정을 묘사하기 위한 가장 주요한 표현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당 영화는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으로 보여 만화스럽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처럼 여러 모에서 보았을 때 감독이 당 영화 <올드보이>를 ‘과잉’으로 떡칠(?)한 건 아주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4.

그러나 이 모든 걸 떠나서 관객이 당 영화를 통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건 모니모니해도 그 반전의 충격이 얼마나 쎈가하는 그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당 영화가 노리는 반전의 효과는,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그 사실 하나가 <유주얼 서스펙트>의 전부였던 것과는 달리 <올드보이>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의 반전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또 놀랍지도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 영화가 주장하고 있는 몇 가지 중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반전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당 영화에서의 반전은 <식스센스>처럼 마지막까지 쌓아온 논리를 한 번에 박살내는 그런 이성적인 충격이 아닌 금기를 대할 때의 정서적인 충격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밝혀졌을 때 영화가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닌 이로부터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것 역시 <올드보이>가 여타의 반전영화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최근 반전영화가 많아지면서 안 해도 될 반전을 억지로 낑궈서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건 물론이고 같지 않은 반전을 마케팅 뽀인트 삼아 관객의 주머니를 털고 있는 작금의 反반전적인 영화들이 횡행하는 작태에 비추어 볼 때 당 영화가 반전에 목숨 걸지 아니하고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훌륭한 점이었다.      

하지만비유띄벗뚜…

이 반전의 결과가 ‘모모모’와 같은 현상에 기대고 있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나 당 영화가 많은 단서와 암시를 영화중반에 흘러 놓으며 꽤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이야기인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식의 처리는 쫌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대수와 이우진의 관계가 형성되어 가는 이전의 이야기에 비해 재미를 떨어뜨린 부분이었다. 앞서의 상황들을 꽁으로 먹고 들어간다는 느낌이랄까…

우찌됐던 그리하야 당 영화는 이야기면 이야기, 스똬일이면 스똬일, 이 두 요소가 ‘복수’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며 독특한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딱 하나, 반전 부분의 허탈함으로 인해 강한 에너지가 발산되는 그 뒤의 이야기가 크게 어필하지 못한 점, 그래서 재미의 반감은 물론이거니와 이야기의 짜임새가 다소 헐겁게 된 점은 심히 안타까웠음이다.  

5.

이렇게 해서 당 영화 <올드보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결론 가보자.

당 영화, 스타일이 화사해지고 잔혹한 묘사가 줄어들긴 했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잔인한 기운이랄지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예기치 몬한 설정은 <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처럼 매우 논쟁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직도 박찬욱 감독에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보여준 재미를 기대하고 당 영화를 관람했다간 심히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당 영화의 반전 이후 부분은 알려진 것과 달리 그렇게 뒷골을 땡기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인 것도 아니었고 뽕나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음이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보다 <올드보이>는 상이한 두 캐릭터의 면면이라든지 그 스똬일이 더욱 흥미 있는 영화였다.  

그런 전차로, 한결같은 만쉐이~ 대형을 보이고 있는 재래식 언론에 현혹되어 당 영화를 향한 과도한 기대감을 품거나 또한 반전이라는 부분에만 뽀인트를 맞추어 이것 외에 당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미난 부분을 놓치는 愚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아무튼 여러 의미에서의 문제작, <올드보이>에 대한 검열보고 여기서 마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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