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Family Ties)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태용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제목이 심상치 않다. <가족의 탄생>이란다.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갑다. 근데 가족이라면 남녀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응응응해서 애를 낳으면 이루어지는 개념 아닌가? 아니다. 당 영화는 그런 구닥다리 생각일랑 저 멀리 빠빠이하고 뉴 패밀리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족 탄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1.

<가족의 탄생>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7명의 쥔공을 앞세워 세 개의 이야기로 뿜빠이해 보여주는 떼거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각 에피소드별 마빡인 경석(봉태규 분)과 채현(정유미 분), 선경(공효진 분), 미라(문소리 분)를 차례로 소개한 후 이들의 이야기를 역순으로 보여주는데

에피소드 하나. 미라는 5년 만에 찾아온 동생 형철(엄태웅 분)의 방문이 반갑지만 기쁨도 잠시. 데리고 온 부인 무신(고두심 분)이 엄마뻘인데다가 어린 딸까지 딸려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에피소드 둘. 선경은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며 엄마 매자(김혜옥 분)를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 엄마가 싫어 한국을 떠나려 하나 얼레 엄마가 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얼라를 두고 세상을 떠난다.

에피소드 셋. 경석과 채현은 러부하는 사이지만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아무에게나 도움을 주고 사랑을 주는 헤픈 채현이 경석은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보신 바와 같이 당 영화의 세 가지 이야기는 얼추 연관성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어 보인다. 대신 이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통적인 장애가 하나 있다. 바로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없다는 것.

미라는 형철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꿍쳐두었던 패밀리 사진을 꺼내놓으나 그 속에는 떨렁 미라와 형철 둘뿐. 영화가 명시적으로 밝히는 건 형철이 빵에 있었다는 사실 뿐이지만 그로 인해 미라’s 패밀리는 풍비박산이 난 듯하다. 선경은 또 어떤가. 배 다른 동생이 있고 혼자 나와 사는 걸 보니 그녀의 아빠와 엄마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닌 걸로 보인다. 경석이라고 다를쏘냐. 여친 채현을 집으로 초대하며 하는 말. 우리 ‘누나’가 널 보고 싶대.

이렇듯 <가족의 탄생>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족관계에 있어 절름발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인 셈. 하지만 영화는 이를 상상하게만 할 뿐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는다. 왜? 당 영화의 목적은 해체된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똥꼬 더 나아가 따로국밥된 이들 패밀리들이 어떻게 다시금 봉합하는지까지를 보여주고 있다.

근데 그 결과가 예사롭지가 않다. 헤어진 가족들이 싸바싸바해서 재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이합집산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것.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가족의 재결합>이 아닌 <가족의 탄생>. 당 영화는 바로 전통적인 개념의 가족 봉합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족 재구성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2.

그런 점에서 당 영화 특유의 형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썰한대로 영화는 경석과 채현, 선경, 미라를 짧게 돌림빵 소개한 후 이를 다시 미라, 선경, 경석과 채현의 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경고!!
결정적인 스토리는 썰풀지 아니하나 읽는 이에 따라 눈치 깔 수 있는 전차로 당 영화의 관람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아서들 스텝 밟으시길!

특기할만한 건,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아니 세 번째 에피소드 중반까지 이들이 남남으로 그려지다가 경석은 누구의 삐리리고 여친 채현은 누구의 삐리리였다는 식으로 인물 간의 관계가 밝혀진다는 것. 그리고 말미에 이르면 이들이 모두 가족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연결될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세 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진 형식은 패밀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조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듯 당 영화 역시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가 만나 세 번째 에피소드를 낳고 <가족의 탄생>이라는 작품을 이루는 식이다. 미라와 선경의 해체된 패밀리 모습을 개별적으로 보여주다가 세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 뜬금없게도 경석과 채현의 연애담을 보여주는 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결합 과정이었을 테다.

그렇게 해설랑 탄생한 가족의 모습은 히껍할 정도로 예상 밖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란 개념은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관계. 그래서 해체된 가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영화는 화해를 통해 재결합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당 영화에서 이뤄지는 해체된 가정의 봉합은 전현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인물의 설정부터가 그렇다. 무신을 찾아온 딸과 함께 살게 되는 미라. 그녀와 무신의 딸은 애당초 남남. 더군다나 무신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더 정확히는 무신의 전남편의 전처가 낳은 딸을 거둬들인 것이니 그 둘 역시 엄연히 말해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경석과 채현 그리고 선경도 마찬가지. 쾌적한 관람을 위해 자세히 소개할 수 없지만 이들의 가족들도 피를 통해 이뤄진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러니 포스터에 나와 있는 대로 미라, 형철, 무신, 선경, 경석, 채현 모든 쥔공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면 ‘피’가 아닌 ‘정’으로 똘똘 뭉친 대안가족이 되는 셈.

이 부분에 이르면 당 영화는 그런 대안가족의 탄생을 축하라도 하듯 화면을 울긋불긋 수놓으며 판타지처럼 데코레이숑한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가족의 탄생>이 보여주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사실 미라나 선경처럼 나사가 하나 빠진 패밀리의 모습을 주위에서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작금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호랭이 담배피던 이전에 비해 많이 희미해졌음은 부인할 수 엄따.

그래서 당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은 이 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붕괴된 가정을 억지로 화해로 이끌어 재결합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지금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음 맞는 사람끼리 새로운 패밀리를 구성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해 <가족의 탄생>은 당연히도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덧붙이길,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바로 내 옆을 지나쳐가는 이가 장차 가족이 될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탄생은 도발적이다 못해 급진적이라 할 수 있겠다.



3.

이처럼 해체된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를 전통적인 의미의 재결합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특히나 가부장의 역할이 미비하거나 부재하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람난 가족>의 결말부, 다시 결합하자며 찾아온 영작(황정민 분)에게 호정(문소리 분)이 “넌 아웃이야!”라는 상징적 대사를 통해 가부장의 퇴장을 지시했듯 <가족의 탄생>에서도 아빠라는 존재는 힘을 갖지 못한다. 경석의 아빠만 보더라도 자신의 가정을 유지한 채 외도를 통해 경석을 가졌을 뿐 아니라 경석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아이를 남겨둔 채 종적을 감춰버리는 식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가족의 탄생>은 가부장의 아웃을 보여준 <바람난 가족>의 후일담 또는 뒷이야기, 즉 호정이 영작을 내침으로 인해 생긴 가부장 부재의 가정을 어떤 방식으로 유지할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빠가 없어진 그 빈자리를 다시금 아빠로 채워넣을까?

당 영화는 그 빈자리를 아빠로 우겨넣지 않는다. 김태용 감독은 굳이 아빠가 없어도 가정이 유지되는 데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양 말을 한다. 오히려 가부장이라는 굴레와 구속에서 벗어나서인지 당 영화가 보여주는 대안가족들은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미라와 무신을 남겨둔 채 떠난 형철이 다시금 컴백홈 하자 미라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를 집밖으로 내친 채 한발자국도 들이지 않는다. 가부장의 거부. 게다가 형철이 데리고 온 또 다른 아내(?)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지만 그 역시도 미라는 용납하지 않는다. 형철을 제외하곤 유일한 핏줄인 뱃속의 얼라마저 거부하니 이는 핏줄의 부정.

그럼으로써 당 영화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더군다나 가부장이 존재하지 않는 엄마 중심의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음으로 양으로 여성차별이 이뤄지고 이와는 별개로 혈연이 강조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가족의 탄생>처럼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일 테다. 그래서 당 영화는 아직까지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가족의 탄생>이 발을 붙이고 있는 지면은 현실, 그리고 영화는 현실을 바탕삼아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당 영화의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이야기를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2006. 5. 16.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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