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언론인?


1. 전(前) 직장에서 직원들끼리 ‘우리는 언론인인가?’에 대해 토론아닌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몇몇 인터넷 신물들이 ‘족보없는(?) 인터넷 신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재의 어려움을 겪자 오프라인 신문처럼 언론인 대접을 받기 위해 ‘인터넷 언론 연합회’ 같은 걸 만들자고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인 걸로 기억한다. 토론을 벌인 결과, 우리는 언론인이 아니다 쪽으로 결론이 났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우리가 다루는 기사들이 취재보다는 그 뒤에 나온 결과를 가지고 다시금 창작을 하는 쪽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린 자신들을 창작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지난 7월 새로운 직장에 입사해 글을 쓴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기본적으로 취재가 바탕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전 직장과 시스템이 달라 백퍼센트 적응이 된 건 아니지만 단순 정보제공 기사인 까닭에 큰 어려움없이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3개월째 되는 순간부터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영화인인가? 언론인인가?’


3. 영화는 산업이다. 이제 영화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비평문화가 힘을 갖지 못하는 건 영화를 예술로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작품성보다는 오락성을, 이야기의 질적 유무보다는 스타파워를, 노출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는 작은 영화보다는 큰 영화를 찾는 경향이 일방적으로 높아졌다. 이렇게 영화는 철저히 산업논리에 맞춰 굴러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 영화는 거래가 되었다. 거래가 되다보니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많이 생겨났다.

이를 견제해야 하는 건 언론, 다름아닌 영화 잡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화 잡지 또한 산업이 되고 말았다. 영화라는 하나의 기계 속에 이를 지탱하는 하나의 부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영화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기사들 또한 거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다반사다. 가령, 영화의 제작기를 표방하는 프로덕션 노트만 하더라도 이를 작성하는 건 영화 기자가 아니라 대부분이 현장 스태프이거나 마켕팅 회사 직원이다. 기자는 이를 받아 단순히 정리만 할 뿐이다. 그뿐인가, 영화 기사 하나를 실으려고 해도 사진이 필요하니 이들에게 부탁을 해야한다.

기자들에게 담당회사가 배정되고 이들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정기적인 만남의 자리를 갖거나 친구가 되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관계가 돈독해질수록 질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원하는 정보를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접한 후 기자들이 느끼는 반응은 독자보다 마케팅 또는 기획사, 제작사에서 오는 것이 더욱 크다. 비판 기사를 써도 날이 서질 않고 싫은 소리를 해도 우회적일 수밖에 없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영화기자들이 언론인보다 영화인에 더 가까운 건 이렇게 영화가 산업으로써 호황을 누리는 데 자의든 타의든 일조하고 있기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영화 잡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독자가 아닌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또 영화인들의 입장에서 글을 써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기자는 언론인이 아니라 ‘영화인’이다.


4. 10시 정도에 회사에 출근해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까지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날이 다반사다. 마케팅 회사로부터 한달 동안의 개봉영화를 체크해야 되고, 배우들의 인터뷰 일정을 잡아야 하며, 프로덕션 노트라든지 외국 감독 또는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얻기 위해서다. 좋게 말해 취재지만 알고보면 일종의 거래다. 그 과정에서 탐탁치 않은 거래도 생겨난다. 나에게 지난 달은 김래원 기사가 그랬고, 이번 달엔 김사랑 기사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김래원은 2페이지 기사면 적당했고, 김사랑 기사는 싣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마케팅 쪽에서 부탁도 있고 우리로써는 페이지 수도 챙길 수 있으니 결국 김래원은 6페이지의 인터뷰 기사, 김사랑은 함께 영화 출연중인 남자배우와 묶어 4페이지 기사로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개 기자인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다(원래부터 이를 거절할 용기나 담력, 배포도 없다).

그렇게 결정되자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영화도 보지 못한 상황이고, 워낙에 컨텐츠나 캐릭터도 없는 배우들이니 대체 질문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 것이며 이들에 대한 기사는 또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아니나 달라, 김래원의 경우, 모든 질문에 성의없는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이고, 이해도도 그렇게 높지 않아 생뚱맞은 대답을 하기가 일쑤다. 김사랑의 경우는 더 가관이다. 아마도 매니저가 연습시켜 놓은 모범답변이라도 있는 것인지, 준비된 질문에 맞춰 외우듯이 대답을 하는데 이를 기사로 풀어놓을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해진다.

이런 그들의 기사를 쓰고 있자니 마치 막대사탕에 설탕을 잔뜩 뿌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용없이 단답형 질문만을 늘어놓는 김래원 사탕에겐 ‘단호하다’고 설탕을 뿌려줘야 하고 매니저가 준비해 온 답변을 앵무새처럼 지저귀고 있는 김사랑 사탕에겐 ‘생각 있는 배우’라고 솜사탕 장식을 해줘야 한다.

그런 기사가 잘 써질 리가 없다. 결국, 이 두 기사는 편집장으로부터 여러 번의 지적과 수정을 거친 끝에 가까스로 완성이 되었다.

5. 나는 내가 언론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월간지의 영화기자라고 해서 언론인도 아니며 또 그렇게 될 자질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영화인이 되기는 싫다. 더군다나 그것이 타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면 더더욱 싫다. 그런데 난 슬슬 영화인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벌써 영화인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산업 속의 영화 기자는 말 그대로 소모품에 불과하다. 그런 영화인이, 즉 영화 기자가 하나 빠진다고 한들 산업으로써의 영화에 어떤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을까. 부품이라도 되었으면 그나마 존재의의라도 갖을 수 있게지만 단순 소모품인 영화 기자는  존재로써의 의미 조차도 없다.

영화 기자가 싫어지는 건, 이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건 이 때문이다.

3 thoughts on “영화인? 언론인?”

  1. 버디/ 나도 이제 빠돌이가 생겼으면 좋겠다. ㅋㅋ 형님이 드디어 저의 1호 빠돌이가 되시는군요. 음화하하. 농담이구요. 아무튼 요즘 심각하게 고민중이에요. 근데 방법이 뭘까요? 개인이 힘을 갖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면 또 그 방법은 뭘까요? 차차 생각해봐야할 문제 같아요. 하여튼 매번 고맙워요 형.

    쾌남/ 너도 화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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