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다문화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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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는 ‘친구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들어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을 이방인이 아닌 친구,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보자는 공감대가 급속도로 확산 중이다. 영화는 그런 다문화 가정과 이주노동자를 향한 마음의 거리 좁히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전파하며 ‘천국에 갈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구애를 펼치고 있다.   

<반두비>(2009)는 제목부터가 벌써 ‘좋은 친구’를 의미하는 방글라데시 어에서 가져왔다. 영화는 체불임금 문제로 곤란을 겪는 카림(마붑 알엄)과 그를 돕는 여고생 진희(백진희)와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 많은 장면을 할애한다. 요컨대, 동남아 출신 남성과 한국 여성의 로맨스는 한국영화사(史)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인종 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다. 물론 이들의 사랑이 극중에서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지만 카림과 진희는 끝까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반두비>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음식 먹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마지막, 진희가 카림 고향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은 적극적으로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상징적인 행위인 것이다. 

<로니를 찾아서>(2009)는 우정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로니(마붑 알엄)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인호(유준상)를 보여준다. 그는 왜 로니를 찾아 방글라데시까지 오게 됐을까, 그 사연을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인호와 로니는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태권도장 사범인 인호가 로니와의 대련에서 패한 것. 자존심이 상한 그는 재대결을 원하지만 로니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그 과정에서 인호는 외국인에 호감을 가진 이도 만나고 적대감을 가진 이도 만나면서 로니에 대한 아니, 한국내 외국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인종은 달라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호가 로니를 찾아 방글라데시까지 간 것은 공존을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화해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2005)의 만택(정재영)과 희철(유준상)이 그 먼 우즈베키스탄까지 간 이유는 맞선 때문이다. 연애에는 숙맥인데다가 시골청년이라는 이유로 여자들에게 번번이 퇴짜를 맞는 만택은 친구 희철을 설득해 원정에 나선다. 그들에게 푸른 돔의 이슬람 사원과 실크로드 시대를 그대로 간직한 우즈베키스탄이 전혀 낯설기만 하다. 비록 결혼을 목적에 둔 맞선 자리일지언정 연애 경험이 아주 없는 만택에게는 특히나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맞선 자리에 나온 여자보다 현지인 커플 매니저 라라(수애)에게 더 마음을 뺐기니. 결혼은 거래가 아니라 진심이 통할 때 비로소 이뤄지는 정신과 육체의 합일이라는 사실을 만택과 라라는 서로의 순수를 통해 확인한다. 그렇게 이들에게 국적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영화가 다문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바리케이드>(1997) 때부터다. 다문화 역사가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닌 것이다. 반면 가까운 일본이라든지 미국은 우리보다 그 역사가 길지만 그들의 다문화 관련 영화도 대개 공존의 어려움과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의 경우, <고>(2001)와 <박치기>(2004)가 대표적인데 모두 젊은 재일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정서적 거리 좁히기와 그에 따른 갈등을 다룬다.

<고>의 스키하라/이정호(쿠보즈카 요스케)는 재일한국인으로 일본 여학생 사쿠라이(시바사키 코우)를 사랑하지만 국적이 방해물로 작용하고, <박치기>의 코우스케(시오야 슈운)는 조선 고등학교의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를 짝사랑하지만 일본 학생과 조선 학생 간의 패싸움으로 선뜻 그녀 앞에 나서기가 껄끄럽다. 하지만 두 영화는 모두 양국의 역사가 어깨를 짓누를지라도 수많은 공존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새로운 관계의 모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고>의 스키하라/이정호는 모든 걸 잃지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박치기>의 코우스케는 한국의 ‘임진강’을 부름으로써 역사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다가올 미래를 긍정한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달리 다문화가 국가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많은 수의 다문화 관련 영화가 제작되어 왔다. 다만 여전히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그들에게도 다문화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해롤드와 쿠마>(2004)는 다문화에 대한 민감함을 유머로 승화하며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경우다.

한국계 해롤드(존 조)와 인도계 쿠마(칼 펜)는 미국인이지만 소위 말하는 ‘소수인종’이다. TV를 보던 중 햄버거 광고를 보고 그것을 먹겠다는 일념 하에 하룻밤 여행을 떠난다. 황당한 설정처럼 햄버거 여행길에 이들을 기다리는 건 인종차별을 포함한 황당한 소동들이다. 모두 극복한 끝에 햄버거를 먹으며 해롤드와 쿠마는 수많은 박해와 배고픔 끝에 결실을 맺었노라며 감격에 겨워한다. 하지만 감동은커녕 우스꽝스럽다. 여기서 웃기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문화라는 소재가 반드시 신성시 될 필요는 없다. <해롤드와 쿠마>처럼 유머의 소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다문화는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마치 친구이자 가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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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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