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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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현재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이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광 감독과 배우, 영화평론가들이 직접 추천한 영화를 한 달 넘게(1.15~2.28) 상영하는 자리로 박찬욱, 봉준호, 이명세, 최동훈, 김지운, 안성기, 정성일 등이 참여한 명실공이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행사다. 이 기간 동안 서울아트시네마는 상영관을 찾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영화가 끝난 후면 이를 추천한 영화인과 관객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뤄지는 등 말 그대로 ‘시네마 천국’에 다름 아니다.

마냥 축제 분위기여야 할 친구들 영화제의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달리 심상치 않다. 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운영비 중 30% 정도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공모제를 추진하면서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게 됐다. 이미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가 그간의 업적을 부정당하고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유령 단체에게 운영권을 강제로 넘겨준 상황.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공모제를 통해 집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는 것이다.

지난 1월 29일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조셉 로지의 <트로츠키 암살>(1972)이 상영되기 전 관객 대표자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위기 상황을 알리며 사태 해결을 위한 관객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시네마테크, 관객이 공모한다!’는 주제로, 5000명 이상의 관객들이 매달 1만 원 이상 씩을 1년 동안 후원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를 1년 간 지킬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당장 3월 만료를 앞둔 허리우드 극장 측과의 공간임대 계약을 연장해 급한 불을 끄고 관객의 후원으로 얻게 될 앞으로의 1년 동안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정책 당국자와의 협의를 통해 안정적인 공간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영화판에 ‘철거주의’ 유령이 떠도는 것은 사실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모제 사태는 영진위를 앞세운 MB정부의 개발논리가 빚은 또 하나의 참극이다. 겉으론 더 나은 환경을 정당성으로 내세우면서 결국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MB진영의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는 비단 용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지배층의 천문학적 수익 창출을 위해 서민의 기본권이 박탈당한 용산 참사의 개발논리 구조는 보수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영진위가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구도 속에 고스란히 영화판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 목록을 보면 불도저식 개발논리를 비꼬거나 자본에 억압받는 민중의 분노를 다룬 영화들이 전면에 포진한다.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1972)은 무분별한 자연 훼손이 빚은 폭력과 야만성에 대한 비극적 최후를 다루고, 박찬옥 감독(<파주>)이 추천한 마이크 리의 <네이키드>(1993)는 대처리즘에 입각한 보수주의 정부 하에서 하층민과 노동 계급이 겪는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세기말적 풍경을 그리며,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1940)는 자본가의 탐욕으로 궁지에 몰린 노동자가 사회의 불평등을 인식하고 각성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중에서도 <트로츠키 암살>은 우연치고는 너무나 흡사하리만치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를 둘러싼 영화계의 환경을 은유(metaphor)하기 적절한 작품이라 할만하다. <트로츠키 암살>은 제목 그대로의 영화다. 트로츠키보다 ‘암살’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영화는, 그래서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대신 혁명 주변을 떠도는 유령 같은 이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트로츠키 암살>이 다루는 유령(?)은 바로 트로츠키와 그를 암살하려는 암살자다. 트로츠키는 혁명 노선을 두고 스탈린과 맞서다 망명한 후 유령처럼 세계 각지를 떠돌았고 암살자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이름도, 신분도, 무엇보다 스스로의 신념도 버린 유령 그 자체였다.

여기서 조셉 로지 감독이 더욱 주목하는 이는 암살자다. 특히 암살자의 역할을 알랭 들롱이 연기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많이 알려졌듯, 알랭 들롱은 날카로운 외모에서 풍기는 우수에 찬 고독의 이미지로 ‘엣지남’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전설적인 배우다. 그런 그가 <트로츠키 암살>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프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연기를 펼친다. 개인적으로 알랭 들롱이 암살자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를 모았건만 웬걸 이 영화에서는 암살이라는 행위 자체에 함몰되어 사리불별이 제대로 되지 않고 때에 따라 신념이 오락가락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이다.

조셉 로지 감독은 알랭 들롱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멋있는 킬러의 이미지를 비틀어 암살자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극중 암살자가 행하는 암살의 기저에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혁명의 분위기에 휘둘려 달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려는 객기의 기운이 짙게 깔려있다.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나 참혹해서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넘어 트로츠키가 꿈꾼 영구혁명의 꿈은 그대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날 <트로츠키 암살>의 상영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게 가하는 공모제 시행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암살자에게서 영진위의 모습이 겹쳐졌다. 물론 영진위가 암살자라는 뜻은 아니고 (설마 그럴 리가!) 극중 암살자의 결정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한 ‘동기’와 그 행동이 가져온 ‘파장’이 지금 영진위가 영화계에 불러일으킨 혼란의 기운과 맞닿아있는 것이다. 미디액트부터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까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영진위의 다음 목표는 한국영화아카데미라고 한다!) 일련의 공모제 사태를 가능케 한 배경은 앞서 밝힌바 MB정부의 개발논리(를 앞세운 반대세력 척결?)이고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식의 일방적인 업무집행이 영화생태계의 기초터전을 파괴한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공정한 집행 절차와 투명한 심사를 요구하는 여론에 맞서 영진위가 내세운 논리라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 결과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선정과정이 공정했다.’며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여러 기사를 통해 보도됐듯이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음이 밝혀졌고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모제에 대한 항의를 접한 조희문 위원장은 “관객은 안정적으로 영화만 보면 된다.”고 답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신념도, 목적도, 스스로의 존재 자체도 망각한 유령 같은 영진위의 정체다. 

<트로츠키 암살>에서 극중 트로츠키(리차드 버튼)는 이런 얘기를 한다. “나의 말은 앞문으로 나가 세계에 혁명을 전파하고 뒷문으로 돌아온다.” 극 중반까지 트로츠키의 이 말은 속뜻을 헤아리기 힘든 궤변처럼 비친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원래 의도가 특정 세력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는 상황에 대한 비판임이 밝혀진다. 현 영진위가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 자기 입맛에 맞는 정책을 일방 추진하는 것은 국가 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하에 뒤로는 자기 뱃속을 불리는 MB즘의 도래 탓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거창한 명분을 방패를 두르고 사회를 좀먹는 MB즘의 폐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영화판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우리 영화계에는 ‘영진위’라는 이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ps. 기사가 나간 이후 영진위는 2월 10일 끝내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공모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허리우드 3관이라고 장소까지 못 박으면서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가 설립한 단체가 아니다. 그저 일정액을 지원만 했을 뿐이다. 애초 서울아트시네마는 공모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해명해야할 영진위의 조희문 위원장은 베를린영화제 출장을 핑계로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유령처럼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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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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