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시> 김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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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SF를 좋아한다. 소설도 읽고 영화도 찾아보며 책으로, DVD로 소장도 하고 있지만 대개는 영미권이거나 일본의 작품이 대다수다. <열한시>가 반가웠던 건 <설국열차>와 더불어 국내에서 오랜만에 보게 된 한국의 SF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거품이 잔뜩 꼈던 2000년대 초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내츄럴 시티>(2003) 등과 같은 100억대 제작비에 가까운 SF 블록버스터의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결과는? 하나 같이 쫄딱 망하면서 한동안 영화사들의 제작 목록에서 SF는 거의 삭제된 장르나 다름없었다.

김현석 감독의 <열한시>는 그와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SF다. 새로운 소재보다는 지금 한창 각광받는 ‘시간여행’을 주요한 설정을 가져오며 제작비 또한 중급 규모(약 30~40억 원대)로 책정해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렇더라도 블랙홀 내 웜홀을 통해 시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론에 근거, 타임머신을 등장시킨 설정은, 그것이 한국영화라는 사실과 결합해 기대감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24시간 후인 내일로 가 15분만 머물 수 있다는 조건에 따라 우리의 주인공들은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러시아의 투자 기업으로부터 시간 이동 프로젝트의 중단을 통보받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테스트 이동을 한 것이었는데 시간여행에는 성공했지만 연구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기지는 폐허가 되어있음을 목격한다.

이에 영화는 주인공들이 오늘로 돌아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열한시>는 관객들에게 왜 제목이 ‘열한시’인지, 왜 타임머신의 이름은 ‘트로츠키’인지, 왜 비극적 운명을 목격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을 격리시키지 않았는지 등 많은 의문점을 남기는데 이번 인터뷰는 그와 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니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로맨틱코미디를 주로 만들어왔던 김현석 감독이 어떤 심경의 변화로 한국에서 만들기도 어렵고 인정받기는 더 힘들다는 SF에 도전했는지가 궁금했다. 이를 통해 한국 내에서의 SF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것이 이번 인터뷰의 목적이었다.

김현석 감독과의 인터뷰는 <열한시>의 개봉 당일이었던 11월 28일 오후 광화문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에서 약 40분 동안 이뤄졌다. 예매율 1위의 소식이 전해졌지만  김현석 감독은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개봉을 맞이한 감독들이 대개 그렇듯 영화에 대한 평가에 민감해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개봉했다. 예매율도 1위고 관객 반응도 좋은 편이다.
잘 모르겠다. 객관화해서 보기가 힘들다. 호오가 좀 갈리는 편이더라. 이 영화에 대해서 대체로 비판하는 부분은 초반 20분 장면이다. 아예 대놓고 “오글거리던데요”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 뭐, 눈높이 차이가 있잖나. 영화가 좀 부족하지만 이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반면에 내 대학친구들은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인데 어려워하더라.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SF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생소한 쪽이다 보니 <열한시>는 최대한 어렵지 않게 연출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초반의 프리젠테이젼 장면은 나름대로 타임머신의 논리를 설명하려고 넣은 거다. 그 부분에서 아예 영화를 놔버리는 관객도 있더라. 정말 아주 간결하게 설명한 건데 영화평론가 듀나 외에는 아주 혹평은 없다. (웃음)

SF를 만든다는 것

본인이 직접 쓴 이야기로 작업해 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시나리오를 받아서 연출했다.
나는 각색을 했다. 지금까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만 만들어왔다. 그래서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이하 ‘<시라노>’)이 시나리오 재고떨이 영화였다. 이후 써놓은 시나리오가 없었는데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와 연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써서 할 수도 있었지만 CJ에는 여기저기서 개발된 좋은 시나리오가 있었다. 여러 개를 봤는데 처음에는 CJ측에서 내가 코미디를 많이 했으니까 그쪽을 하길 바라더라. 그게 무난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선택이었다. 그 후에 내가 안 해본 스릴러나 좀비물 같은 장르 시나리오들을 보여줬다. <열한시>가 가장 재밌었다. CJ에서는 굉장히 의외의 선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막상 영화를 직접 연출하면서 그 어려움은 예상을 못했다.  

원래 SF 장르를 좋아했나?
관객으로서는 좋아했다. 근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반대더라. 지금 말한 초반 20분이 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잖나. 근데 후~ (한숨을 쉬며) 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내가 너무 순진해서 SF를 만들게 된 것 같다. 공개되고 나서 내가 ‘와~ 최고의 CG입니다’ 한 건 아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쩌면 차선일수도 있었는데 거기에 대고 ‘오글거리는 CG 좋아요’ 그렇게 비아냥대면 속상하다.

그런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나?
물론 이와 같은 반응들은 처음부터 감수한 건데 영화를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컨대, <그래비티>(2013)와 눈높이를 맞추면 안되잖나. <열한시>가 비주얼로 승부를 보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야기를 보는 데까지 삐딱하게 시선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죄송하지만 영화 초반의 비주얼은 잊고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하고 싶지만 영화라서 이게 참 내 맘 같지가 않다.

<열한시>는 스케일이나 이야기의 성격 상 <그래비티>가 아니라 <더 문>(2009)과 같은 저예산 SF와 비교해야 맞는다고 본다.
<더 문>도 참조를 했다. 근데 <더 문>도 할리우드 기준으로 볼 때 천만 불(우리 돈 약 100억 원)은 넘었을 거다. 하면서 뭘 느꼈냐면, <더 문>이 100억을 가지고 만들었다면 미술에 쓰인 돈이 최소 우리가 쓴 거에 다섯 배 이상은 될 거다.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 탁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 돈이 똑같이 든 거다. 우리의 입장에서 그 비용의 5분의 1안에서 탁자를 만들어야 하니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와 같은 제작비의 문제를 절감했나?
이를테면, 영화 속 배경이 2150년 이러면 우리 영화로는 구현할 수도 없다. 아주 간단한 소품들 있잖나. 프로토 타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비싸다. 그래서 소품을 일부러 아날로그 식으로 중화를 시켰다. 가끔 기자님들로부터 “<열한시>를 다시 만들면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제작비를 30억 정도 더 준다고 해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가 없다. 300억은 돼야한다. 나는 오히려 키치적으로 만들고 싶다. 이런 의도였구나 하는 반응들이 차리라 낫지 니들 이거 흉내 내려고 했구나, 이렇게 되면 안될 것 같다. <열한시>의 이야기 규모로 백억 이상의 투자를 받을 수는 없고 그런 점에서 내가 순진했던 것 같다.

제작비 부분도 그렇지만 사실성 부여에 있어서도 고민이 있지 않았나? 물론 <열한시>는 하드 SF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영화이니만큼 어느 선까지는 과학적인 근거에 충실해야 했을 거다.
대한민국 유일 블랙홀 전문가 박석재 박사님에게 실제로 자문을 구했다. 그 분이 그랬다. 블랙홀에 대해서는 내가 국내에서 1인자다. 내가 괜찮다는데, 맘대로 해도 된다. 딴죽 거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막아주겠다. 그게 도움이 됐다. 왜냐면, 물리학이라는 게 시간여행에 관해서는 모든 게 이론이다. 테스트해본 사람도 없고 블랙홀을 직접 본 사람도 없다고 하더라. 웜홀을 본 사람은 또 어디 있겠나.

극 중 프로젝트 연구원인 우석(정재영)과 영은(김옥빈)은 시간여행을 온 자신과 대면한다. 평행우주와 관련해서는 어떤가?
평행우주로 가면 복잡해진다. 타임패러독스로 가면 내가 나를 만나면 안 된다, 라는 게 있다. 만나려고 해도 직전에 바나나껍질을 밟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순간 이 세계가 흐트러지니까,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또한 경험한 사람이 없잖나. 무엇보다 우리 영화의 핵심이 내가 나를 만나는 거다. 그래서 시간여행물의 기존 컨벤션과는 다르게 우리는 내가 나를 만나게 했다.  

‘김현석’표 멜로와 결합한다는 것
 
원 시나리오와 각색된 시나리오 사이에서 가장 변한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많이 각색한 부분은 당연히 멜로다. 각색을 하면서 가장 먼저 캐롤 킹의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를 떠올렸다. 애초에 <열한시>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장르의 컨벤션을 그대로 따르고 싶지 않았다. 미드가 인기를 끌고 많이 제작되면서 갈수록 개성은 사라지잖나. 물론 <열한시>도 미드처럼 무조건 카메라 흔들고 빠른 속도의 이야기 진행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색깔을 남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다.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같은 경우만 해도, 팝송이라 우리 영화처럼 없는 예산에서는 지불해야 하는 저작료가 엄청 셌다. 제작자분들이 그 노래 꼭 넣어야 하나, 저것만 빼면 미술에 더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랬다. <열한시> 중간에 보일러실 나오잖나. 나도 뭐 거기서 찍고 싶었겠나. 돈이 없어서. (웃음) 그때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감독님 그 노래를 포기하시면…….” 근데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처럼 멜로적인 부분에서 나의 각색이 많이 들어갔다.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는 꽤 잔인했다. 목 부러져서 죽고 그랬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수위의 표현을 싫어한다. 무엇보다 내가 각색을 맡으면서 극 중 남자 팀원들이 한심해졌다. 근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특히 박철민 배우가 연기한 엔지니어 박영식 부분에 대한 불만들이 많다. 그의 코믹함이 장르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는 지적이다.
그렇긴 한데 그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박)철민이 형은 <YMCA 야구단>(2002)을 빼고는 내 영화에 모두 출연했다. 코믹배우이지만 내 영화에서는 톤 조절이 됐다고 생각한다. 철민이 형은 마당극처럼 혼자 다 하는 스타일인데 <시라노>에서는 그렇게 까불지는 않았다. 나랑 할 때는 늘 자제하는 편이다. 철민이 형이 술 취해가지고 어떤 평을 보더니, “야 <7광구>가 뭔 죄가 있어” <7광구>(2011)에 철민이 형이 나오잖나. 그러니까, 이게 <열한시>가 <7광구> 같다는 게 아니라 장르영화로서 <7광구>에 나왔던 철민이 형의 캐릭터가 나쁜 예가 된 거다. 오히려 나는 그래서 좋았다. 그 난리 통 와중에 심각한 표정의 배우만 나올 줄 알았지? 박철민 같은 경우도 있다. 그처럼 공들인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순돌이’ 이건주였다. 과거에 방영됐던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1986)의 순돌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순돌이가 사람을 죽이네, 그 때문에 놀랐을 것 같다.  

박철민과 <스카우트>(2007)의 이건주, 그리고 <시라노>의 최다니엘까지,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과 인연을 길게 가져가는 편이다.
그냥 그분들과 함께 하면 내가 맘이 편하다. 근데 철민이 형 같은 경우의 얘기가 나오면 나까지 속상한 거다.  

<열한시>를 전작의 로맨스코미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SF이다보니 특유의 분위기가 깨지기 때문에 그런 불만들이 나오는 것 같다.
내 모든 영화들이 그런데 <열한시>의 남자 캐릭터들은 다 멍청하다. 영은이가 제일 똑똑해. 그게 다 전작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제일 잘 다룰 줄 아는 거면서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감독님들도 그렇겠지만 완벽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재미가 없다. 다만 나는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수준 이상의 불완전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영화는 결함 많은 남자의 성찰을 다룬다.

그래서 <열한시>는 노골적으로 운명은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전작들에서는 체험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 게 <열한시>에도 녹아있다. 이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나는 우석이 심해의 기지에서 탈출 못 하는 걸 알았을 거라고 본다. 근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이 연구도, 존재의 의의도 사라지니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거다. 그렇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뉘앙스로 간 거는 이 영화의 대중적인 선택을 위해서 이게 맞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열한시>의 초고를 받고 좋았던 거는 주인공이 그냥 죽고 끝난다. 그게 새롭더라. 할리우드였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거다. 우스갯소리로, <열한시>가 대중영화인데 살아남은 영은과 지완(최다니엘)이 우석이를 데리러 다시 타임머신 타고 가자 이러면서 끝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근데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나마 뉘앙스를 넣은 게 지금의 결말이다.

또 다른 형태의 결말은 없었나?
영화에서는 잘렸지만 그 뒤에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영은의 극 중 아버지인 오광록 선배가 살아서 돌아온다. 나중에 DVD에 들어갈 텐데, 영은과 지완이 우리 둘이 어떻게 탈출했지? 우석이 형이 운명을 바꾼 건가? 그렇게 둘이 놀라하고 있을 때 개가 짖어서 보면 오광록 선배가 백발이 된 채 영은 앞에 나타난다. 놀라는 영은을 향해 오광록 선배가 특유의 목소리로 “1년 뒤로 가려고 했는데 15년 뒤로 왔네” (웃음) 근데 모니터 시사를 해보니까 많이들 헛갈려 하시더라. 그래서 편집에서 뺐다. 지금은 무슨 <아마겟돈>의 분위기처럼 끝나지만 극 중 오광록 선배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영은과 지완이 우석이형 살리러 다시 과거로 갈까, 이에 맞춰 배경이 크리스마스라 눈이 내리면서 따뜻한 느낌으로 끝난다.

<열한시>의 결말이 차갑게 느껴졌던 건 우석과 영은과 지완이 서로 친한 사이였지만 극 중 사건의 아비규환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삼각관계 구도라 더욱 그런 것 같았는데 안 그래도 영화 속에 삼각형 형태의 세트가 종종 등장하더라. 삼각구도는 멜로물에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설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영향이 <열한시>에 짙게 배어있다.  
와~ 그런 생각은 못 했었는데 다음 인터뷰부터는 그렇게 이야기해야겠다. (웃음) 우리가 세트와 관련한 콘셉트를 위해 자료조사를 했는데 시간이동 관련한 책을 보면 에셔의 그림과 함께 ‘펜로즈의 삼각형’이 많이 나온다. 원래는 미술감독의 제안으로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형태로 가려했지만 예산 문제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각형구도를 가져가게 된 거다. 우석과 영은, 지완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은이 우석을 좋아하지만 이성으로써가 아니라 유사 부녀 같은 느낌이다. 극 중 오광록 선배가 사라지고 나서 제자인 우석이 영은을 아버지처럼 보살폈을 테니까. 넓은 의미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인 거다. 내가 처음에 고쳤던 각색에는 세 사람이 치정관계였다. 그때도 극 중 우석의 부인이 자살을 한다. 다만 지금 버전과 다르게 우석과 영은의 관계 때문에 그런 거였다. 그 때문에 지완이 우석을 죽이려고 하는 건데 주인공이 이렇게 비도덕적이어도 되냐는 반응이 있었다. (웃음)  

SF를 연출하면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
내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한다. 다시 멜로다. (웃음) <열한시>를 통해 멜로 외의 다른 장르를 해보니까 이런 장점이 있더라. 이 작업도 즐거웠지만 마흔이 넘었는데도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웃음) 그렇게 하기 싫었던 멜로를 다시 좋아하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열한시>는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의 영화인가?
영화감독으로서 목표는 55세까지 10편을 만드는 거다. 그런 점에서 <열한시>는 다섯 번째 작품이니까 이 영화의 전과 후로 나의 영화인생이 나뉠 것 같다. 영화 인생의 경계선 같은 느낌이랄까. 내용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영화에 임하는 자세는 바뀔 거다. 말하자면, 난 더 이상 순진하지 않아. (웃음)

한국의 순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SF라 반가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김현석 감독은 SF에 대한 애정보다는 감독으로서 변화가 필요해 이 장르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열한시>는 한국의 대중들이 SF에 갖고 있는 선입견을 의식해 스릴러로 홍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지금 한국에서 SF가 처한 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한시>가 갖는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석 감독은 “한국에서 만든 SF의 사례 정도로 언급되지 않을까”라는 말로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니까, 이전의 SF영화들이 단순히 상상력에 기대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생산했다면 <열한시>는 시간 이동에 대한 탐구와 과학적 검증으로 최대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게 조금씩 전진해가는 것이다.

올해 한국영화계는 <열한시>와 <설국열차>라는 두 편의 SF를 생산했다. 앞으로 더 많은 SF영화를 보기를 기대해본다.    

딴지일보
(20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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