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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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카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적었다. 방송인 김제동은 1인 시위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역사교육연구소의 김육훈 소장은 어느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역사라는 게 원래 ‘복수’(複數)다. 역사는 절대로 ‘단수'(單數)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역사의 정의(定義)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 나름의 역사에 관한 정의가 있다. 역사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모아놓은 그 수만큼의 정의를 가진다. 그래서 역사의 정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표현은 애당초 틀렸다. 역사의 정의는 그렇게 정의(正義)를 획득해왔다.

그러니 역사를 드러내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국사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또한, 갈래가 많은 매체를 통해 역사관을 확립한다. 영화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대개 엔터테인먼트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역사를 알리고 기록하는 꽤 좋은 매체다. 일례로, 영화 <암살>은 항일투쟁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광복 70년 동안 모두에게 잊혔고 국사 교과서에서 사라졌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존재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할리우드는 오래전부터 영화를 미국의 역사를 정의하고 바로 잡는 수단으로 즐겨 활용해 왔다. 진보와 보수 세력 너나 할 것 없이 영화를 통한 역사 알리기에 갖은 노력을 기울이며 (과장을 조금 보태) 할리우드를 역사의 각축장으로 만들어왔다. 할리우드가 거대한 스펙터클과 흥미로운 이야기 사이를 역사로 접착해 전 세계에 미국사(史)를 친숙하게 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저메키스다. <백 투 더 퓨처>(1987) <포레스트 검프>(1994) <콘택트>(1997) <캐스트 어웨이>(2001) <플라이트>(2013) 등 로버트 저메키스는 최첨단의 기술력을 동원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축하는 데 있어 뛰어난 실력을 과시해 왔다. 그와 같은 연출력은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영향받은 재능인데 이 둘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보수파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그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스필버그의 작품을 일러 보수적이라 칭하는 건 ‘기승전 가족화합’의 이야기 구조 때문이다. <죠스>(1975)와 <쥬라기 공원>(1993)에서 각각 죠스와 공룡이 사람들을 공격해도, <쉰들러 리스트>(1993)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처럼 전쟁이 양산한 비극의 와중에서도, <A.I.>(2001)와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의 묵시록적인 미래 사회에서도 결론은 언제나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간의 행복한 재회이었다. 특히, 백인 남성 아버지가 바로 서야 나라의 기강이 잡히고 세계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발상은 그의 영화를 ‘보수적’이라 규정하는 기준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스필버그 개인을 보수주의자로 밝혀 정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민주당의 지지자이면서 지난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런 행보에 걸맞게 <칼라 퍼플>(1985) <아미스타드>(1997) <링컨>(2012) 등 흑인의 인권 신장을 호소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온 진보주의자이기도 하다. 로버트 저메키스도 그렇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편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영화를 만들어 지식인들의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대표작이라 할 만한 <포레스트 검프>가 그런 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명성이 무색하게 미국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영화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비판에 시달렸다.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가 75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다리까지 성치 않은 검프(톰 행크스는 이 역할로 보수적이라 악명(?)이 높은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때는 미국사에 숱한 사건들로 얼룩 졌던 1960~70년대로,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은 검프가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의 유일한 재능은 달리기. 매사가 긍정적인 검프는 앞뒤 잴 것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한다. 대학에 입학해 미식축구부에 들어가 공을 안고 달려 터치다운을 하고 베트남전에서는 화염에 휩싸인 전우를 안고 뛰어 전쟁영웅의 칭호를 얻기도 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사랑했던 제니가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는 마음을 다잡지 못해 미국 전역을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어느새인가 그 뒤로 많은 이들이 동참하면서 검프는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다.

검프가 보여주는 대책(?) 없는 긍정 주의는 1960~70년대에 미국이 저질렀던 악행에 낭만을 채색해 미국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죄 없는 민간인과 아이를 학살한 만행은 검프의 활약과 함께 의도적으로 제거된다. 그런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반전운동을 펼친 검프의 여자 친구 제니는 그에 대한 죄값으로 불치병에 걸려 끝내 죽음에 이르고 만다. 겉으로는 인간 승리의 휴머니즘을 지향하지만, 그 속에는 위대한 미국의 발전에 진보주의자들은 걸림돌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보수적인 가치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스필버그와 저메키스의 영화는 닮아 보여도 다루는 연출 방식에서 사뭇 다르다. 스필버그에게 영화는 올바른 미래로 나아갈 어지러운 현재의 해결책으로 가족화합을 제시하는 일종의 처방전이다. 저메키스에게는 상흔으로 남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여 긍정성을 복원하는 역사의 바로잡기다. 저메키스에게 역사란 과거와 미래라는 고층 빌딩 사이를 연결한 현재라는 줄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것이다. 그가 ‘하늘을 걷는 남자’ 펠리페 페팃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필연에 가깝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지상 412m의 높이, 42m의 간격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타워 사이를 2cm 폭의 줄을 연결해 건넌 펠리페 페팃의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 영화는 123분의 상영시간 동안 페팃의 전대미문의 사건에 20분을 할애하며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꼭짓점, 즉 옥상 높이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스펙터클을 3D로 극대화한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최첨단의 기술력에 이야기를 녹이는 저메키스의 능력이 여전히 녹록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작품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저메키스의 영화를 휴머니즘으로 분류하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지 못하는 쪽이다. 그의 작품이 인간애의 해피엔딩을 지향함에도 컴퓨터그래픽과 같은 기술에 종속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만 하더라도 펠리페 페팃이 전면에 나서지만, 로버트 저메키스의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극 중 펠리페 페팃이 1976년 8월 7일 아침 6시 45분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건넌 자신의 경험담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페팃이 이야기를 전하는 곳은 자유의 여신상의 꼭대기 층이다. 자유의 여신상에 자리 잡은 페팃의 뒤로는 노란빛의 석양이 무르익은 가운데 우뚝 솟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유독 눈에 띈다. 지금은 ‘그라운드 제로’로 남아 9.11테러로 아직 상흔이 가시지 않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이미지를 낭만적으로 수정하겠다는 의도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하늘을 걷는 남자>에 관심을 가진 건 펠리페 페팃 개인이 아니라 그가 남긴 신화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채색된 성공 신화다. 실제로 저메키스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복원해 내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페팃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향한 집착은 대단했다. 실제로 만난 그는 건물 안의 모든 엘리베이터의 위치, 고도와 너비, 빌딩 사이의 특징, 이 코너와 코너의 느낌까지 아주 상세하게 말해줬다. 이 빌딩을 향한 그의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 지금은 사라진 빌딩에 영혼까지 담고 싶었다.”

페팃이 도전에 성공하기 전까지 뉴욕 시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향한 감정은 부정적이었다. 무미건조한 고층 건물이, 그것도 두 동이나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망치고 있다고 대다수의 뉴욕 시민들은 불만을 털어냈다. 페팃의 도전이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으로 바꿔 놓았다. 그가 두 동 사이를 한 줄로 연결해 여러 번 오가는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펠리페 페팃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영혼과 생명을 불어넣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그와 같은 스펙터클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생각을 단숨에 바꿔놓는 데 효과적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이 기술에 대해 페팃은 ‘쿠데타’라고 표현하며 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저메키스의 능력도 본질에서 이와 다르지 않다. <하늘을 걷는 남자>를 선택한 저메키스의 감식안과 그가 원하는 이미지를 가능케 한 기술은 영화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서 예술로 승화한다.

예술적인 볼거리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사소한(?) 주변의 이미지를 지우기도 한다. 페팃의 성공은 당일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을 주도한 닉슨 대통령의 사임 소식을 1면의 구석 자리로 몰아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시공 소식을 접한 후 6년 동안 타워 사이를 건너는 일에만 몰두한 펠리페 페팃의 영화 속 사연은 9.11 테러로 화염 속에 무너져 내리던 폭력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각하게 유도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를 기술하고 기록하려는 이들에게 망각과 무관심은 치부를 감출 최적의 알리바이다. 페팃의 도전이 성공으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그전까지 그의 행동은 불법이었다. 개장 준비가 한창이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몰래 잠입해 옥상에서 두 타워 사이의 줄을 연결하고 건너기까지 페팃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순간, 정체불명의 남자가 옥상에 올라와 페팃과 눈이 마주친다. 이에 불안해하는 페팃과 다르게 이 남자는 저지하는 행동 대신 그대로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면 페팃의 쿠데타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는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 혼재한다. 역사의 중심에 선 인물이나 이를 기술하는 이들은 당연하게 좋은 순간만으로 기록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래서는 역사가 올바로 기술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다양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수정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하늘을 걷는 남자> 역시 다양한 역사의 시선 중 하나다. 그가 바라보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시선이 곧 공인받은 역사는 아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미국에서 로버트 저메키스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관객 반응으로 흥행에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저메키스가 복원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낭만에 미국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상호관계를 통해 이뤄지며 생물처럼 성장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역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수로 정해진 역사는 필연적으로 대화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대화가 부재한 역사는 역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쿠데타다.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페팃의 행위를 쿠데타라도 지칭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예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예술이 아니다. 누군가의 독단적인 행동이 성립하지 않는 영역이다. 역사는 복수가 될 때 비로소 대화가 성립한다. 대화가 곧 역사다.

 

ARENA HOMME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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