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배창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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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배창호 감독의 <길>(2006)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행>은 한국 문화의 미(美)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다> 중 한 편이다. 다섯 명(윤태용, 전계수, 배창호, 김성호, 문승욱)의 감독이 5개 지역(서울, 춘천, 제주도, 부산, 인천)을 배경으로 만든 이번 프로젝트에서 단연 눈길을 모으는 작품이라면 단연 배창호 감독의 <여행>이다. 혹자는 <여행>을 일러 ‘배창호 감독의 이름을 지우면 대학생이 만든 것처럼 젊은 느낌이 충만하다’고 평했을 정도로 과거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배창호 영화 세계의 또 다른 장(章)이라 할만하다. 이번 영화에서 배창호 감독은 1980년대 충무로를 주름잡았던 흥행 감독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간결하고 소박한 연출을 선보이며 전작 <정>(1999) <흑수선>(2001) <길> 이후 오랜만에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무엇보다 디지털로 작업하는 첫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변화’는 그에게 있어 영화 세계의 진화를 꾀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무엇이 그를 끊임없이 변화하게 독려하는 것일까. 배창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여행> 개봉(5/20)을 일주일 앞둔 5월 13일 압구정동에 위치한 카페 ‘조제’에서 약 1시간가량 이뤄졌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얼마 전 전주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셨어요.
배창호(이하 ‘배’) 심사하는 영화 위주로 봤어요. 개막작, 폐막작 합해서 13편 봤죠.

<여행> 개봉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요즘 여러 가지로 바쁘시겠어요.
줄여서 줄여서 하는 것도 그 정도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대외적인 일을 줄이는 편인데 이번에 겹쳤네요.

<여행>은 <길>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인데요. 2008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던 ‘배창호 특별전’ 때문인지 오랜만에 발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렇죠.

배창호 특별전은 감독님 영화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나요?
벌써 2년 됐네요.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그 이전부터 제의를 했는데 사양을 하다가 점검처럼 이제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내 기억 속에 잊고 있었던 영화들을 다시 보니 잠자고 있던 것들이 시대를 초월해 영사기에서 다시 숨을 쉬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영화의 힘을 느끼면서 나를 다시금 바라봤죠. 작품이라는 게 속일 수가 없거든.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수준이 그대로 나타나는 건데 내가 스스로 무시했던 거를 다시 발굴하게 되고  ‘아 저런 걸 아직도 가지고 있구나.’ 내가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려야겠다고 점검도 하게 되고. 내 영화를 TV로, DVD로, 비디오로 봤던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스크린을 통해서 요즘의 젊은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게 반가웠죠.

얼마 전에 기자시사회를 가졌지만 그보다 먼저 올해 1월 23일에 <여행>의 최초 프리미어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가지셨어요.
약속을 했거든. 특별전의 마지막 작품으로 <길>을 상영하면서 다음 작품을 만들게 되면 첫 번째 시사회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겠다, 특별전의 속편처럼 하고 싶다, 그렇게 인연이 돼서 하게 됐습니다.

그날 저도 영화를 보러 갔는데요. 젊은 관객들로 좌석이 꽉 찬 걸 보고 놀랐습니다. ‘기쁜 우리 배창호 감독님’이라고 쓴 응원 피켓을 들고 온 관객들도 있더라고요.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을 동원해 온 거야’ 의아했는데 (웃음) 감독님 특별전을 보고 생긴 팬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죠. 모든 감독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내가 느끼는 걸 관객과 호흡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는 건데 ‘따로 놀지 않는구나.’ 하는 반가움과 확인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만드는데 동력이 된 거죠.     


<여행> 배창호 감독의 18번째 영화

<여행>은 ‘여행’, ‘방학’, ‘외출’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다. ‘여행’은 제주도로 사진 촬영을 온 20대 대학생 남녀가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내용이고, ‘방학’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중학생 소녀가 방학을 맞아 본의 아니게 10년 동안 떨어져 지내던 엄마를 만나는 사연이며, ‘외출’은 남편과 딸 뒷바라지로 정신없이 살았던 주부가 제주도로 여행을 와 자유를 만끽한다는 이야기다. 이 세 개의 에피소드는 제주도라는 배경만 같을 뿐이지 서로 연관을 맺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로 관통하는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방황 끝에 모두 이성간의, 모녀간의,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배창호 감독은 늘 길 위에서 삶을 발견했고 길을 인생에 비유했다. ‘방황’이라는 출발지를 시작으로 ‘방랑’이라는 여행을 거쳐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인생의 여정을 담아왔던 것이다. <여행> 역시 다르지 않다. (뱃)길로 시작해 길 위를 떠돌고 결국 (하늘)길로 끝맺음된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로 데뷔한 이래 <여행>이 감독님의 18번째 작품입니다.
그렇죠. 지금 영화 만드는 사람이 평생 18편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면 힘들 거야. 난 적당히 했다고 봐야지. 실패작도 있고 범작도 있지만 영화 고를 때는 살얼음판 걷듯이 신중하게 고른 거야.

장편영화를 준비하시던 중에 <여행> 제안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리랑국제방송에서 투자를 했는데 이 기획의 특색이 한국의 도시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극장 개봉 이후에는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방영한다. 제주도는 처음부터 합의한 사항이었고 나의 창작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지장이 없는 제안이었어요. 워낙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 영화가 가진 보편성 때문에 해외 관객들도 쉽게 이해하는 편이었고.

제주도로 여행 온 20대 남녀와 주부, 그리고 제주도에 사는 해녀와 손자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인데요. 처음엔 조금 달랐다죠?
바뀐 과정이 있어요. 제주도 편 기획을 듣고서 여행이라는 아이디어가 바로 떠올랐어요. 삶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즐겨 다뤄온 비유법이었고. 극장 개봉 후 TV방영을 하니까 보이기 좋게 세 편의 옴니버스 단락으로 하자. 다만 관통하는 무엇은 있어야겠다. 처음은 20대의 여행 이야기, 두 번째는 신혼부부의 여행 이야기, 세 번째 단락은 중년 여인의 일탈 여행 이렇게 했는데 너무 컬러가 같을 것 같았어요. 그럼 2부는 우리가 여행을 하더라도 스쳐만 가는 게 아니라 현지 사람들의 삶을 느끼듯이 관객을 제주도로 안내하면서 현지 사람들 삶도 느끼게 하자. 그래서 두 번째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촬영 중간에 해녀와 손녀의 이야기로 바꾸게 되었죠.

여행이라고 하면 대개 외부자의 시선을 염두에 두기 마련인데 내부자의 시선도 포함시킨 것이 신선하더라고요.
시나리오 중간에 그런 생각은 했어요. 에피소드마다 연결고리를 신(scene)에서 한 번씩 만나게 해줄까. 하지만 너무 인위적인 것 같았고 또 프리프로덕션 때 놓친 것도 있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다만 느낌은 다 같죠. 소제목들이 ‘여행’, ‘방학’, ‘외출’인데 마치 중편소설집을 낸 것 같은 느낌이죠.

감독님께서 제주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어떠셨어요?
나는 외지인이니까 제주도 사람에 대한 삶은 제주도 사람들만큼 깊이 있게는 모르지. 내가 제주도에서 직접 살아본 체험이 있고 제주도의 삶을 깊이 있게 느끼고, 그래서 제주도라는 공간에 관한 숙성된 소재가 있었다면 다른 게 나왔겠지. 하지만 <여행>은 내가 외지인으로써 제주도에 대해 느끼고 있었던 것들이 표현된 거예요. 내가 영화 속에 자연 담는 것을 좋아해요. 촬영하면서 제주도의 바람, 비, 길, 바다, 돌, 구름 그런 것들을 영화 속에 담아서 즐거웠죠.

<여행>은 감독님의 첫 디지털 영화인데요. 디지털 작업은 어떠셨어요?
장단점이 있었죠. 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장점은 기동성, 필름을 제한 없이 쓸 수 있어 연기를 많이 리테이크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디테일이 가는 후반 작업이 용이했다는 점. 단점은 역시 영화적 질감과 깊이. 그건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디지털로 촬영을 하면서도 가급적 노력에 의해서 필름적인 느낌을 갖도록 했죠. 불편함은 전혀 없었어요.  

그럼 ‘여행’에서 20대 남녀가 찍는 사진이나 ‘방학’에서 손자가 그리는 만화 같은 것들은 감독님께서 의도적으로 필름적인 느낌을 살리시려고 넣은 장치인가요?
현대의 생활상을 묘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이죠. 휴대폰이나 문자 주고받는 거나 PC나 아이들 세계의 만화나 내가 그런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그대로 본 거죠.

사실 감독님의 영화에서 뛰어난 것 중 하나가 굉장히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일상적인 풍경인데요. 이번 <여행>의 경우는 제작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점 때문에라도 디테일을 살려야하는 각본을 혼자 쓰시기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다 나눠썼죠. 1편은 학교 제자들하고, 2편은 우리 딸하고, 3편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아내 김유미씨하고, 셋의 도움을 다 받았죠. 물론 급박했어요. 기획의 특성상 제작 마감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라서 잘 알겠지만 마감이 원고를 만드는 것처럼 즐거웠어요.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이 적어서 그랬지 집중력 있게 할 수 있었으니까 강도 있게 해서 좋았지. 1부를 먼저 찍고 와서 2, 3부의 시나리오를 쓰고 2,3부는 쭉 몰아서 찍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강도가 굉장히 셌죠.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었고.

다른 작품하실 때도 강도가 센 작업을 선호하시나요?
내가 집사람을 1월에 만나서 4월에 결혼을 했거든. 집사람이 두려워하더라고. 이렇게 짧게 만났는데 결혼을 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 내가 “물리적인 시간이 뭐가 중요하냐. 나는 하루를 한 달처럼 만났다.”고 한 말에 공감이 갔던 모양이야. (웃음) <여행>도 하루를 일주일처럼 강도를 가져가면서 일을 했죠.  

특별히 그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요?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요. 영화는 체험이 담겨 있을 때 가장 생생해지는데 감독이 모든 걸 체험할 수가 없잖아. 그리고 감독 자신의 체험만 담으면 감독의 특색은 되겠지만 다양해지지는 않죠. 물론 내 체험도 늘려야하겠지만 대신 나는 뭘 습득했냐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런 눈을 갖추도록 노력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내가 이해한 체험을 많이 녹였죠. 

‘방학’의 양은용(<경><독><팔월의 일요일들>)씨나 ‘외출’의 김유미(<러브스토리><정>)씨를 제외하면 모두 제주도 현지 사람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독님이 이해한 체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 그렇죠.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주도 현지 사람이고. ‘방학’의 해녀도 제주도에서 민속극하는 분이시고, 중학생 손자도 제주도 연기학원에 다니는 학생을 오디션 했고 단역들도 다 오디션을 봤어요. 시장 아주머니들까지 해서 연기에 관심 있는 현지 사람들을 뽑아서 했죠. 

프로 아닌 배우들과의 작업 역시 만만치 않으셨을 텐데요.
기획의 특색 때문에라도 그랬고 예산상의 문제도 있었고. 예산상의 문제도 영화의 톤을 만들거든. 일상적인 톤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더 드라마틱한 톤으로 할 것인가. 영화는 하나의 톤으로 잴 수가 없어요. 스타가 나오면 스타가 나오는 영화의 매력이 있는 것이고, <여행>은 비전문배우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니까 일상성을 살리자고 각오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선감을 피하는 게 좋았던 거죠. 물론 트레이닝 과정과 촬영 과정은 힘들었죠. 능숙한 배우가 편한데 신선감을 갖기 위해서, 내면적인 진정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의 가치를 더 받아들인 영화였기 때문에 힘든 걸 좀 감내했어요.  

확실히 현지 캐스팅 배우여서인지 감독님이 말씀하신 신선감은 없었지만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하 (웃음) 하지만 힘들어요. 영화는 재미있게 나오지만 촬영 과정은 힘들지. 영화라는 현장과 메커니즘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니까 인내력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시간도 없었고 또 내가 다혈질일 때가 많으니까. 요즘은 시간 여유들을 가지고 다들 즐겁게 하는 분위긴데 내가 막 밀어붙이니까 현장은 후끈 달아올랐죠. (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감독님은 현장에서 여배우에게 친절하지 못하다고 하셨어요. 근데 <여행>의 경우, 공교롭게도 세편 모두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이번에도 무뚝뚝하게 대하셨나요? (웃음)
하하 (웃음) 친절한데 성격상 무뚝뚝한 편이지. 왜 글 쓸 때도 집중하다보면 예민해지잖아.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내 모든 연장도구를 펼치고 작업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해있었죠. 후끈 달아올라서 누가 옆에서 건드리면 데일 것 같은. 그 분위기가 전체를 장악하죠. (웃음)

그런 작업 스타일 때문인지 감독님이 발굴하신 신인 연기자 중에 톱스타가 된 배우들이 많아요. 좀 더 열심히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랄까. 황신혜씨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로 데뷔했고 이정재씨는 <젊은 남자>(1994)로 영화 데뷔를 했어요.
가끔씩 그랬죠. 강수연도 신인(<고래사냥2>(1985)) 때 픽업했고. 하지만 내 작업 스타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유연하게 움직여요. 기성연기자나 스타급과 할 때는 거기에 맞는 대화를 하고 비전문배우와 할 때는 거기에 맞게 하고.

<여행>를 두고 감독님께서는 ‘열린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는 말씀을 자주 언급하셨는데요. 그런 태도가 비전문배우와 함께 작업한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열린 마음이라는 뜻은 막연한데, 물론 영화는 다 열린 마음으로 찍어야 해요. 그런데 내가 좀 더 겸허해졌다고 해야 할까. <여행>을 보면 20대 대학생 이야기도 나오고, 10대 소녀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사람들 입장에 맞춰 더 나를 낮춰서 듣지 않으면 안 들리는 얘기거든. 위에서 내려 보지 않고 눈높이를 맞춘 상태로 그들을 이해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죠. 그것은 <길> 이후에 내가 가졌던 시간들, 대학교수를 하면서 젊은이들과 가깝게 교류했던 일들, 내 딸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부성의 이야기, 아내의 고충과 고민을 들으면서 내가 느끼는 삶의 모습들, 그런 것들이 이제는 위에서 바라보지 않고 같이 느끼는 자세로 설명할 수 있는 거죠.


여전히 겸허해 지는 중

요즘 관객들에게 배창호라는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그는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배창호 감독을 빼놓고 한국영화사(史)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역동적인 한국 사회에서, 또 그만큼 빠른 변화를 겪은 충무로에서 배창호 감독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무작정 부딪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 담아야할 곳에 대한, 자신이 다뤄야 할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개 숙이는 겸허한 자세를 바탕으로 한다. 그가 영화를 하기 위해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학교 선배인 이장호 감독을 찾은 일화는 유명하다. <정오의 미스터 김>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는 배창호 감독 자신과 아버지를 모델로, 연극을 하고 싶은 샐러리맨과 아버지와의 갈등을 다뤘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 1등에 당선될 만큼 뛰어난 시나리오였지만 배창호 감독은 영화화를 포기했다. 객관화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배창호 감독은 <여행>에서도 자신의 명성에 상관없이 10대의, 20대의 사연에 밀착하기 위해 겸손하게 시선을 낮췄고 극중 비전문배우들과는 눈높이를 맞춰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여행>을 보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감독님의 과거 작품과 겹쳐지더라고요. 특히 ‘여행’은 20대의 풋풋한 사랑이란 점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정서가 느껴지던데요. 제가 궁금한 건 두 작품의 시간적 간격이 20년이 넘는데요. 감독님이 느끼시는 당시의 사랑과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대해서 조금 조심스러운 게 있어요. 10대와 20대를 묘사할 때 내가 나이 든 눈으로 그리지 않을까. 그래서 엇박자가 나지는 않을까. 그런데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우리 딸을 이해하는 시간동안 내가 느끼고 있던 인간 원형의 모습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아주 반가움이 있었지. 자신감도 생겼고. 아직 20대를, 특히 영화에서는 안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게 많았는데 내가 인간의 원형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나왔을 때 혹시 동떨어져 보일까봐 이게 검증될 때까지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하지 않겠다. <정>, <길> 이런 것도 시대가 다 예전이었잖아. 그런 자신감을 얻어서 기뻤고 그래서 이렇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할 수 있었고. 그리고 <여행>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기뻤죠. 

자신감을 얻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내가 느낀 거지. 내가 겸허한 자세로 가까이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편견 같은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거지. 우리 때보다 더 쾌락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깊숙한 곳에는 인간 원형의 순수한 모습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지.

일종의 희망을 보신 건가요?
희망의 문제보다는 아… (잠시 골똘히 생각) 희망이라는 표현보다는 뭐랄까… 희망 그러면 절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는 어… 그런 영화들이 더 만들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만들어지기 전에 투자자 선에서 만들어질 기회조차 없어지고, 그 기회가 악순환이라고 보이고. 순수한 모습들이, 사랑의 모습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영화들이 나오지만 경박함이라든지 천박함으로 포장될 때가 많았어요. 상업성이라는 이유로 그런 영화에 몰리고 그런 영화밖에 안 만들어지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결국 내 식으로 얘기하자면, 자극적인 첨가물이 든 음료수를 마시다보면 생수가 그리워지잖아. 그런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확인했다는 거지.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힘을 받으면 그런 영화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일까요, 항상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방랑 혹은 방황의 정서가 느껴져요. 특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길>과 <정>은 더 그렇고요. 이번 영화의 주인공 역시 다 방랑을 해요. ‘여행’의 20대 남녀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방랑하고, ‘방학’의 손자는 집 나간 엄마를 찾느라 방황하고, ‘외출’의 주부는 남편과 딸로부터의 자유를 찾기 위해 방랑하고 말이죠.
그렇지. 내가 느끼는 인생의 모습이 형태를 달리해서 나타나게 되죠. 여행이라는 여정, <여행>도 길을 떠난 사람들 얘기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방랑의 정서를 나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니까 영화 속에 투영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것이 감독님의 영화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정서일 텐데요. 최근 작품들은 그런 정서를 굉장히 간결하게 압축해서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벌써 제목부터가 간결하잖아요. (웃음)
나는 목적지가 있는 편이지. 사랑이라는. 그걸 향해서 달려가는 게 아니라 그러한 여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인물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합니다.

(이때 <하하하>의 홍상수 감독이 배우 유준상과 함께 근처 극장에서 <하녀>를 관람하고 등장)

어 아직 안 떠났네?
홍상수 감독(이하 ‘홍’) 인터뷰 하세요?
나도 요새 개봉하느라고. 하하 (웃음) 밖에 일은 잘 되죠

고생이 많네.
좋아 보이세요.
그래, 하하하 (웃음) 개봉해서 그런가?
어디서 개봉하세요?
나도 두어군데. 난 TV로도 보이거든.
개봉 제목이 뭐죠?
<여행>
기회 되면 보겠습니다.
그러면 좋지. 칸은 언제 떠나?
10일이요.
아이슬란드 화산 때문에 비행기는 문제없나?
파리까지만 괜찮으면요. 저희는 칸까지 기차 타고 내려가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인터뷰 계속 하세요
그래.

(잠시 옆 테이블에서 머물던 홍상수 감독과 배우 유준상은 <시>를 보러 간다며 자리를 뜸)

어디까지 얘기했지? (웃음)
<여행>을 보고 놀라웠던 게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연출적인 수사라든가 장식적인 것들을 다 덜어내셨어요.
배 그동안의 작품 활동도 덜어내는 과정이었는데 영화 속의 인물과 녹아들게 이번에는 더 덜어냈지. ‘여행’을 보고 몇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내 이름을 떼면 학생이나 신인감독이 찍은 작품 같다고. 그래서 내가 오히려 기분이 좋았어요. 그렇게 신선하게 봤으니까. 한편으론 부담감을 갖지 않고 본 거라서 좋았지. 

덜어냄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감독님께서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가요?
내가 깨달아야지. 느껴야지. 그게 겸손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건데 그래야 진정으로 그 인물들을 살아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게 참 어려운 과정이죠. 남들처럼 내 스타일, 나의 표현적인, 배창호 브랜드를 찍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어요. 그렇게 버려야 내가 창조한 인물 속을 진정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매번 깨닫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덜어내게 됐어요.

<황진이>(1986)가 계기였다고 알고 있는데요. 내용보다는 영화적인 형식에 집중하면서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바로 앞선 해에 만들었던 <깊고 푸른 밤>(1985)이 최고 흥행작이었던 것과 달리 <황진이>는 흥행에 큰 재미를 못 봤습니다. (그해 흥행 8위)
1980년대와 지금은 배경이 좀 다르죠. 당시에는 <꿈>(1990) 같은 시대극도 했으니까. 흥행 결과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만들어왔던 거죠. 내가 가진 다양한 소재 중에서 제작자와 서로 공감이 가는 소재를 해왔던 것인데 1990년 중반부터 충무로 투자 환경이 금융자본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렸거든. 그러면서 내가 영화 만드는 기획의 방식도 바꿔지게 된 거죠.

<정>과 <길>처럼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신 거죠. 다만 그 중간에 3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흑수선>을 만드셨어요.
<흑수선>의 경우에는 내가 대중성에 맞추겠다고 해서 조금 엇박자가 났어요. 오히려 그게 마이너스의 결과가 난 경우지. 그래서 큰 대중영화라 할지라도 타협하지 말고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근데 요즘은 투자 받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웃음)


언제나 영화감독

사실 배창호 감독은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꾀하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잘 나가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공식 입문했고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 등으로 당대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으며 <황진이>에서는 전통적인 서술 방식을 버리고 형식에 더욱 치중한 영화 언어로 많은 이들을 당황케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영화평론가 고(故)정영일 선생은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쿠데타인데 성공할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배창호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대기업의 자금 유입에 따른 충무로 투자 환경이 급속도로 변모한 1990년대 중반 이후로도 배창호 감독은 독립적인 방식으로 <러브스토리>(1996) <정> <길> 등을 작업해왔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현재 배창호 감독은 차기작을 위해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다. 그는 언제나 영화감독을 꿈꾼다.

연출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교수 생활을 그만 두신 지도 이제 꽤 됐죠?
4년 정도 하다가 그만 둔 지 한 3년 됐죠. 소설가가 언제든지 소설을 쓸 수 있듯이 자기 매장량이 있으면 영화감독도 언제든지 영화를 만들 수가 있어요. 근데 영화는 돈이 드는 예술이기 때문에 투자만 되면 찍을 수가 있죠.

대학교수 생활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둥지가 편안하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도 좋았지만 둥지를 떠날 때가 왔다는,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이 왔어요. 고민을 했죠. 내 인생을 보면 확 돌릴 때가 몇 번 있어요. 현대 종합상사를 다니다가 영화에 입문한 것도 그렇고 <황진이>를 할 때는 그전에 흥행작을 내면서 가졌던 노하우를 버리고 만들었죠. 사람들의 편견이 있을 거를 알면서도 아내와 함께 출연해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던 것도 그런 도전이었죠. 대학교수를 그만둔 것도 그렇게 했던 거죠. 어려운 결정이었죠. 

하지만 투자환경도 그렇지만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보는 방식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아트시네마의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축사에서 3D영화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꽤 화제가 됐어요. (“요즘 거대한 자본과 최신 과학기술이 결합해 만들어진 한 편의 3D 방식의 영화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크나큰 호응을 얻으면서 미래의 영화는 3D영화일 것이라고 언론매체와 영화 산업계는 기대와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영화를 통해 느끼는 진정으로 강력한 체험이란 감독이나 작가가 자기의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낀 체험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해서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감독님의 순수한 영화와 3D영화는 반대지점에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 않아요. 내 말은 3D영화를 놀이동산의 체험관 가듯이 색다른 종류의 작품으로 보면 좋은데 그것이 주류라고 너무 확대해서 보지 말자는 거였지. 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거나 2D적 표현에 대한 부정적인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였어요. 진정한 연출력은 눈을 그렇게 홀리지 않더라도 2D로도 3D의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이고 매력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런 얘기를 했거든. ‘진짜 좋은 회화는 사람이 살아 움직일 것 같고 강물이 흘러넘칠 것처럼 그리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뜻이었어. 입체안경을 끼지 않더라도 3D의 느낌을 주는 것이 진짜 영화의 힘이니까 그런 연출력을 찾으면서 작업하면 된다는 얘기였지.

안 그래도 <여행>은 스크린을 통해서도 상영이 되지만 TV방영을 위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두 매체의 특성을 모두 살리기 위해 어떻게 조율하셨나요?
단지 스크린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TV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매체는 감독에게 큰 매력이죠. 그러나 요즘은 DMB로도 영화를 보는 시대인데 집중을 해서 보면 극장에서 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시대니까. 그런 점에서 <여행> 역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소재가 깊이 보다는 더 보편적으로 간 건 있어요.

다변화된 관람 형태에 대해서 감독님은 거부감이 없으시군요.
그런 편견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어요. 난 사람들이 컴퓨터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게 불만이었거든. 근데 내가 실제로 보니까 큰 것을 멀리 보는 거나 작은 것을 가까이 보는 거나 다 생생함이 있더라고. 물론 제일 좋은 건 스크린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거를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현대의 소통, 영화적인 소통의 또 다른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나도 즐겨서 봅니다.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는데 옆에 중년 아저씨가 영화를 열심히 보더라고. 그래서 처음에 뭘 저렇게 열심히 보나, 영화감독으로써 시선이 가게 되잖아. 영화의 질감을 보니까 조명이 괜찮은 것 같아. 근데 내 영화 <길>이야. 내가 나오는 영화다 보니까 이거 계면쩍어서. (웃음) 그 자리에서 내 시선을 봤으면 그 사람도 얼마나 당황할 거야. 그래서 (뒤로 머리를 빼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하고 보다가 내렸는데 그 뒤로는 DMB로 영화를 보는 거에 편견이 없어졌어요. (웃음) 그것도 뚫어져라 집중하면 내적으로 느끼는 게 있겠지. 어떻게 보는 태도에 달렸다고 할 수 있지.

최근에는 젊은 감독들과도 자주 교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은하해방전선>(2007)의 윤성호 감독님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 중이시라고요. 그럼 차기작은 이 영화가 되는 건가요?
어느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같이 쓰면서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진행이 안 됐어요. 잘 맞는 편이었는데 사실 그 친구가 잘 맞춰줬겠지. (웃음)

아, 안타깝네요. 그럼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요즘은 기회를 보고 있는 중이고 사실 타협하지 않고 대중영화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그런 영화들이 아니더라도 저예산이나 특별한 경우의 투자가 되면 하는 거죠.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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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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