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 카잔, 예술가인가? 배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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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낙원동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4월 6일~4월 25일)이 한창이다. 엘리아 카잔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워터프론트>(1954) <에덴의 동쪽>(1955)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할리우드의 195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할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예술의 정점에 다가선 그이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줄곧 동료들에게서 배신자의 낙인을 떨치지 못했다. 빨갱이 색출이 한창이던 당시 공산 당원 경력의 할리우드 동료들을 밀고함으로써 안정적인 감독 생활을 보장받았던 것. 1999년 3월 아카데미 시상식 단상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가 평생공헌상 수상자로 엘리아 카잔의 이름을 호명하자 좌석의 반은 기립했고 나머지 반은 냉소했다.


멜로드라마와 병행하는 사회고발


엘리아 카잔의 작품에는 당대의 사회 고발에 대한 외침으로 가득하다. 1909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하지만 부모는 그리스인이다.) 미국의 예일 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한 그는 할리우드 주류 감독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특권보다 차별의 지위에 좀 더 가까운 일종의 소수자였다.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이민자의 처지는 <아메리카, 아메리카>(1963)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 자신이 차별과 고립의 감정에 익숙한 까닭에 엘리아 카잔의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 문제에는 리얼리즘, 즉 현실감의 밀도가 그 어떤 작품보다 촘촘하다. 그의 영화를 일러, “데뷔작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1945) 이후로 세계 2차 대전 직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할리우드에서 미국영화의 특질을 네오리얼리즘적인 기법으로 표현해내 변모하는 미국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엘리아 카잔의 첫 번째 걸작 <신사협정>(1947)은 그가 추구한 영화적 세계와 이를 대하는 영화적 태도를 모두 아우른 원형 같은 작품이라 할만하다. 반유대주의의 고난에 대해 취재하는 저널리스트 필(그레고리 펙)의 이야기로,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이 겪는 차별을 직접적으로 다룬 경우였다. 엘리아 카잔은 주인공이 사회의 부조리와 맞서는데 있어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아닌 현장에 입회한 듯한 태도로 영화를 구성했다. 직접 피부로 느끼겠다며 유대인 행세를 하는 저널리스트가 겪는 치욕적인 대우는 곧 미국 사회의 저류에서 소수자를 둘러싸고 미래를 가렸던 검은 안개에 다름 아니었다.

엘리아 카잔의 영화 속 주인공은 늘 차별받거나 고립당하고 외로움을 운명처럼 짊어져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데, 그래서 카잔의 영화는 사회 고발 이전 멜로드라마의 형태를 띤다. 그런 이유로 많은 평자들은 엘리아 카잔의 영화를 멜로드라마로 분류한다. 당연하다. 엘리아 카잔이 보여주는 사회 문제는 모두 결여된 사랑에서 비롯한다.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 같은 작품이 보여주는 사랑의 결여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인종차별과 노동자차별을 야기한다면 <에덴의 동쪽>과 <초원의 빛>의 그것은 가족 간에 벌어진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 카잔의 영화에는 늘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관계에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은 사회 혹은 가족의 차별과 무관심의 시선이다.

바로 그 정점에 놓인 작품이 카잔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워터프론트>다. 영화는 뉴욕 부두조합의 비리에 가담했다 후에 회개하는 노동자 테리(말론 브랜도)의 이야기로, 사회 고발의 성격이 짙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른다. 그의 폭로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여인(에바 마리 세인트)의 오빠가 부두 조합의 세력자에게 목숨을 잃게 되지만 그녀와의 사랑이 깊어지며 조합에서 발을 떼는 것.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전적인 사랑을 연상시키는 남녀 관계 외에도 <워터프론트>에는 테리의 변절(?)로 조합내의 위상에 위기를 맞는 형 찰리(로드 스타이거)와 갈등을 빚는 형제간의 사랑, 신의 대리인으로서 노동자들에게서 부두조합 비리와 관련한 증언을 끄집어내려는 신부의 사랑 등 우리가 사랑으로 묶을 수 있는 관계가 <워터프론트>의 멜로드라마는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워터프론트>에서처럼 인물 각자의 애증이 서로에게 사선으로 교차하는 극중 감정 표현을 위해 카잔은 배우들에게 연기 이상의 연기를 요구했다. 연극에서 출발한 그의 연출력은 촬영 현장의 장악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1947년 리 스트라스버그와 함께 연기학교 ‘액터즈 스튜디오’(Actor’s Studio)를 설립해 메소드 연기법(Method Acting 배우가 인물에 철저히 동화되어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설파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이 같은 엘리아 카잔의 배우 연출력에 대해 “배우들의 감독“이라고 호칭하며 ”카잔은 카메라 밖에서 실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유형의 감독“이라고 (이번 특별전 <워터프론트> 상영 후 강연에서)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카잔의 또 다른 대표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술과 도박에 찌든 노동자 스탠리로 분한 말론 브랜도의 연기는 메소드 연기법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브랜도는 미국의 1940년대를 풍미했던 매너리즘 연기 전통에 이별을 고하였다. 신선하고 기민하면서도 기발한 그의 연기 스타일은 단순한 리얼리즘 연기가 아니라, 현실을 끊임없이 고양시켜나가는 독특한 스타일의 연기였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워터 프론트>에서는 말론 브랜도를 비롯해 에바 마리 세인트, 로드 스타이거, 리 제이 콥 등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의 배우들이 주조연을 막론하고 대거 출연하는데 일상적인 행위에 가까운 이들의 연기에는 카잔이 놓지 않았던 현실의 비릿한 면모가 그대로 배어나는 것이다.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고뇌

카잔의 영화 속 세계는 이른바 양자택일의 구도다. 멜로드라마와 사회고발드라마가 서로 가로지르는 구도 속에 무수한 선택의 좌표가 극중 인물을 갈등하게 만든다. <신사협정>의 필은 유대와 반유대의 대립 속에 미래를 약속한 피앙세와의 사랑이 선택의 시험대에 오르고 <에덴의 동쪽>의 칼(제임스 딘)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반항과 섬김 사이에서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다가 가족과 연을 끊어야하는 지경에 몰린다. 그리고 <대하를 삼키는 여인>(1960)의 척(몽고메리 클리프트)은 홍수 피해가 큰 지역의 땅을 정부 소유로 매입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가 철거와 개발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의 반발 속에 자연과 보존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카잔의 작품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감정 정리를 하지 못한 극중 인물의 여분의 죄책감, 혹은 그 비슷한 감정이 스크린 위를 먼지처럼 부유한다. 바로 그런 감정의 모호함이야말로 그의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견인하는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이내 스크린을 넘어 엘리아 카잔의 인생과 겹쳐지는 순간, 더욱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더 정확히는 1952년 반미행위특별위원회에 소환되어 한때 공산 당원이었음을 고백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당원의 이름을 대는 순간,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영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못했다. 이 같은 카잔의 행위는 영화와 영화 밖에서의 이력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결국 많은 이들로 하여금 예술가와 배신자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 것이다.

<워터프론트>는 그런 점에서 걸작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의심받는 작품이다. 그것이 카잔의 밀고 행위를 염두에 둔 환영인지는 모르겠지만 <워터프론트>는 확실히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거침없는’ 발언과 비교해 ‘변명조’의 태도가 영화 곳곳에서 감지된다. 특히 극중 테리가 부두조합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재판정의 장면에서 “양심, 그게 당신들을 얼간이로 만들 수도 있어”라고 일갈하는 대사는 엘리아 카잔이 자신을 옹호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실제로 그는 1988년에 펴낸 자서전 <인생 A Life>에서 <워터프론트>로 그해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수상한 그날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난 그날 밤 복수의 달콤한 맛을 봤고, 그 맛을 즐겼다. <워터프론트>는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를 비판하는 놈들이 처박혀서 엿을 먹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큰 소리로 외쳐대는 기분이었다.” (<위대한 영화> 로저 이버트 지음, 최보은, 윤철희 옮김 ‘워터프론트’에서 발췌)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탓일까. <워터프론트> 이후 카잔은, <대하를 삼키는 여인>처럼 사회고발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만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1961)과 같이 청춘과 가족의 범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명하며 점차 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관심사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선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 않느냐”는 <에덴의 동쪽>의 칼의 대사를 통해 자신의 밀고 행위가 인간적인 고뇌에 따른 선택이었음을 은연중에 강조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하지만 특기였던 사회에 대한 촉수를 거두고 좀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세계로 몸을 움츠리며 독자적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던 카잔의 경력은 예전만 못한 것이었다. 1976년 <라스트 타이쿤>을 만든 후 반 은퇴상태였던 엘리아 카잔의 이름은 서서히 대중에게서 잊혀져갔다.


예술과 배신의 경계에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이 바로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평생공로상 수상을 두고서였는데 그는 말하자면 예술가와 배신자의 중간에 섰던 이른바 경계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평가는 개인 각자와 시간의 몫에 가깝다. 안 그래도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블로그 ‘윌로의 시네마테크’(http://cinematheque.tistory.com)에 ‘세기말 카잔은 어떻게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나?’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며 “당시 카잔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네 가지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 내용을 지금 여기에 요약하려는 것은 아니다. (링크한 주소에서 확인하시길!) 엘리아 카잔이라는 경계인을 두고 미국 사회가 보여준 반응의 너비가 오랜 시간을 두고 다각적인 관점에서 이뤄졌음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카잔의 밀고 행위는, 그러지 않음으로써 그 자신의 감독 경력이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 다만 사회의 암울한 공기가 개인을 아무렇지 않게 질식사시킬 수 있는 시절의 개인의 선택은 좀 더 복잡한 맥락을 갖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도 최근 <경계도시2>를 통해 송두율이라는 경계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경계도시>의 송두율은 개인의 측면에서나 시대의 측면에서 복잡한 층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계도시2>가 보여준 송두율은 이데올로기의 포박 속에 갇힌 한국 사회의 몹쓸 레드 콤플렉스에 의해 쉽게 재단되고 결국엔 희생됐다.

나는 엘리아 카잔과 송두율의 경우를 직접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이 경계인을 맞닥뜨렸을 때 보여준 사회적 태도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엘리아 카잔은 예술가인가? 배신자인가? 엘리아 카잔 특별전의 상영 영화를 감상하면서 답을 구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신 특별전에 참석한 이들과의 논의와 대화를 통해 각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차이를 좁힐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확정과 단언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엘리아 카잔이 잘 보여주듯 인간의 행위는 다양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유발하는 까닭에 오랜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수십, 수만의 의견이 난립해야 비로소 해당 인물의 발치에 다가설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시간만이 입체적인 접근을 허용할 뿐.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절찬리 상영 중인 엘리아 카잔 특별전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 엘리아 카잔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앞으로도 진행형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미지 제공 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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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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