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맷 데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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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룰 스타를 다루기 전에 퀴즈 먼저.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2010)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페이스북에 수억 명의 친구, 즉 회원이 가입하면서 스타가 된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는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던 왈도(앤드류 가필드)에게 거액의 소송을 당한다. 페이스북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자 회사 내의 역할을 두고 파트너십에 문제가 생긴 것. 이에 왈도는 주커버그를 고소하는데 그때 변호인은 페이스북으로 마크가 얼마나 유명해졌느냐고 물어본다. 답하기를, “노벨수상자 19명, 퓰리처수상자 15명, 그리고 영화배우 1명보다 더 학교에서 유명해졌죠.”

그 영화배우는 누굴까? 바로 맷 데이먼이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이 특별한 감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맷 데이먼은 지적인 배우의 이미지로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영웅상(相)을 확립했다.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이 결정적이었다. 그 이전까지 액션스타라고 하면,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처럼 ‘올록볼록’ 건장한 몸과 육중한 화기를 앞세운 ‘하드바디 Hard Body’가 대세였다. 그에 반해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은 무식하게(?) 맨 몸으로 적과 맞서지 않는다. 수건으로 팔을 감싸 나이프 공격을 막고 손에 잡히는 책으로 상대방의 목을 가격하는 등 머리를 쓰거나 도구를 활용하는 등의 지능형 전사의 모습을 선보인다.

1980~90년대의 액션스타들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근육을 앞세웠던 건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강함을 부각하기 위한 할리우드의 정치적인 술수였다. 그러는 동안 냉전시대의 미국의 주적이었던 구(舊)소련은 무너졌고 걸프전을 통해 이라크의 후세인이 축출됐다. 그렇게 눈앞의 적이 없어지자 하드바디 액션스타들은 급격히 몰락했고 할리우드는 내부로 눈을 돌려 자신의 시스템이 지닌 결점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본> 시리즈처럼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이 지닌 부도덕성을 공격하는 영화들이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강한 몸 대신 이성과 감성이 돋보이는 맷 데이먼이 반(反)영웅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엘리시움>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맷 데이먼의 이미지를 가장 전형적으로 활용한 경우다. ‘낙원’을 의미하는 <엘리시움>은 1%의 부자와 99%의 빈자가 완전히 분리된 2154년을 배경으로 한 SF다. 지구의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자 부자들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엘리시움을 건설한다. 그리고 전투로봇을 만들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엘리시움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철저한 감시를 행한다. 맥스(맷 데이먼)는 어린 시절부터 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엘리시움을 동경해왔지만 1%에 끼지 못하는 까닭에 성인이 되어서도 구질구질한 현실을 피할 길이 없다.

쓰레기로 넘쳐나는 도시, 출근 시간에 조금 늦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당이 반으로 깎이는 굴욕적인 공장 노동자의 생활.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날 기회가 우연처럼 찾아온다. 기회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공장에서 실수로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맥스는 엘리시움으로 반드시 가야만 이유가 생겼다. 병원이 부족하고 의료 체계가 엉망인 지구와 달리 엘리시움에는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첨단의 의료기기가 있었던 것. 맥스는 지하조직 보스의 도움을 얻어 불법적으로 엘리시움에 잠입한다.

SF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배경인 까닭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실은 미래를 우회해 현실을 풍자하는 장르다. <엘리시움>도 황폐한 먼 미래의 지구라는 가정을 세웠지만 기저에는 미국 의료 체계의 허약함이라는 현실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이는 선동가로도 유명한 마이클 무어가 <식코>(2007)에서 다룬 주제이기도 하다.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자국을 떠나 모든 의료 서비스가 무료인 쿠바에서 낙원을 경험한다는 메시지는 <엘리시움>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맷 데이먼 왈, “빈부격차는 물론 미국의 의료 개혁이라는 메타포를 다룬다. 미래가 배경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명을 남겨줄 수 있는 영화다.”  

맷 데이먼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엘리시움>처럼 불평등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거나 전복을 꾀하려는 반영웅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벤 애플렉과 공동각본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굿 윌 헌팅>(1997)에서 그는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는 수학천재로, <리플리>(1999)에서는 부잣집 자제를 살해하고 그의 행세를 하는 게이로, <그린존>(2010)에서는 미국정부가 감추려는 정보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로 등장하는 등 ‘시스템 교란자’는 맷 데이먼의 필모그래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다. <엘리시움>을 연출한 닐 블롬캠프 감독도 맥스 역에 캐스팅 적임자로 오로지 맷 데이먼만 생각했을 정도로 그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반영웅의 대표 격 배우로 인식된다.  

맷 데이먼의 반영웅 이미지가 오랜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현실에서 펼치는 지적이고 사회적인 활동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공개적인 민주당 지지자이면서 정치적인 의견 표출에도 거리낌이 없고 더불어 사회적인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 그는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워터'(www.water.org)라는 단체를 공동 창설,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상향을 동경했던 <엘리시움>의 맥스처럼 맷 데이먼은 현실에서의 엘리시움을 꿈꾸는 그야말로 시대의 영웅이라 할 만하다.

시사저널
NO.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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