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트 오브 킬링> 가해자의 역사를 수면 위로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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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사로 유명한 이다지 선생님과 <엑트 오브 킬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에 대한 녹취가 <엑트 오브 킬링> 공식 블로그에 있어 가져왔습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엑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끔찍한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상기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다지 강사(이하 ‘이’) 저는 이런 사건들이 아시아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반복적으로 많이 일어났다는 게 우선 떠올랐고요. 영화를 보기 전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는 데서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많이 됐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것이 실화가 아니라 지어낸 얘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초반에 안와르 콩고가 철사 줄로 사람을 죽이는 걸 재연하면서 씨익 웃던 모습이랑, 후반부에 자신이 피해자 역할로 목에 줄이 감긴 상태에서 겁에 질려 괴로워하던 장면이 겹치면서 참 인상에 남더라고요. 선생님은 어떤 장면이 인상에 남으셨나요?

저도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안와르가 손주들에게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오리가 다치지 않니, 오리한테 사과하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은 수십만 명을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주들에게는 동물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에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저지른 가해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 속에 있던 걸 게워내는 장면들이 하이라이트처럼 보여지는데, 이게 진심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진심처럼 보이는 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보면 안와르가 카메라 앞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를 펼쳐 보이기 때문에, ‘감독이 요구하는 걸 알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처음엔 ‘저게 진심일까, 연기일까.’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가 아닌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 일에 대해 이젠 많은 사람들이 입을 열게 되었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론화 시키게 되었다는 것이죠.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전까지 이 사실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이 일을 발설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했잖아요. 크레딧에 올라가는 수많은 익명의 스탭들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바깥으로 알려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는데, 이제는 수면 위로 끄집어 내고 공론화시키는 작업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아직까지도 활발하진 않지만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렵지만 바꾸려는 움직임들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최근에 보면 역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교육적인 측면에서 얘기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작품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직업병 때문에 그런지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작품을 순수하게 즐기질 못하고 저건 사실과 다른데, 저건 틀렸어 하며 자꾸만 분석하게 되니까요. 실제 인물, 실제 사건을 그대로 끌고 왔는데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게 풀어내는 것은 오히려 이해를 저해시키고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철저한 고증이 어렵다면 당시 있을 법한 인물이나 사건을 상상을 통해 그려내고 그걸 통해 역사를 말해주는 게 더 흥미롭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글래디에이터>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같은 영화에서처럼요.  

 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굉장히 증폭되어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의 호숫가 장면도 그렇고요.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재연하면서 증폭된 이미지들을 카메라에 담잖아요. 뮤지컬이나 느와르의 장면을 따라하면서요. 즉, 자신들의 행위를 화려하고 과장되고 증폭된 이미지를 통해 가리면서 정당화시키려 하는 것이죠. 이 영화는 다큐지만 만들어진 측면도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들의 시선도 들어가 있고 그걸 찍는 감독의 시선도 들어가 있으니까요. 비단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최근의 다큐멘터리가 과거의 다큐멘터리와 많이 달라진 지점이기도 하죠.

관객 질문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감독의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후반부에 원숭이들이 내장들을 먹는 있는 씬 같은 경우는 다른 장면들에 비해 질감 자체가 다르거든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도 아니고 감독이 연출한 티가 너무 많는데, 감독이 안와르의 악몽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의도적으로 집어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요. 또 한가지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인 건 알고 있었는데 중간에 업보나 카르마에 대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카르마는 브라만교나 힌두교에서 나오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쪽의 이슬람교는 아랍 쪽의 정통 이슬람교와 교리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종교 부분을 설명드리자면요. 인도네시아 국민 중 88%가 이슬람교지만 사실 동남아시아 자체가 다양하고 많은 종교들이 공존하는 곳이에요. 인도네시아에서 예전에 가장 유행했던 종교는 소승불교였고 그 전에 힌두교도 유행했었죠. 그 위에 이슬람교가 들어앉았기 때문에 정통 이슬람교와는 좀 다르죠. 말씀하신 것처럼 카르마 같은 개념도 사용하고요.

 일단 안와르가 목이 잘린 채 무덤에 묻혀 있고, 그 옆에는 내장들이 흩어져 있고, 그걸 보며 헤르만이 괴기스럽게 웃는 장면 자체는 가해자들이 연출한 것이죠. 원숭이들이 등장하는 건 감독의 카메라가 들어간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죠. 동물들이 그걸 먹는 행위처럼 가해자들의 행위 역시 동물적인 것이었다고 말하려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이 영화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시선은 두 개잖아요. 가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영화가 있고, 그걸 감독이 밖에서 관찰하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는 거잖아요. 안와르 콩고는 명백히 학살자잖아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뭔가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죠. 처음에 등장했을 땐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이 보이던 사람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그의 이중적인 모습과 이 영화가 취하는 이중적인 구조가 묘하게 맞물려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질문 영화가 상당히 길더라고요. 씬마다 호흡도 상당히 긴데 굳이 이렇게 길게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도네시아판 아이히만이 생각나더라고요. 아이히만은 칸트가 쓴 책도 다 읽고 굉장히 똑똑했던 사람이었는데 재판에서 자기가 오류의, 체제의 희생자였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것들과 연결되면서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컸던 영화였던 것 같고요. 제가 이런 영화를 가장 근래에 본 게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이거든요. <보리밭에 부는 바람>에 이어서 만든 영화잖아요. 과연 <액트 오브 킬링> 이후에 영화가 더 나온다면, 어떤 스토리를 담아야 더 기억에 남을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 영화 이후에 오펜하이머 감독이 <침묵의 시선>이라는 연작을 내놓았는데요. 피해자의 시선으로 만든 영화이고 얼마 전에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 같은 경우 전통적인 방법으로 피해자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죠. 그리고 영화가 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펜하이머 감독이 처음에는 120분 정도로 짧게 편집을 하려고 했대요. 그런데 이 영화의 총 프로듀서인 베르너 헤어조크가 감독판을 보고 나서, 절대 줄이지 말고 지금 그대로 상영하라고 했답니다. 안와르 콩고가 어떤 악몽 같은 생각에 빠져 힘들어 하는 장면을 오래 비춰주곤 하는데요. 안와르가 자신의 가해에 대해서 늬우치는 건지 쇼를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그렇게 고뇌에 빠져 있는 장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바가 상당히 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을 절대 자르지 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미스 홀>을 보면서도 문화가 할 수 있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세상을 바꾸려 할 때 너무 직설적인 방법을 쓰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문화로 접근했을 땐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죠. 아마 켄 로치 감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액트 오브 킬링>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일단 접근방식부터 편견을 깬 거잖아요. 이런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다룬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라면 피해자의 시선에서 접근할 텐데 가해자의 시선을 이끌어냈다는 것, 그런 시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비춰졌듯이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가해자들이 영웅시되고 부와 명예, 권력를 누리고 있고 그걸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이 너무 충격적이었거든요. 우리 사회를 환기시키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왜곡하고, 은폐하고, 외면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행해지고 있잖아요.

관객 질문 이번이 두 번째로 영화를 보는 건데요. 첫 번째 볼 때는 ‘안와르 콩고가 진심으로 반성을 하는구나.’ 라고 느꼈는데 이번에 볼 때는 카르마를 언급하는 안와르를 보면서 그가 자신이 했던 일을 늬우치기 보다는 이게 업보가 돼서 자신에게 돌아올까 두려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영화를 찍은 지가 꽤 됐는데 혹시 안와르 콩고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영화를 찍기 전처럼 지내는지 아니면 반성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이 토론토 영화제 때 안와르에게 연락을 해서 이곳에 와서 직접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까 안와르가 늬우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 편으론 저게 쇼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혹시나 와서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는 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돼서 취소시켰대요. 그러자 안와르 콩고가 굉장히 의아해 했다네요. 그러다 알 자지라 방송의 한 기자에게 부탁을 해서 스카이프로 안와르 콩고에게 영화를 보여줬다고 하거든요. 보고 나서 20분 동안 말이 없었대요. 이후에 “내가 이런 일을 했었던 거구나. 나의 행동과 그 행동에 담긴 의미까지 보여줘서 고맙다.”며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안와르 콩고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가 늬우쳤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은 <침묵의 시선>까지 찍고 이후에는 인도네시아 역사에 관한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잖아요. 공론화 시키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데 사실 쉽진 않죠.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계란으로 수십만 번 수백만 번 치다 보면 어느 정도 바위에 균열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 질문 제임스 버틀러의 책을 읽었는데요. 제임스 버틀러는 타인의 말을 듣는 데에도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고 했거든요.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해 알게 되고 역사가 바뀐다고 얘기를 했는데요. 책을 볼 때는 몰랐는데 안와르를 보면서 느껴지는 게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 피해자랑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 변하잖아요. 그 전부터 악몽을 계속 꿨고요. 그런 걸 보면 안와르는 죄책감이나 양심이라는 게 있는 인간인데, 아디 같은 사람은 죄책감 느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안와르가 아닌 그런 싸이코 패스 같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 이 영화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어쨌든 속인 거잖아요. 감독이 당신들을 찬양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거잖아요. 의도는 좋더라도 방식이 윤리적이지 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감독이 가해자를 만난 게 안와르 콩고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가해자들을 계속 만났었고 안와르가 마흔 한번 째 가해자였다고 하는데요. 이전에 만난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스러워 했지만, 이걸 영화로 만들면 곤란하다며 감독에게 무언으로 위협 아닌 위협을 했고 감독도 그걸 감지했고요. 그런데 안와르에게서는 뭔가 자랑스러움 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게 보였대요. 그래서 다른 스탭들에게는 모두 짐을 싸서 공항에 가 있게 한 다음에 자신만 따로 안와르에게 가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당신이 했던 일을 그대로 재연을 하면, 우리가 그걸 다큐멘터리로 찍겠다. 그래도 문제가 없겠는가.”라고 물었는데 안와르가 쿨하게 승낙을 한 거죠.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겁니다. 아디 같은 사람을 찍었다면 처음엔 승낙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겠죠.  

이 영화를 보면 다양한 입장들이 나오는데 모두가 공통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중반부에 등장하는 신문 기자도 그런 생각으로 영화 세트장에 온 것일 텐데, 돌아가는 걸 보니까 왠지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며 계속 발뺌을 하잖아요. 이렇듯 입장들이 너마다 다르니, 주인공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영화가 많이 달라졌겠죠.

 감독이 당신들을 찬양하는 영화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한 일을 그대로 재연해 보라고 제안한 것이죠. 사실 그대로 재연해보라고 하고 시작한 거거든요. 이 사람들이 촬영에 응한 건 자신들이 한 일이 이상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걸 우리들이 사실 그대로 보여줘도 보는 사람들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할 테고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자신들이 연기를 해보고 그걸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 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안와르 같은 경우엔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지만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고, 헤르만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유명해지고 싶고 튀고 싶은 사람이죠. 반면에 아디는 헤이그 국제 재판소에 가서도 자신은 옳았다고 얘기할 거라 말하죠. 똑같은 가해자라도 이렇게 스펙트럼이 다 달라요. 사실 안와르만이 주인공이 아니고 그의 동료들도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주인공이죠. 모두가 처음엔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장의 변화를 보이는 거고요.

관객 질문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초반에 물고기 모양의 구조물 앞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 그리고 후반에 폭포 앞에서 피해자가 안와르에게 ‘날 처형해줘서 고맙다’며 메달을 걸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물고기 모양의 구조물 뒤에 있는 호수가 예전에 엄청난 폭발이 있어서 수백만 명이 죽은 곳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추는 춤이 ‘죽음의 춤’이라고 한다는데,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고요. 메달을 걸어주는 장면은 가해자들의 혐오스러움을 보여 주려고 한 건지,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그들의 이면을 부각시키려던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둘 다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그 장면을 플레이 해 보면서 안와르가 ‘저 장면 굉장히 잘 나왔다’고 하잖아요. 가해자들은 만족해 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우리에겐 역겨운 장면이 되죠. 그래서 두 가지 모두 의도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한 행위를 재연해서 영화로 만들라고 하니까 예전에 자신들이 뮤지컬, 느와르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굉장히 증폭된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잖아요. 폭포 장면은 가해자들이 만든 장면이죠. 피해자가 메달을 걸어주는 건 영화를 만든 가해자들이 원하는 바인 거잖아요.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포장하고, 더 과장하고, 더 미화시키는 겁니다. 심지어 아디는 ‘이런 식이라면 카인과 아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죠.’라고 하잖아요. 폭력의 기원을 언급하면서까지 자기합리화를 하려 들죠.

관객 질문 얼마 전 <퓨리>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 라는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두 영화가 매우 다르지만 결국 역사란 이런 것, 인간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안와르 콩고 같은 경우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늬우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퓨리> 같은 경우에도 전우애로 마무리가 되고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역사를 기억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영화는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런 문제에 있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걸 영화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낼 순 있겠죠. 해결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보도연맹 사건이나 제주 4.3사건도 당시엔 묻혀있었고 모두가 쉬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것에 대해 다시 들춰내고 밝혀내고 진상을 규명해 갔잖아요.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항상 똑같이 반복이 되는 건 아니고, 그게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또 있거든요.

지금 인도네시아 사회에서도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의 물결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습니. 그리고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해서 기억을 하실지는 모르겠는데요. 공영방송에 안와르 콩고가 나와서 자랑을 할 때 편집실에 있던 방송국 직원들이 “저렇게 얘기해도 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을 보면서 사회가 이들을 영웅처럼 떠받들어 주는 것처럼 보여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자각을 하고 있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도 있으니까, 이런 흐름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해결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도 그렇고 모든 예술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순 없겠죠. 저는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던져 줬고 사실은 그 사회를 변화시킨 거예요. 침묵하고 있던 인도네시아가 입을 열게 만들었으니까요.

<퓨리> 같은 경우에도 자신들의 영웅담을 얘기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 거잖아요. 물론 <퓨리>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영웅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항상 어떤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별하고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고찰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엑트 오브 킬링> GV
(201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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