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브라이언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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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이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공개를 앞두고 추문에 휩싸였다.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입장을 밝힌 브라이언 싱어는 이참에 자신이 양성애자라며 성정체성까지 고백했다.

팬들의 입장에서 그리 충격적인 고백은 아니다. 그의 성정체성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중요한 건 브라이언 싱어가 소수자로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수자 슈퍼히어로 프로젝트인 ‘엑스맨’ 시리즈로 귀환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졌듯,  <엑스맨>(2000)을 창조했던 그는 <엑스맨2>(2003)를 끝으로 이 시리즈와 결별을 고하고 <수퍼맨 리턴즈>(2006) 메가폰을 잡으면서부터 경력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퍼맨 리턴즈>는 <엑스맨> 시리즈와 함께 같은 슈퍼히어로 계열의 영화이지만 주인공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수퍼맨은 미국 최초의 슈퍼히어로로서 백인 지배 계층의 힘을 상징하며 주류의 지위를 누린 캐릭터다. 그에 반해 엑스맨들은 능력이 남다르다는 이유로 돌연변이 취급을 받으며 주류에서 배척당한 채 소수자로서 힘든 삶을 유지한다.

수퍼맨을 비롯하여 배트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슈퍼히어로들이 주류 백인 남성 일색인 것에 반해 <엑스맨>의 영웅들은 몇몇을 제외하면 철저히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가 많은 매그니토, 다리를 쓰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하는 찰스 자비에, 파란 피부의 슈퍼’우먼’ 미스틱, 이름 자체가 괴물인 비스트 등 이들은 슈퍼히어로이기에 앞서 유색인종이었고 성소수자였으며 무엇보다 상대적인 약자였다.

소수자로서 누구보다 소수자를 잘 이해하는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수퍼맨 리턴즈>를 선택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판단이었다. <수퍼맨 리턴즈>는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본 것은 물론이고 평단의 반응도 좋지 못해 <맨 오브 스틸>(2013)이 등장하기까지 수퍼맨 프로젝트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건 <엑스맨>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이하 ‘<엑스맨3>’)의 경우, 새로 합류한 브랫 레트너 감독이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보다 액션에만 치중함으로써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로 전락시키는 우(愚)를 범했다. 갈 길 잃은 <엑스맨> 시리즈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 <더 울버린>(2013)과 같은 스핀오프로 변화를 꾀하는가 하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를 선보이는 등 궤도에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가 귀환했다. <엑스맨2> 이후 11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잘못된 과거의 사건에 개입해 미래를 바로잡으려는 시간여행이 주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수퍼맨 리턴즈> <작전명 발키리>(2009) <잭 더 자이언트 킬러>(2013)로 연달아 미끄러진 브라이언 싱어가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엑스맨> 시리즈로 경력을 바로 잡으려는 욕망의 반영인 걸까?

미래의 엑스맨들은 센티넬로 불리는 로봇으로 인해 멸망할 위기에 직면했다. 워낙 강력한 힘으로 엑스맨을 제거하는 센티넬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센티넬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 트라스크(피터 딘클리지)를 찾아가 이 로봇의 발명을 방해하는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미래의 트라스크는 이미 사망하고 없는 상태다. 울버린(휴 잭맨)은 타인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키티(엘렌 페이지)의 능력 덕에 1973년의 과거로 돌아간다.

울버린은 뿔뿔이 흩어져있던 엑스맨들을 불러 모으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젊은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는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에게 입은 척추 부상과 자신을 떠난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상태다. 더군다나 JFK 암살범으로 갇혀 있던 매그니토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찰스 자비에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바람에 트라스크를 찾기 위한 임무는 벽에 부딪힌다.

센티넬의 개발을 저지하려는 엑스맨들의 시도는 난관에 부딪히지만 이들의 성공은 예정된 결과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역사의 가변성이다. 시간은 불변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브라이언 싱어는 인위적인 개입으로 역사의 변화를 꾀한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닐 거다. 이를 통해 브라이언 싱어가 노리는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언급한 그 자신의 경력과 더불어 이 시리즈의 부활이다.  

애초 <엑스맨> 시리즈의 출발 자체가 소수자’들’에 있다 보니 연출의 방향은 다양성의 가치에 있다. 아무리 울버린이 간판스타 격으로 나선다고 해도 이 시리즈가 힘을 발휘하는 건 역시 엑스맨들이 뭉쳤을 때다. 울버린 스핀오프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건 주변 캐릭터의 비중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울버린 한 명만 영웅으로 추켜세운 연출의 편파성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엑스맨> 시리즈는 여느 슈퍼히어로물처럼 선과 악으로 편 가르는 대신 팀원들 간의 내부 갈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들을 박해하는 주류 세력에 어떻게 맞설지 다양한 입장을 대변한다. 그것은 또한 주류와 비주류가 맞서며 쌓아온 미국의 역사이기도 했다.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비극으로 문을 연 것과 마찬가지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JFK 암살 사건과 관련한 현실 정치를 계속해서 건드리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브라이언 싱어는 사건보다 캐릭터에, 액션보다 인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성공한 <엑스맨>과 <엑스맨2>의 유산을 이어 받아 그 연장선상에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구성한다. 당시에 출연했던 캐릭터의 젊은 시절을 다루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까지 자신의 휘하에 놓으려는 시도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시리즈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비록 <수퍼맨 리턴즈>로 야기한 흑역사는 지울 수 없겠지만 <데이즈 오프 퓨처 패스트>로 자신의 자리를 찾은 브라이언 싱어는 사생활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감독의 명예만큼은 회복에 성공했다.    

시사저널
NO. 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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