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신들과 왕들>(Exodus: Gods and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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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리우드에서 대작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을 꼽으라면 단연 리들리 스콧이다.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 아니냐고? 물론 5차원 세계까지 나아가며 경이로운 우주 배경을 묘사한 놀란이 가장 뜨거운 연출자인 건 사실이다. 다만 이제 고작(?) 9편의 장편을 발표한 그를 리들리 스콧에 비교한다고?

리들리 스콧은 1977년 <대결자들>로 연출 데뷔해 지금까지 무려 30년 가깝게 할리우드에서 꾸준한 활동을 보이는 베테랑 연출자다. 얼마나 많은 영화를 찍었는지, <에일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의 SF, <델마와 루이스>(1991)의 여성버디물, <한니발>(2001)의 호러,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범죄물 등 장르의 편식 없는 폭넓은 행보를 보였다.

그중 리들리 스콧이 유독 관심을 보인 장르가 있다. 바로 사극이다. <글래디에이터>(2000)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이후 <킹덤 오브 헤븐>(2005) <로빈 후드>(2010) 등 스케일이 큰 시대극에서 리들리 스콧은 역량을 발휘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하 ‘<엑소더스>’)은 그와 같은 행보에 정점을 찍을 만한 작품이다.  

모세를 경유한 세계의 속성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 즉 ‘엑소더스’는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인 만큼 이를 영화화하는 리들리 스콧의 관건은 모세에 대한 감독의 해석과 홍해를 반으로 쩍 가르는 그 스펙터클한 화면을 현재의 기술력으로 어떻게 묘사했는지다. 2시간 40여 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으로 보건대 리들리 스콧은 모세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틱한 서사와 압도적인 영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모세(크리스천 베일)와 람세스(조엘 에저튼)는 형제이지만,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람세스는 아버지에 이어 파라오에 오른 뒤 이상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모세가 이집트 왕국의 노예인 히브리인들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 파라오에 즉위하기 전부터 지혜롭고 용맹한 모세의 능력에 질투를 느끼던 람세스는 급기야 모세를 유배 보낸다.

히브리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람세스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았던 모세는 유배 길에 오른 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다. 히브리인들의 노예 생활을 목격하고는 부조리를 느끼고 람세스에 맞서고자 결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장서 억압받는 40만의 형제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앞으로는 홍해가 막고 뒤로는 람세스의 군대가 찾아오면서 모세는 기적을 일으킨다.  

리들리 스콧은 <엑소더스>의 영화화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모세에게서 찾는다. “모세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억압에 대한 자유의 승리라는 시대를 초월하는 소재에 영감을 주었다.” 그의 발언에서 고전적인 이야기이되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억압과 자유의 문제를 부각, 현대의 관객들과 교감하고자 하는 스콧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모세는 고대는 물론 근대적인 맥락에서 혁명가이자 자유의 화신이다.” 덧붙인 리들리 스콧의 말에 따르면, 모세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라는 의미다. 동의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꽤 안전한 해석의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올해는 성서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 심심찮게 개봉한 편인데 그중 노아에 대한 전위적인 해석으로 논란을 낳았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노아>는 창세기를 바탕으로 타락한 인간 세상을 정화하려는 창조주의 계시에 따라 방주를 짓는 노아를 조명한다. 이에 대해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신의 말씀에만 너무 마음을 뺏긴 나머지 가족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정신병 수준으로 노아를 묘사하며 꽤 과격한(?) 시선을 견지했다. 그에 반해 리들리 스콧은 <엑소더스>에서 모세에 집중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기보다 모세를 거쳐 세상을 바라본다는 인상을 준다.  

거대한 혼란상의 사실적 재현  

이 영화의 부제가 ‘신들과 왕들’인 것처럼 리들리 스콧은 모세의 반대쪽에서 군림하는 람세스와 신의 모습에서 권력의 속성과 그에 인한 세계의 혼란에 더 관심을 둔다. 람세스가 파라오가 되기 전 죽음을 앞둔 국왕은 모세를 앞에 두고 이런 얘기를 한다. “권력을 갈망하는 자들이 결국에는 권력을 차지하지만 좋은 권력자가 되지 못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지.”
 
더 뛰어난 능력을 갖췄음에도 히브리인이기 때문에 모세 대신 람세스를 후계자로 지목할 수밖에 없는 국왕의 속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서 모세와 람세스의 갈등이 중심에 놓이지만, 자신 스스로 신이라 부르며 노골적인 권력욕을 드러내는 람세스에 대한 극 중 묘사는 일차원적이다. 대신 리들리 스콧은 국왕의 발언을 일종의 지침서로 삼아 모세와 신의 관계에서 세상이 혼란한 이유를 정의하려 든다.

극 중 신에 대한 묘사는 아이에 비견할 만하다. 실제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모세가 람세스와의 관계, 히브리인과의 관계 사이에서 고민할 동안 오히려 세계의 혼란을 조장하는 말로 현혹하는 모습조차 그렇다. 총을 든 아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신이 모세에게 계시랍시고 남기는 주사위 모양의 돌은 도박꾼으로서의 권력자의 속성을 은유하는 미장센이라 할 만하다.  

이는 <엑소더스>가 왜 압도적인 스펙터클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으로 작용한다. 굴려서 나오는 숫자에 맞춰서 이 세계가 돌아간다면 거대한 혼란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피로 물든 나일 강, 파리와 메뚜기 떼로 야기된 피부병, 때리듯 내려치는 우박 비, 이집트 전역이 어둠에 휩싸이면서 닥치는 아이들의 죽음 등 영화 속 10대 재앙은 CG의 도움을 얻었지만, 상당 부분 실사로 촬영했을 만큼 사실성에 바탕을 뒀다.

예컨대, 우박 장면에서는 얼음 공을 준비하고 개구리 떼 장면에서는 400마리의 실제 개구리를 동원하는 등 이들 장면이 볼거리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한 눈요깃감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리들리 스콧의 의지가 읽힌다. 이에 대해 리들리 스콧은 “내가 지금까지 맡은 가장 큰 프로젝트다. 3,000년 전의 고대 이집트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의 발언은 단순히 스펙터클한 장면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모세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오한 내러티브이다.” 모세를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의 말처럼 <엑소더스>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불평등의 세계에 대한 리들리 스콧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거대한 혼란의 풍경뿐 아니라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을 의지로 치환한 나름의 해결책마저 제시하는 것이다.

<엑소더스>를 비롯해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로빈 후드> 등의 시대물에 공통으로 담겨 있는 건 인간의 의지다. 리들리 스콧은 시대극을 통해 혼란한 시대상과 그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활약상을 대비함으로써 현대의 관객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권력에 의존해서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없다. 신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는 의지가 발동할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바뀔 것이다. <엑소더스>는 <노아>처럼 과격하지는 않지만, 노장 감독의 지혜가 오롯이 녹아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시사저널
(201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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