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사회


TV 스포츠 뉴스에 프로야구에서 맹활약을 펼친 한 신인선수의 이너뷰 장면이 나온다. 질문자가 컨디션에 대해 묻는다. “좋은 것 같습니다.” 홈런으로 넘어간 공의 구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직구였던 것 같습니다.”

홈련을 치며 팀의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 선수의 이너뷰에서 나는 열정과 흥분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억압과 수동적인 태도를 본다. “~한 것 같습니다”.

조사가 붙지 않는 체언에 이어질 때 쓰이는 ‘~같다’는 표현은 추측이나 불확실할 때 사용하는 언어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을 때 쓰는 언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위의 신인선수는 자신의 컨디션을 밝히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같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왜.

자신이 알게모르게 체화한 사회적 경험이 습관으로 굳어진 언어가 되어 무의식적으로 발화된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교육은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규제하는 학습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학원스포츠는 그런 점에서 그 어느 분야보다도 더욱 폐쇄적인 곳이다.

학원스포츠처럼 규율과 규칙이 모든 활동을 제약하는 곳에서 튀는 행동은 미연에 금지되니 선수들은 수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선후배간의 질서가 강한 곳이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는 건 버릇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질 염려가 있어 서열에 의해 억압받는다. 자신감을 키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언어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한글에 높임말이 존재하는 건 우리가 예의를 중시하고 서열에 의해 위치가 정해지는 유교문화권에 속해있다는 얘기고 일본말이 많이 섞여 있다는 건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받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언어를 통해야만 실재화된다. 그런데 한국은 규제의 역사로 이루어진 사회다. 곧, 한국어는 규제가 반영된 언어라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위에 예를 든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유독 ‘~같다’는 자신감없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규제와 억압으로 통치했다는 하나의 증거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창조된 언어가 한국사회에서는 되려 구속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 ‘~같은데요’라는 표현이 사라질 때 한국사회는, 국어는 억압과 규율의 좃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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