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예술을 품고 살아간다. 표현이 너무 어려운가. 그럼 이건 어떤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인생이 있다. 그에 따라 사연도 다채로워서 이 세상에는 그 수만큼의 예술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인생은 곧 예술이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은 그런 인생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다.
나세르 알리 칸(마티유 아말릭)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하지만 그는 막 자살할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아내가 부셨기 때문이다. 그 결심이 얼마나 확고했던지 슬하의 딸과 아들이 재롱을 부려도, 그렇게 좋아하던 자두 치킨을 부인이 정성스럽게 요리해도 알리의 죽음을 막을 길이 없다. 도대체 그 놈(?)의 바이올린이 뭐기에?
“비록 육신은 떠날지라도 내 생각은 남을 것이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명언을 남기는 장면이 묘사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죽었지만 그의 철학은 여전히 남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모방되기도 한다. 이를 근거로 알리의 자살 이유를 밝혀보는 것은 어떨까.
알리는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대열에 합류하기 전에는 그저 바이올린만 잘 켤 줄 알았지 감정을 싣지는 못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는 스승에게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기술은 아무나 부릴 수 있어도 예술은 그렇지 않다. 예술을 통해야만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철학자 세네카가 이런 얘기를 했다. 다시 말해, 알리를 향한 스승의 충고는 삶의 경험을 좀 더 쌓아 이를 음악으로 승화하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었다. 이것이 예술가들에게는 흔히 ‘영감'(靈感)이라고 부르는 것이 될 터인데 알리에게는 뮤즈라고 불리는 여자의 존재였다.
죽음을 앞둔 알리에게 부인은 전혀 뮤즈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에게 영감을 제공한 뮤즈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사연이 담긴 것이 바로 아내가 내동댕이친 바이올린이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 죽음을 앞둔 알리의 회고 형식으로 진행되는 건 곧 바이올린의 사연을 따라가기 위함이다.
특히나 그 사연은 사랑과 관련하기에 더욱 극적일 수밖에 없다. 인생이 예술보다 드라마틱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 아닌가. 많은 이들이 그렇듯 알리 역시 사랑을 통해 고양되는 감정을 느꼈고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리는 바이올린을 기술이 아닌 예술로, 즉 ‘삶을 표현’하는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런 바이올린이 파괴되었으니 예술가로서 알리에게는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을 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알리의 죽음은 전혀 비극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알리의 마지막 일주일을 묘사하되 의도적으로 여덟 번째 날을 넣어서 죽음이 곧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한다. 그처럼 극 중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흑백의 이미지를 다채로운 그림들이 대신한다. 또한 생과 사를 넘어선 의미가 다양하게 레이어링 되어있다. 이는 연출자가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2007)로 유명한 뱅상 파로노와 마르잔 사트라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역시 사트라피의 만화 <자두 치킨>을 원작삼아 뱅상이 참여한 공동연출로 영화화됐다.)
이들은 전작을 통해 부정적인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종국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적이 있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도 그렇다. 뱅상 파로노와 마르잔 사트라피는 소크라테스의 그 명언처럼 비록 알리의 육신은 떠났을지라도 그의 인생은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으로써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술이 인생에 대한 기억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예술은 곧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영화는 알리로 대표되는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을 것이다.
우연처럼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에는 위대한 예술가로 기억되는 이들의 2세가 등장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했던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수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전설적인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딸인 ‘이사벨라 로셀리니’다. 대를 이어 예술가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 예술가의 인생이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완성을 이루고 또한 생이 연장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은 그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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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