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의 롱테이크 미학

알폰소 쿠아론은 현존하는 영화감독 중 롱테이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매 영화 롱테이크를 빼놓는 적이 없다. 특히 영화의 결말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롱테이크로 관객을 현혹하는 것을 보면 롱테이크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이는 알폰소 쿠아론 영화의 미학과 주제를 간파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얘기다. 그의 대표작에서 롱테이크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살펴보자.  

<칠드런 오브 맨>(2006) 전쟁의 한복판에 선 테오와 키, 그리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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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의 롱테이크 미학이 가장 위력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영화다. 거의 모든 장면이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만큼 긴 장면들로 넘쳐난다. 이건 단순한 과시와는 거리가 멀다. 여성들의 임신이 불가능해진 2027년, 18년 만에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유일한 ‘열쇠’를 보호하기 위해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모든 테러의 위협을 뚫고 아이와 엄마 키(클레어 호프 애쉬타)를 인류 프로젝트의 현장으로 안전히 데려가야만 한다. 그 전쟁터 한복판에서의 긴박한 순간이 영화 말미 7분 동안의 롱테이크로 진행된다. 그뿐이랴, 오프닝에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 가장 어렸던 소년의 죽음을 알리는 속보가 뜨는 가운데 갑작스레 벌어지는 도심테러, 테오가 키를 데리고 이동하는 차안에서 총격을 당한 후 경찰에게 쫓기는 장면, ‘푸지’로 불리는 빈민 캠프에서 키가 아이를 낳는 장면 등에서 3~4분여의 롱테이크가 펼쳐지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지속할 아이의 탄생을 기다린 18년이 시간, 그리고 이 아이를 숱한 위협에서 보호해야만 하는 고난과 극도의 긴장감이 가감 없이 반영하기 위한 가장 영화적인 효과는 롱테이크라는 것을 알폰소 쿠아론은 <칠드런 오브 맨>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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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위대한 유산>이나 <이 투 마마>와 같은 긴 시간의 롱테이크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특성 상 감독의 예술관보다는 가족영화의 대중성을 우선한 까닭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에서 알폰소 쿠아론 특유의 롱테이크가 빛을 발한다. 아즈카반에서 탈옥한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이 해리 포터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헤르미온느(엠마 왓슨)가 시간여행을 하는 장면에서다. “혼란스러울 때면 과거를 되짚어 가는 게 최선”이라는 덤블도어 교수의 조언에 따라 헤르미온느는 모래시계 모형의 목걸이를 세 번 돌려 해리와 함께 몇 시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이때 카메라는 긴 통로를 따라 거대한 시계를 통과한 후 과거로 돌아간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멀찍이서 비춘다. 극 중 시간여행이 사건 해결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알폰소 쿠아론은 롱테이크를 통해 강조점을 찍는 것이다.


③ <이 투 마마>(2001) 훌리오와 테녹과 루이자의 마지막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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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동갑내기 친구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테녹(디에고 루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섹스다. 틈만 나면 여자 친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왕성한 혈기는 충족되는 경우가 없다. 그때 찾아온 연상녀 루이자(아나 로페즈 메르카도)와 테녹, 훌리오는 함께 자동차 여행에 오르고 여정 동안 서로 진한 섹스를 나눈다. 그렇다고 <이 투 마마>를 단순한 섹스 성장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들의 진한 사랑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멕시코의 빈부 격차에 따른 시위와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행렬을 지나가듯 비춘다. 그와 다르게 테녹과 훌리오와 루이자는 섹스를 통해 평등을 이루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여정의 마지막 날 저녁, 테이블에 모인 이들은 그간의 쌓인 감정들을 모두 풀고 질펀한 섹스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 투 마마>의 카메라는 그런 이들의 평등과 화합의 순간을 깨기 싫은 듯 6분의 시간 동안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이야 말로 평화가 아니냐며 시위하는 듯 말이다.  

<위대한 유산>(1998) 에스텔라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핍의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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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은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이 펼쳐놓은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핍(에단 호크)과 에스텔라(기네스 펠트로)가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에스텔라에게 품은 사랑의 감정을 20대가 되어서도 잊지 못한 핍은 첫 번째 미술 전시를 앞두고 열린 파티 자리에서 그녀를 기어코 자기 여자로 만들려 한다. 핍이 전시장에 들어서 에스텔라를 발견하고 그녀를 쫓아 뉴욕 거리를 달려 끝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롱테이크가 활용된다. 전시장에는 전도유망한 화가 핍을 만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카메라에 투영된 핍의 눈에는 오로지 에스텔라만이 들어온다. 알폰소 쿠아론은 일찍이 에스텔라에게 마음을 품은 핍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녀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을 그간의 감정과 끝내 맺어진 사랑의 기쁨을 5분이 넘는 롱테이크에 고스란히 집약한다.

맥스무비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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