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허 플레이스> 알버트 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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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신 감독은 캐나다 교포 2세다. 장편 연출 데뷔작 <포인트 트라버스>를 비롯해 줄곧 캐나다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그가 두 번째 연출작 <인 허 플레이스>를 한국에서 찍었다. <인 허 플레이스>는 임신을 한 10대 소녀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부유한 도시에서 온 여인과의 모종의 거래를 다룬 작품이다.

한국 영화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알버트 신 감독은 혈혈단신 한국에 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인 허 플레이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 개봉 전 이미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작품상까지 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국내 개봉(12월 17일)을 앞두고 한국에서 기자시사회를 비롯한 각종 인터뷰와 GV 참석으로 바쁜 그에게 결코 쉽지 않았을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해 물었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옆 테이블의 한 가족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것이 <인 허 플레이스>의 발단이었다고요?
그 전에 이미 촬영지는 삼촌의 목장으로 정해 놓았어요. 어릴 적 한국에 올 때면 항상 지냈던 곳이에요. 7년 전인가, 삼촌이 목장을 그만두고 안양으로 가셨어요. 꼭 이 목장에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삼촌을 만나러 안양에 갔다가 칼국수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옆 테이블에서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더라고요. 가족 중 한 여자가 임신을 했나 봐요. 근데 누군가가 거짓말이다, 추석 때도 얼굴 안 보이는 게 숨어 있는 것 같다, 는 요지로 시끄럽게 말싸움하고 있었어요.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으신데 굉장히 인상에 남는 싸움이었나 봐요. (웃음)
그런 내용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웃음) 처음 들어본 건 아니었어요.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갈등이 있어요. 한국인들은 가족 간의 피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 허 플레이스>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뭔가 더 있을 거다, 조사를 했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영화적 공간으로 목장을 떠올리셨군요?
처음부터 목장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무조건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캐나다는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순하고 재미가 없어요. 저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한국은, 한국사람은 에너지가 넘쳐요. 특히 캐나다에서 살면서 한국을 보면 그런 부분들이 더 강하게 다가와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데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이상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아예 안 하려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여자 캐릭터가 제 마음속에서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조사 기간을 거치고 이야기를 만들고 목장을 공간으로 삼고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진행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의 모녀와 그들을 찾아온 도시 여자는 실제 모델이 있나요?
마음 안에서 만든 캐릭터예요. 한국에 와서 몇 개월 동안 조사도 했어요. 아무래도 예민한 문제인 데다가 한국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편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보니 인터넷도 살펴보았어요.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극 중 인물들에게 따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어요. 어떤 의도였나요?
영화는 시선이 중요하잖아요. 제목이 <인 허 플레이스>인 이유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람의 사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잖아요. 외국 관객이라도 ‘인 허 플레이스 in her place’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어서 이름을 굳이 특정한 누구로 한정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 재밌는 게 영어 영화였으면, 이름을 안 쓸 수가 없었을 거예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을 잘 안 쓰잖아요. 엄마는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저도 엄마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으니까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이름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의 심정을 대입할 수 있는 은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름을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우의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컸겠는데요?
저는 영화를 만들 때 배우에게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로 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즉흥 연기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둬요. <인 허 플레이스>를 작업할 때도 세 여자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제 머릿속에 있었지만, 배우들에게 맡은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지 배경에 관해 토론을 많이 하면서 만들어 갔어요.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촬영할 때 배우들에게 각자 캐릭터에 대한 책임을 많이 부여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에서는 그와 같은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극 중 인물들이 특별하게 비췄으면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배우들이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하기를 바랐어요.

배우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국말도 그렇지만, 한국영화 시스템도 잘 모르고  배우는 물론 스태프도 모두 처음 경험하는 분들이라 어려움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고생은 하겠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한국에 온 거예요. 처음의 걱정과 다르게 배우와 스태프분들과 너무 잘 맞아서 좋았어요. 우스개처럼 캐나다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인 허 플레이스>보다 예산도 크고 영어로 소통도 가능한데 왜 이만큼 안됐을까, 생각도 했어요. 오히려 현장에서 너무 사이가 좋아서 영화가 잘 안 나오면 그때는 어쩌지 그런 걱정을 했죠. (웃음)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오신 건데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셨나요?
한국에 프로듀서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한국 영화계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걸 알고 우선 조감독을 찾아줬어요. 건국대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처음으로 저와 영화를 하게 된 거예요. 조감독이 정말 많이 고생했죠. 보통 감독들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배우 캐스팅을 어느 정도 구상해 놓는데 저는 그조차도 없었어요. 조감독이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여줬어요. 함께 보면서 이 배우 좋다, 누구냐, 캐스팅할 수 있느냐, 그렇게 접근해 갔어요.

촬영감독은 캐나다에서 함께 하던 친구가 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아 못 오게 됐어요. 조감독이 건대뿐 아니라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들이 만든 단편을 보면서 촬영감독을 찾았어요. 그리고 촬영감독이 조명감독을 소개해주면서 한 명이 두 명으로, 두 명이 네 명으로 늘어나는 식으로 배우와 스태프 진들을 꾸렸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촬영현장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던가요?
영화를 찍는다는 자체는 같아요. 만드는 방식의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캐나다 현장에는 촬영감독은 있지만, 조명감독은 없어요. 대신 조명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지식을 갖춘 ‘게퍼 Gaffer’가 있죠. 이에 익숙해지려고 촬영감독은 물론 조명감독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현장편집도 한국에만 있는 방식이더라고요. 처음엔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찍고 나서 어떻게 나왔나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좋더군요.

제가 감독이라고 해서 캐나다에서 했던 방식을 한국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기회가 생길 텐데 이 기회에 한국의 시스템에 대해 많이 배워두는 게 중요했어요. 반대로 배우와 스태프들이 저에게 궁금해하는 것도 많았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조율됐어요.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 간의 믿음이 확인된 순간이 있었나요?
엄마와 임신한 딸이 기저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요. 이 장면이 터닝포인트였다는 생각이에요. 그전까지 배우도, 스태프도 저를 믿고 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에 오케이가 난 장면이었어요.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던 게 리허설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에 대사는 있었지만, 따라가지 않고 그 상황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기해달라고 요구를 한 것이었어요.

이 씬에서 감정을 끌어내지 못하면 영화의 끝 부분에 힘을 줄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배우들도 그렇고 저도 중요한 장면이라고 본 거죠.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엄마와 소녀가 둘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이잖아요. 소녀가 임신하는 사고를 쳤지만, 그래서 농장에서 마치 숨어있듯 살고 있지만, 엄마와 딸이 서로 힘을 합쳐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걸 이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둘의 사이에 안심하지만, 후에 벌어지는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는 거죠.
엄마가 딸의 임신을 서울에서 온 여자와 거래를 한 것 때문에 무정하다고 보지 않아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엄마는 나름의 최선의 살아갈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엄마 입장에서는 이번만 잘 넘기면 앞으로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본 건데 딸의 입장은 달랐던 거죠. 사실 딸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참아 넘기려고 한 건데 배도 점점 부르고 몸도 이상하게 되고 위안이 되어줘야 할 남자 친구는 연락도 없고 어린 마음에 심경이 복잡했을 거예요. 참으려고 노력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극 중 딸에게는 그 나이의 소녀에게 어울릴 만한 상황이 있겠죠. 엄마와 아웅다웅하기도 하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야 하는 시간 말이죠. 근데 엄마가, 남자 친구가, 서울에서 온 여자가 그녀가 있어야 할 공간과 시간을 모두 앗아갔다는 점에서 ‘인 허 플레이스’라는 제목이 와 닿더라고요.
이 제목은 맨 마지막에 나왔어요. D.I.(일종의 색보정 작업)을 할 때까지 제목이 없었어요 ‘우먼, 걸 마더 Women, Girl, Mother’를 가제로 했어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가 편집을 하는 순간에 갑자기 ‘인 허 플레이스’가 떠올랐어요. 영화 속 이야기를 은유하는 제목으로 딱 맞은 거예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 제목이라 더 좋았어요.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던 영화였는데 완성 후 평가들이 좋았죠?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했는데 이슈가 잘 됐어요. 올해 캐나다스크린영화제에서는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크로넨버그의 <맵 투 더 스타>, 자비에 돌란의 <마미>와 경쟁을 벌이기도 했어요.

<인 허 플레이스>를 완성하고 나서는 영화제에서만 소개되고 말겠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이 영화 덕분에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인 허 플레이스>는 너무 행복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함께 했던 배우, 스태프분들과 어떻게든 한국에서 다시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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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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