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바꿔야 산다?

selma

아카데미가 후보 발표 후 거센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시각으로 2월 29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89회 아카데미 연기상 부문에 단 한 명의 흑인 배우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주연 남자 부문은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 맷 데이먼(<마션>), 브라이언 크랜스톤(<트럼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마이클 패스벤더(<스티브 잡스>)와 여자 부문 브리 라슨(<롬>), 샬롯 램플링(<45년 후>), 시얼샤 로넌(<브루클린>), 케이트 블란쳇(<캐롤>), 제니퍼 로렌스(<조이>)까지 백인 일색이다. 조연 부문은 남자 부문 톰 하디(<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마크 러팔로(<스포트라이트>), 실베스터 스탤론(<크리드>), 크리스찬 베일(<빅쇼트>), 마크 라이런스(<스파이 브릿지>)와 여자 부문 제니퍼 제이슨 리(<헤이트풀 8>), 레이첼 맥아담스(<스포트라이트>), 알리시아 비칸데르(<대니쉬 걸>), 케이트 윈슬렛(<스티브 잡스>), 루니 마라(<캐롤>)까지 역시 백인이 모두 장악했다.

흑인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이력이 있는 스파이크 리(<올드 보이> <말콤X> <똑바로 살아라> 등)는 “’백합처럼 흰’ 아카데미를 지지할 수 없다”고 비꼬았고 이에 <45년 후>로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샬롯 램플링은 “흑인 배우들이 후보 리스트에 오를 자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오히려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곧 그녀는 발언 내용이 오해를 샀다며 유감을 표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카데미의 흑인 차별을 인정한 셈이 됐다.

2015년의 할리우드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백인(이 등장하는) 영화가 (수적으로) 강세였을지 모르지만, 흑인이 중심에 섰던 영화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흑인’ 감독 에바 두버네이의 <셀마>는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시위에 지지와 존경을 담아 자극적인 장면을 자제하는 연출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마틴 루터 킹을 연기한 ‘흑인’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의 열연까지 더해져 호평을 받았다.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흑인을 향한 차별과 경찰들의 무차별적인 진압에 힙합으로 맞선 N.W.A의 모습을 담아 북미 흥행수익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 꾸준히 참여한 사무엘 L. 잭슨은 <헤이트풀 8>의 타이틀 롤을 맡아 명불허전의 연기를 펼쳤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음향믹싱상, 음향 편집상 5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핀 역할을 맡은 존 보예가가 남우 조연상 부문에 빠진 것도 개인적으로 아쉽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역사상 흑인 캐릭터가 주인공 역할을 맡은 것은 잘 알려졌듯이 최초다. <스타워즈>가 미국의 현대 신화로 평가받는 것과 더불어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고려할 때 아카데미가 존 보예가를 남우 조연상 후보에 지명했다면 꽤 의미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 최고의 프랜차이즈 영화에 흑인이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는 것은 인종과 관련한 편견을 어느 정도 깨고 인식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일종의 사건이란 점에서 그렇다.

남우조연의 쟁쟁한 후보들 중의 한 명으로 이제야 이름을 알린 존 보예가를 포함한다고? 아카데미가 오락성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MTV 영화제(MTV Movie Award)냐, 고 코웃음 치시는 독자분들, 꽤 있을 거다. 이미 아카데미의 후보 선정이 끝났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렇게 됐다고 해서 ‘아카데미가 정신 나갔네’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카데미의 오랜 역사와 권위는 인정하지만, 그들의 시상 결과에 동의했던 적이 과연 얼마나 되나?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꼽을 때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알프레드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감독 부문 트로피에 키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941년 <레베카>로, 1945년 <라이프보트>로, 1946년 <스펠바운드>로, 1955년 <이창>으로, 1961년 <사이코>로 후보에 오를 동안 감독상을 가져간 건 <분노의 포도>(1940)의 존 포드와 <나의 길을 가련다>(1944)의 레오 맥커리와 <잃어버린 주말>(1944)과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를 모두 연출한 빌리 와일더와 <워터프론트>(1954)의 엘리아 카잔이었다.

히치콕보다 더한 악연(?)으로 아카데미와 연결된 배우도 있다. 고(故)피터 오툴이다. 피터 오툴은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겨울의 라이언>(1968) <지배 계급>(1972) <아름다운 날들>(1982) 등 총 8차례 남우 주연 부문 후보에 올라 단 하나의 오스카도 수집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결과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수긍할 수 없는 결과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아카데미는 무수한 반대 의견을 들어야만 했다. 그 결과, 알프레드 히치콕과 피터 오툴은 각각 1968년과 2003년에 공로상에 해당하는 어빙 탤버그 상(Irving G. Thalberg Memorial Award)과 명예상(Honorary Award)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아카데미가 자신들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뒤늦게서야 인정한 셈이었다. 다만 이를 공식화하는 대신 공로상으로 포장하는 탁월한 쇼맨십을 발휘, 비판을 얼마간 잠재우고는 했다.

이는 아카데미의 경향 같은 것이다. 아카데미의 감독상과 연기상 부문을 살펴보면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상을 받은  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뒤늦게 보상 차원에서 상이 결정되는 사례도 심심찮다. 여섯 번의 고배 끝에 그의 최고작이라고 하기에 의견이 분분한 <디파티드>(2006)로 감독상을 받은 마틴 스콜세지를 떠올릴 분이 많을 것 같다. 스콜세지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이기에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지 뒤늦은 수상 사례는 연기상 부문의 유색 인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흑인 배우가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연기상을 가지고 온 건 1939년의 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해티 맥대니얼은 여우 조연상을 받았다. 그후 25년이 지난 1964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시드니 포이티어가 남우 주연 오스카를 거머쥐었고 38년간 잠잠(?)하다가 2002년 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가 각각 <트레이닝 데이>와 <몬스터 볼>로 흑인 남녀 배우가 동시에 주연상을 휩쓸며 아카데미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한 획을 그었다 대신 새 장을 열었다, 고 표현한 건 2002년을 분기점 삼아 아카데미가 이전과는 다르게 흑인 배우에 대한 수상의 주기를 점점 줄여갔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제이미 폭스와 모건 프리먼이 각각 <레이>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남우 주연상과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포레스트 휘태커가 <라스트 킹>으로 남우 주연상을, 제니퍼 허드슨이 <드림걸즈>로 여우 조연상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프레셔스>의 모니크가, 2012년에는 <헬프>의 옥타비아 스펜서가, 2014년에는 <노예 12년>의 루피타 니옹고가 여우 조연 부문의 오스카를 가져가며 연기상 부문이 더는 백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넓혔다.

연기상 부문을 제외하면 아카데미는 여전히 소수자에게 문턱이 높은 시상식이다. 8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이지만, 감독상 부문에서 흑인이 수상한 전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스티브 맥퀸이 연출한 <노예 12년>이 작품상을 받은 것이 아카데미가 흑인 감독에게 문호를 개방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협회(AMPAS)가 ‘백인 남성’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인에 못지않게 여성 연출자가 감독상을 받은 경우도 2010년 <허트 로커>를 연출한 캐슬린 비슬로우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아카데미를 향해 보수적이라 비판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는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작품의 성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아카데미는 유독 실화가 바탕인 영화에 관대하다. 올해 작품상 후보에 지명된 영화는 <브루클린> <룸> <빅쇼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스파이 브릿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포트라이트> <마션> 총 여덟 작품이다. 이중 <브루클린>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마션>을 제외하면 모두 실화를 다룬 영화다. <미지와의 조우>(1977) <인디아나 존스>(1981) <E.T.>(1982) 등 SF와 판타지로 접근한 작품에서는 모두 고배를 들었다가 실화가 중심에 놓인 <쉰들러 리스트>(1993)로 비로소 감독상과 작품상을 품에 안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력은 아카데미의 성향을 설명하는 유명한 일화로 소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과 같은 판타지에 감독상과 작품상을 시상하며 실화만 편애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흘려듣지 않는 자세로 심심찮게 놀라움을 주고는 했다. 또한, 아카데미는 미국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영화에 상을 몰아준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비판에 대한 아카데미의 답변은 2008년에 이뤄졌는데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작품상을 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포함해 후보에 오른 <어톤먼트> <주노> <마이클 클레이튼> <데어 윌 비 블러드> 중 <어톤먼트>를 제외하면 그동안 아카데미가 부러 외면했던 성격의 영화들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마이클 클레이튼>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비리와 부조리를 폭로하는 영화였다면 <주노>는 10대 소녀의 임신을 다룬,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전통을 고려하건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조차 사건이라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아카데미는 이런 식으로 그들을 향하는 보수성의 부정적 평가에 수긍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동시에 이를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삼아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AMPAS는 아카데미 행사가 시상식이기 이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축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심심찮게 파격적인 결정을 하는 아카데미의 시상 결과는 제스춰일 가능성이 크다. 흑인 배우의 수상을 늘리고 장르물에도 문호를 넓히고 있지만, 백인 남성이 압도적일 아카데미의 시상 결과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아카데미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시청률이 높은 시상식의 지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벤트의 성격이 짙을지언정 비판의 일부를 받아들여 이를 시상식에 반영하는 긍정적인 자세에 있다. 올해 아카데미가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판에 시상식 전부터 애를 먹었지만, 내년에는 적어도 연기상 부문에 있어 흑인 후보를 올릴 것이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여기에 500원을 걸 용의가 있다. 끊임없는 보수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90년 가까운 역사와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이런 배경이 한몫한다.

공교롭게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이병헌이 공식 초청을 받아 시상자로 나설 예정이다. 안 그래도 요 몇 년 사이 한국 감독과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그뿐인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의 참여도 셀 수 없이 많다. 언젠가 한국인 출신의 영화인이 아카데미의 본상 후보자에, 그리고 수상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흑인들의 사례에서 보듯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판과 호소로 꾸준히 한목소리를 내면 결국 아카데미를 움직인다.

 

ARENA HOMME+
2016년 3월호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