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킬드 마이 마더>의 <엄마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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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의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나는 엄마를 죽였다.’ 물론 진짜로 죽인 것은 아니다. 후베르트(돌란 자신이 연기했다!)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크다. 거의 증오의 수준이다.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성을 사귄다는 사실도 엄마에게는 비밀이다. 대신 독립을 꿈꾸지만, 이마저도 반대에 부딪혀 심정적으로는 엄마를 죽이고 싶은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반어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후베르트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누군가 엄마를 해친다면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실은 엄마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그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니 16살 사춘기 소년의 입장에서 엄마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사실 후베르트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자(母子) 관계가 있다. 남자친구이기도 한 안토닌의 모자다. 후베르트는 종종 안토닌의 집에 놀러 가 침대에서 밀어를 나누고는 한다. 안토닌의 엄마는 그 광경에 놀라기는커녕 아들의 관계와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자신 또한 남자친구를 데려와 자연스럽게 아들과 후베르트에게 소개할 정도다.

그런 안토닌의 집에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엄마와 아이> 그림이 걸려있다. 사랑하는 아이를 품고 잠이 든 엄마의 모습은 평온함 그 자체다. 엄마의 황금빛 머리가 배경을 압도하는 가운데 이상적인 모자 관계를 넘어선 남녀 관계에 가까운 퇴폐미도 은근히 느껴진다. 사실 후베르트와 엄마가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듣네 마네 말꼬투리를 잡으며 말싸움을 벌이는 광경은 남녀가 나누는 사랑싸움을 연상케 한다.

이 관계가 특별해 보이나?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종종 모자 관계를 넘어선 연인 관계를 지향하고는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관계의 보편성일 것이다. 클림트의 <엄마와 아이>의 그림이 묘사하는 것 또한 모자 혹은 연인이라는 특정 사이를 넘어선 가장 순수한 형태의 관계일 것이다. 극단적인 사랑과 극단적인 증오는, 그래서 같은 감정이다.

자신을 기숙사로 보낸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었던 후베르트는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떡할 거야?” 엄마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매몰차게 돌아서지만, 혼잣말처럼 “그럼 나는 내일 죽을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엄마를 죽였다.’ 단순히 후베르트가 품은 감정일까? 엄마라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 안의’ 엄마를 죽였다. ‘엄마와 아이’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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