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허슬> 데이빗 O. 러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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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O. 러셀은 지금 할리우드의 모든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안달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면 아카데미 연기상 부문에 최소한 후보에는 오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배우들 사이에 신앙처럼 자리하고 있다.

<파이터>(2010)에 출연했던 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멜리아 레오는 오스카 연기 부문 후보에 올라 그중 크리스찬 베일과 멜리아 레오는 수상까지 하였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의 경우, 남녀 주연과 남녀 조연 모두 연기상 부문에 후보로 오를 정도였다.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로렌스는 최연소 수상자라는 또 하나의 영예까지 획득했다.

그러니, O. 러셀 감독이 신작에 들어간다며 출연 의향을 물을 때 거절할 배우가 누가 있겠는가. <아메리칸 허슬>에는 데이빗 O. 러셀의 전작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파이터>에 출연했던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 니로에 더해 제레미 레너가 새롭게 합류했다.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 실제 미국에서 벌어졌던 희대의 스캔들을 영화화했다. FBI가 거물급 범죄자를 잡겠다며 가짜 아랍(Arab) 족장을 내세워 함정(Scam) 수사를 펼쳤다고 해서 ‘앱스캠 스캔들 Abscam Scandal’로 불리는 사건이다. FBI 요원 리치(브래들리 쿠퍼)는 사기극을 펼치는 어빙(크리스찬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아담스) 커플을 검거한 후 이들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풀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사기꾼들의 본성이 어디 갈까. 어빙과 시드니는 함정 수사를 교묘하게 조작해 혐의도 벗고 큰돈까지 챙기며 FBI를 농락한다.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사기’는 멤버들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은 이에 착안, 전작에서 찰떡 호흡을 과시했던 배우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배우들은 O. 러셀 감독과의 작업이 반가운 한편으로 또 하나의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욕을 불태웠다.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자신을 철저히 가려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모습을 내세워야 하니, 변신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연기력을 과시할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이것이 O. 러셀 감독이 배우에게서 최상의 연기력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법이 없다. 예컨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역할을 통해 건장한 슈퍼히어로 이미지를 갖고 있던 크리스찬 베일은 마약에 찌든 퇴물 복서 역할을 위해 <파이터>에서 15kg 감량했고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체중을 20kg 이상 불리는 것은 물론 대머리 분장까지 감수하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중년으로 또 한 번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그것은 <아메리칸 허슬>의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여서 청순한 이미지와 다르게 과감한 노출연기를 펼치는 에이미 아담스, 그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아줌마 파마를 한 브래들리 쿠퍼, 기존의 우아하고 강인한 모습 대신 천박함을 전면에 내세우는 제니퍼 로렌스까지, 이들은 크리스찬 베일과 더불어 2014년 아카데미 영화제의 남녀주연과 조연 부문에 모두 후보로 선정됐다. 배우들에게 데이빗 O. 러셀이라는 이름은 아카데미 연기상과 동의어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인 것이다.

그 때문에 O. 러셀 감독의 연출력이 다소 묻혀있지만 그는 명실상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올라있는 상태다. <파이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아메리칸 허슬>로 세 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이번만큼은 가장 강력한 수상자로 점쳐지는 것이다. 실제로 O. 러셀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솔직하면서 흥미로운 방식으로 미국에 대해 말하는 감독이다.

지난해 제니퍼 로렌스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전리품으로 안겨줬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계속된 불황과 빈익빈부익부의 여파로 영혼이 바스라지기 일보직전인 미국인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보고서라 할 만하다. 팻(브래들리 쿠퍼)은 아내와의 이혼 후 정신병원에 수감됐다가 막 퇴원한 상태고,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남편의 죽음 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직장의 모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 미망인이다. 워낙 상태들이 안 좋아 부러 외면하고 싶은 인물들이지만 데이빗 O. 러셀 감독은 이들의 결합과정을 코믹한 소동극으로 가져가며 지금의 고통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메리칸 허슬> 역시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남녀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로 마무리하지만 O. 러셀 감독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다르게 위로와 희망 대신 조롱과 냉소의 태도로 극 중 소동을 바라본다. 결국 FBI 요원 리치가 사기꾼 커플 어빙과 시드니를 고용해 검거하는 거물급 범죄자는 정치인 카마인(제레미 레너)이다. 10년 넘게 시민들의 사랑을 받은 카마인은 도시 재개발 사업 자금을 유치하려다가 리치와 어빙 커플의 꾐에 빠져 헌신적인 시장에서 범죄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O. 러셀 감독이 보건데 이것이 진짜 미국의 정체다. 정작 미국을 위해 헌신하는 카마인 같은 이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을 망치는 것에 반해 어빙과 시드니 같은 사기꾼은 사랑도 쟁취하고 거액도 손에 쥐며 미국 내에서 승승장구한다. 데이빗 O. 러셀은 몰락하는 카마인과 모든 걸 얻은 어빙 커플을 교차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은 바로 아메리칸 허슬, 즉 ‘미국의 사기’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O. 러셀 감독은 일관되게 ‘아메리칸 허슬’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쓰리 킹즈>(1999)는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보물 지도를 발견하고는 하라는 평화 임무 대신 금괴를 찾아나서는 이야기였다. <파이터>는 상대방 선수의 승리 전적을 올려주는 백업 권투 선수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트레이너 형제가 스포츠로 꿈을 이루려다 가족 때문에 포기하는 사연을 따라갔다. 죽어라 노력하는 서민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에 반해 그 보상이 엉뚱한 이들에게로 돌아가는 미국의 불편한 진실.  

그렇게 미국은 시시각각 얼굴을 바꿔가며 유무형의 ‘아메리칸 허슬’을 통해 지금의 미국을 만들어왔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은 그 과정을 쫓아 미국의 진짜 역사를 폭로하고 있다. 그에 맞춰 배우들은 매 영화 과감한 변신으로써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있는 미국의 얼굴을 그대로 입증했다. 미국의 실체가 궁금하다고? 데이빗 O. 러셀의 영화에 당신이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미국의 흑역사가 담겨 있다.  

BEYOND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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