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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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1930~ )는 올해 85세가 되었다. 남들은 일찍이 은퇴하고 편하게 노후생활을 즐기는 동안에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 더욱 왕성한 창작력을 보이고 있다.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로 감독 데뷔한 이래 매년 한 편씩의 페이스로 지금까지 34편의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그중 스무 편이 환갑이 넘어간 이후에 나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그의 35번째 영화이자 84세에 만든 신작이다.

우리에게 영웅, 적에게 악마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로 꼽히는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이라크에 파병된 크리스(브래들리 쿠퍼)가 옥상에서 총을 겨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표적은 맨손에 포탄을 들고 미군의 탱크로 향하는 이라크 아이다. 과연 저 어린아이를 쏠까, 하는 순간 장면은 전환되고 크리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저격수가 되었는지 성장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텍사스 출신의 크리스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에는 폭력에 맞서야 한다는 충고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카우보이로 활약하던 그는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광경을 TV로 목격하고는 애국심에 불탄 나머지 서른 살의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다. 남다른 총 실력을 지닌 크리스는 저격수 임무를 맡게 되고 곧 이라크에 파병되어 빨리 능력을 인정받는다.

공식 160명, 비공식 255명, 미군 역사상 최다 저격 기록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는 미국에서 전쟁 영웅이자 ‘살아있는’ 전설의 저격수로 통한다. 아니 통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촬영이 한창이던 때 그는 육체적 고통은 물론 심적 불안을 보이는 재향 군인을 상대로 총 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이의 총에 맞고 사망한 것. 이스트우드는 그의 추도식 방송 장면을 그대로 영화의 마지막에 갖다 붙여 크리스 카일을 추모했다.

이를 두고 영국의 가디언은 ‘이라크 파병 미군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동적인 경의’라는 평가를 했다. 크리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대한 적합한 평가는 아니다. 이스트우드는 크리스를 전쟁 영웅이나 전설의 저격수가 아닌 전쟁의 피해자, 즉 전쟁이 어떻게 그와 그의 동료, 더 나아가 미국을 망쳤는지에 초점을 맞춰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구성했다.  

이 영화의 국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홍보 문구가 전면에 나선다. ‘적은 그를 악마라 부르고 우린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크리스 카일을 지칭하는 것일까? 제목에 ‘아메리칸’이 명기된 만큼 많은 이들이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겠지만, 주어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애매하다. 의도적일 것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는 크리스 외에 또 한 명의 저격수가 등장한다. 이라크군 소속의 무스타파다.
 
크리스가 이라크 반란군에게 악마로 불린 것처럼 미군에게 무스타파 또한 악마다. 크리스가 기록한 수치 정도는 아니지만, 이라크에서 파병 활동을 벌이던 중 목숨을 잃은 미군이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이라큰 반군에게 무스타파는 또한 영웅이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지만, 둘 다 자신의 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점에서 크리스와 무스타파는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    

결국, 나를 표적 삼은 저격

이스트우드는 늘 전쟁 같은 삶을 영화로 다뤄왔다. 그가 가장 많이 출연하고 연출한 서부극도 기본적으로 전쟁을 무대로 한다. 아예 전장의 한가운데 뛰어든 영화도 있었다. 화산섬 이오지마를 두고 대립했던 미군과 일본군의 입장을 각각의 영화에 담아 연계했던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상 2006)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전쟁의 실상과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의 생각을 균형 있게 다룬 전쟁영화의 걸작이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에게 장면 대부분을 할애하며 판을 넓게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뻔한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무스타파를 단순한 적이 아닌 크리스의 거울상으로 가져가며 역시나 편을 가르지 않는 현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그처럼 무스타파는 크리스와 여러 모에서 닮았다. 올림픽 사격 부문에 출전, 메달을 땄을 정도로 총 쏘기에 재능을 지녔고 크리스가 9.11을 목격하고 군에 자원입대한 것처럼 시리아에서 활동하던 무스타파는 이라크가 미군에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든 영광을 뒤로 한 채 저격수 임무를 자청한다.

결국, 전쟁은 같은 인간이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복수심의 순환으로 만든 최악의 결과물이다. 관련해 등장하는 크리스의 결혼식 장면은 과연 그가 짝을 맺는 대상이 아내인지 아니면 전쟁인지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는 당일, 크리스는 식 중에 이라크로의 첫 번째 파병을 명받는다. 그의 결혼 생활이 앞으로 순탄치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줌과 동시에 적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를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될 동안 마음에 품고 있을 거란 사실을 암시한다.  

무스타파라고 다를까. 그의 개인사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영화는 슬쩍슬쩍 무스타파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던진다. 예컨대, 자신의 동료 수백 명을 저격한 크리스의 출현 소식을 들은 무스타파는 얼른 총을 챙겨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서둘러 집을 나선다. 역시나 동료의 죽음을 되갚겠다며 아내의 만류와 아이들의 갈구하는 눈빛을 무시하고 네 차례의 파병을 지원한 크리스는 무스타파의 미국인 버전, 다시 말해 ‘아메리칸 스나이퍼’인 것이다.

크리스와 무스타파의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에서 무엇을 취하게 될까.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포탄을 든 이라크 아이를 표적 삼은 크리스의 총구는 과연 불을 뿜을까. 잠깐, 크리스의 총이 겨냥하는 대상이 이라크 아이가 맞긴 한 건가? 영화는 그 장면에 이어 바로 어린 시절의 크리스를 보여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전장의 크리스가 실질적으로 저격하려는 대상은 바로 그 자신의 영혼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가치를 뼛속 깊이 체화했던 크리스의 영혼은 그때 이미 죽어버렸다. 전쟁이란 그런 거다. 이런 피의 악다구니 속에서 영웅이, 전설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을 향해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총을 발사했던 마초 캐릭터로 스타덤에 올랐다. 한편으로 대표작인 <더티 해리>(1971) 개봉 당시 저명했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로부터 ‘우익의 판타지에 복무하는 캐릭터’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스트우드는”난 실제 삶에서 폭력을 옹호하지 않는다. 만일 그동안 폭력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시 그런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후 그의 영화적 행보는 ‘총을 내려놓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총 대신 카메라(<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권투글러브(<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를 손에 드는가 하면 총이 있더라도 주머니 속에 간직(<그랜 토리노>(2008))하는 쪽을 택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그의 연장선에 있다. 미국의 미래,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저격’은 총을 놓는 것이다. 85세의 노인이 35번째 영화로 전 세계에 들려주는 충고다.

시사저널
(20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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