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 벤 애플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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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는 미국에서의 공개(미국시간 10월 12일 개봉) 이후 일찌감치 내년 아카데미 영화제의 유력한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작으로 거론되고 있는 분위기다. 1979년 이란에서 인질로 잡힌 미국인들을 무사히 구출한다는 내용이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구미를 자극할 만한 내용인 건 사실이지만 이제 고작 세 편, 더군다나 배우의 이미지가 더 컸던 벤 애플렉의 감독상 수상 여부를 미리부터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연출 데뷔작 <가라, 아이야, 가라>(2007)로부터 <타운>(2010)을 거쳐 <아르고>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목격되는 연출능력이나 주제의식은 벤 애플렉이 왜 유능한 연출자로 평가받는지를 증명한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벤 애플렉이 <가라, 아이야, 가라>로 연출 데뷔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호사가들은 예의 그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절친’으로 알려진 맷 데이먼이 스티븐 소더버그(‘오션스’ 시리즈), 코언 형제(<더 브레이브>(2010)), 클린트 이스트우드(<히어 애프터>), 폴 그린그래스(‘본’ 시리즈), 마틴 스콜세지(<디파티드>(2006)) 등 거장들의 작품에 잇달아 출연하며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서바이빙 크리스마스>(2004) <페이첵>(2003) <데어 데블>(2003) 등 기록적인 흥행 실패작으로 배우로서의 입지를 깎아먹던 벤 애플렉이 이참에 연출자로 업종(?) 전환, 관심을 모으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벤 애플렉이 배우 이전 작가로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굿 윌 헌팅>(1997)의 각본을 맷 데이먼과 공동으로 집필, 아카데미 각본상을 거머쥐었던 이가 바로 벤 애플렉이 아니었던가. 그는 이전부터 연출에 대한 꿈을 품고 할리우드 생활을 이어갔다. “항상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모험심 많은 감독들과 함께 하는 동안 내용을 전개하는 법, 장면을 바라보는 법, 상황을 판단하는 법 등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넣으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이 감독으로서의 나의 경력에 최고의 자산이 되었다.” 첫 번째 연출작부터 신인감독에게는 다소 큰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가라, 아이야, 가라>를 맡게 된 건 벤 애플렉의 말마따나 준비된 연출자였던 까닭이다.

실제로 <가라, 아이야, 가라>는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제작진이 참여한 프로젝트이었다. 와인스타인 형제가 떠났지만 미라맥스는 할리우드에서 영향력이 여전한 제작사였고 원작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이었다.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읽고 영화화하고 싶었던 벤은 케빈 스미스(<점원들>(1994) 감독)의 도움을 얻어 미라맥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굿 윌 헌팅> 이후 오랜만에 참여한 각색을 데니스 루헤인이 맘에 들어 했고 이를 바탕으로 모건 프리먼, 에드 해리스 등 베테랑 배우의 출연도 이끌어냈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는 IMDB 평점 7.8, 로튼토마토 지수 94%를 획득하며 좋은 평가를 얻었고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인상 깊게 본 워너브러더스는 <타운>의 연출자로 내정되어 있던 에이드리언 라인(<언페이스풀>(2002)) 대신 벤 애플렉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

벤 애플렉이 연출한 영화에서 공통되는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배경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버클리 출신이지만 부모의 이혼 후 매사추세츠 캠브리지에서 성장한 그에게 보스턴은 그야말로 고향과 같은 곳이다. 스티븐 킹과 함께 메이저리그 야구 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가장 열렬한 셀러브리티 팬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가라, 아이야, 가라>와 <타운>은 마커스 세이키(<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와 더불어 보스턴 하드보일드 트로이카로 불리는 데니스 루헤인과 척 호건의 동명소설을 각각 영화화했다. 그러니 <가라, 아이야, 가라> <타운>을 모두 보스턴에서 촬영한 건 벤 애플렉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고향인 보스턴에 대해 실감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가 두 편의 영화를 만든 이유다. <가라, 아이야, 가라>의 프로듀서 션 베일리의 설명에 따르면, “벤은 그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실감나게 펼쳐나갈지 예리한 감각으로 보여줬다.” 벤 애플렉은 마틴 스콜세지가 보스턴을 배경으로 했던 <디파티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보스턴의 적나라한 부분을 담고 싶어 했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자기의 욕심을 위해 어린 아이를 납치하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이야기였고 <타운>은 대를 이어 범죄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비극적 운명에 관한 영화였다.  

이를 위해 벤 애플렉은 <가라, 아이야, 가라>는 도체스터에서, <타운>은 찰스타운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촬영 뿐 아니라 주요 배역을 제외한 엑스트라는 모두 현지 주민들을 캐스팅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도체스터와 찰스타운이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라 다소 위험이 따랐음에도 불구, 벤 애플렉이 이 지역 출신이란 점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호감으로 작용했다. 적어도 그들이 사는 곳을 미화하거나 더 안 좋은 곳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의 패트릭 켄지 역에 친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을 캐스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박이 사립탐정인 켄지는 이웃에게서 정보를 얻어 사건을 수사하는 형(形)인데 역시 보스턴에서 18년을 보낸 케이시 애플렉이 이와 같은 정서를 이해하기에는 적역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차근차근 익혀가는 감독

<타운>은 <가라, 아이야, 가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였다. <가라, 아이야, 가라>처럼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면서 범죄물을 지향하는 영화가 <폭풍 속으로>(1991)의 가면 쓴 은행 강도, <히트>(1995)의 실감나는 거리 총격전 등을 노골적으로 가져다씀으로써 독창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은행 강탈 도중 인질로 잡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은행 강도의 얘기라는 점에서 일리 있는 비판이지만 미국 최대 범죄도시 보스턴에서 범죄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운명론적으로 설명하려 드는 영화임을 감안할 때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평가인 것이다. 혁신적인 느낌은 없을지언정 <타운>이 범죄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한다면 장르의 직계 선배영화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영화에 그림자 드리우는 것은 형식적으로 볼 때 자연스럽다.

<타운>처럼 벤 애플렉은 처음부터 다소간의 한계를 가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르고> 역시 그런 경우인데 이미 성공한 인질 구출 작전임을 다 아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였다. 이에 대한 벤 애플렉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초보 감독이라는 것. “<가라, 아이야, 가라>는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타운>에서 제한된 재료들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법, 긴장감을 발전시켜 나가는 법, 액션과 같은 큰 규모의 장면을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아르고>에서는 전작보다 배경의 범위를 넓혔으며 더불어 필름을 운용하는 방식을 실험했다.”

안 그래도 <아르고>는 그가 연출한 작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979년 테헤란에서 벌어진 이란 시위대의 미국 대사관 점령으로 시작하는 <아르고>는 몰래 탈출해 캐나다 대사관에 숨어들어간 6명의 직원들을 CIA 요원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가 구출하는 영화다. 보스턴을 무대로 한 범죄물에 익숙했던 벤 애플렉은 이제 미국을 넘어 중동을 배경으로 묘사해야 했고, 당시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보다 놀라운 건 이미 완결된 사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능수능란한 연출력이다. 토니가 영화 스태프로 위장한 6명의 미 대사관 직원을 데리고 테헤란의 공항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벤 애플렉은 공항에 묶인 대사관 직원과 이들을 의심하는 이란 군부와 미국에서 초조하게 작전 결과를 기다리는 고위인사 등 3개의 상황을 교차 편집하는 고전적 연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세상

이와 같은 고전적 연출은 벤 애플렉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주는데, 메시지의 구축 면에서도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운이 감지될 정도다. 예컨대, <아르고>의 토니 멘데즈가 가짜 영화 제작이라는 구출 작전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혹성탈출>(1968)을 보고서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에 개봉했던 <혹성탈출>은 세계 경찰관을 자처하던 미국의 폭력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 영화였다. 그처럼 벤 애플렉의 영화적 메시지는 폭력이 만연한 미국사회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이들을 향한다. 하여 그가 연출한 영화는 모두 범죄영화에 속하지만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이 세상, 아니 지금의 미국사회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만큼 살만한 곳인가? 

하여 <가라, 아이야, 가라> <타운> <아르고> 모두 해피 엔딩의 구조를 갖지만 우울한 정서 속에 목격되는 막연한 성질의 것이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눈에 띠게 감지된다. <가라, 아이야, 가라>의 경우, 켄지가 유괴된 아이를 찾아내 집으로 돌려보내지만 범죄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한 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돌보기에는 미성숙한 존재로 보인다. <타운> 역시 주인공 더그(벤 애플렉)가 아버지 대에서 이어온 범죄의 굴레를 가까스로 벗어나지만 그의 고향 친구들은 여전히 폭력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와 달리 <아르고>는 부인과 별거하고 아이와 떨어져 지내던 토니 멘데즈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재결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관계는 이들과 같은 가족의 화합을 위협할 만큼 여전히 대치 국면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벤 애플렉의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하나 같이 ‘무력감’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행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내재된 좌절 말이다. 폭력을 처단해야 할 공권력은 부패했고 신(God)은 자비와 희생의 절대적인 가치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가라, 아이야, 가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나쁜 환경에 처한 아이를 유괴해 좋은 환경으로 보내는 것이 옳은지, 아무리 덜 떨어진 부모라도 이를 감수하고 되찾은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인지,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혼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벤 애플렉의 선택이 궁금하다고? “훌륭한 예술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만 질문을 던질 뿐이다.” 벤 애플렉에게 감독의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가 던지는 질문이 지금 미국사회와 관련해 유효적절하기 때문이다.

movieweek
NO.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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