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우먼> 닉 카사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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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카사베츠는 빅 히트작은 없지만 <존 큐>(2002) <노트북>(2004) <마이 시스터즈 키퍼>(2009) 등 제작사에 크게 손해 끼치는 일 없이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중견 감독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부모님이다.

아버지 존 카사베츠는 메이저 영화사와 거리를 둔 채 독립적인 영화 만들기로  할리우드 영화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감독이자 각본가이자 배우였다. 어머니 지나 롤랜즈는 남편의 즉흥적인 연출에 맞춰 생생한 표정과 감정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문에 후보로까지 올랐던 위대한 배우였다.

연기를 시작하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인 로열패밀리로 통하는 카사베츠 가문의 2세이었던 닉 카사베츠는 자연스럽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지금은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영화에 발을 디딘 건 연기였다. 1959년생인 닉 카사베츠는 이미 10대 초반에 아버지가 연출한 <남편들>(1970) <영향 아래의 여자>(1974) 등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누리기 힘들었을 행운이었다.

그런 행운이 고등학교 시절의 닉 카사베츠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부모님의 이름을 떼어놓고 독립적인 자아로 평가받고 싶었지만 세간의 시선은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아들로만 향하였다. 특히 아버지의 명성에 대한 반항심은 닉 카사베츠로 하여금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운동 신경도 꽤 좋았던 그는 농구 실력이 뛰어나 농구 명문 시라큐스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속한 신은 닉 카사베츠를 농구와 떼어놓고 영화와 맺어지게끔 운명의 항로를 급격히 변경했다. 닉 카사베츠는 농구 시합 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시라큐스 대학으로의 진학은 물론 프로 선수의 꿈도 포기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서 일찍이 연기 생활을 경험한 적 있는 그에게 남은 선택이란 영화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수학한 적 있는 뉴욕의 명문 연기학교인 미국 드라마 예술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s)에서 그는 프로 배우가 갖춰야 할 덕목을 열심히 익혔다.

가문의 명성과 학교의 인맥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닉 카사베츠는 여전히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아들이라는 유명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19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마스크>(1985)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당시 그의 경력은 변변치 못했다. 그저 그런 액션물인 <젊은 코만도 대원들 Young Commandos>(1991), 에로틱에 방점이 찍힌 스릴러 <욕망의 죄악 Sins of Desire>(1994) 등 동시상영 용으로 졸속 제작된 B급영화 일색이었다.

사실 아버지의 명성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던 닉 카사베츠는 부러 각본과 연출에 대한 호기심을 자제해왔다. 그렇다고 배우로서 원대한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지만 잘 나가는 영화인 부모를 둔 그의 정체성을 감안하면 너무나 초라한 경력이었다. 반등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닉 카사베츠에게는 아직 펼쳐 보이지 않은 재능 한 축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연출과 각본이었다.

감독이 되다

닉 카사베츠가 만든 영화를 보면 아버지 존 카사베츠가 연출한 작품의 영향력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메이저를 경멸해왔던 아버지와 달리 닉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의 중심부에서 지금도 안정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존 카사베츠가 배우의 살아있는 감정을 잡아내기 위해 즉흥적인 연출에 공을 들였다면 닉 카사베츠는 완성된 시나리오에 맞춰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닉 카사베츠의 영화에 호의적인 평을 내놓지 않지만 그는 늘 아버지 영화의 특징적인 요소를 매 작품마다 은근하게 반영해왔다.

닉 카사베츠의 연출 데뷔는 조금 늦은 나이인 37세에 이뤄졌다. <스타를 벗겨라>(1996)라는 작품이었는데 여기서 닉 카사베츠는 어머니 지나 롤랜즈를 남편 없이 아이를 홀로 키운 60세 과부로 캐스팅하였다. 실제로 지나 롤랜즈는 남편 존 카사베츠가 1989년 간경화증으로 사망한 이후 혼자 지냈다. 남편과의 사별 이후 공허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을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지워 자연인과 배우의 정체성을 합일하는 방식은 아버지 존 카사베츠 연출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닉 카사베츠의 최신작인 <아더 우먼>(2014)도 마찬가지다. 개봉 당시 미국 내에서 한창 승승장구하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2위로 끌어내리며 화제를 모았던 <아더 우먼>은 세 명의 여자가 자신들을 속인 남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칼리(카메론 디아즈)가 사랑하는 남자가 실은 유부남이었고 그의 아내 케이트(레슬리 만)와 공동전선을 구축해 좀 더 사정을 파악하니 엠버(케이트 업튼) 역시 이 사실을 모른 채 사귀고 있었던 것.

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는 평이 주를 이루었지만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아더 우먼>은 닉 카사베츠가 여자들로 변주한 <남편들>이라 할 만하다. 존 카사베츠의 <남편들>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세 남자가 노골적으로 슬픔을 드러내기보다 술에 취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들은 가장으로서 가정에 얽매인 내면의 짐을 덜어내려 애쓰는데 <아더 우먼>도 결혼과 가정이라는 보수적인 가치 때문에 남자에게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자 하는 세 여성의 욕망이 영화의 전면에 나선다.

어떻게 보면, 닉 카사베츠는 가진 능력에 비해 꽤 저평가된 감독이다. 그의 배경이 가진 중간자적 입장 때문일 터다. 닉 카사베츠는 남자이면서 <아더 우먼> <옐로우>(2012) <마이 시스터즈 키퍼> 등과 같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자주 만들었다. 또한 메이저에 속해 <노트북>과 같은 멜로나 <알파독>(2006)과 같은 범죄물 등의 대중적인 장르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 독립영화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아버지의 연출력을 반영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이 또한 그의 운명일 것이다. <아더 우먼>의 경우처럼 닉 카사베츠는 메이저 영화사가 원하는 장르와 이야기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 안에 자신의 연출적 DNA를 심어놓는 법을 익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명성을 이겨내려고 애쓰다가 그들의 영화적 유산을 모두 받아들여 지금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닉 카사베츠는 주변의 평가에 상관없이 이제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자신을 적응시키는 방법을 완전하게 터득한 것이다.

BEYOND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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