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드 퍼슨> ‘그’로부터 얻은 자유

* GV 내용을 소리나는대로 옮긴 거라 글이 거칩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
** 스포일러가 왕창 포함되어 있습니다

폴 해기스가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써드 퍼슨>은 한 번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이야기는 파리와 뉴욕과 로마를 오가며 3개의 에피소드가 장편을 이루는 방식인데요. 이 3개의 에피소드는 퓰리처상 수상작가 마이클(리암 니슨)을 중심에 두고 진행이 됩니다.

마이클은 지금 파리의 한 호텔에서 새로운 소설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미 한 편을 써서 에이전트에게 보낸 상태이고 또 다른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때 마이클의 뮤즈라고 할 만한 안나 바(올리비아 와일드)가 마이클이 묵는 호텔로 찾아옵니다.

뉴욕의 줄리아(밀라 쿠니스)는 헤어진 남편 사이에서 얻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법적 절차 중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은 녹록치가 않아요. 안정적인 직장이 없어 이 상태로 갔다가는 아들을 영영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호텔 객실 청소원으로 취직을 하지만, 재판을 위한 정신 감정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결국 사단이 납니다.

스콧(에드리안 브로디)은 잘 나가는 의류 회사의 디자인을 몰래 빼와 ‘짝퉁’ 옷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일을 꾸미죠. 그러다가 들어간 커피숍에서 집시여인 모니카(모란 아티아스)의 매력에 푹 빠집니다. 그녀의 가방을 찾아준 사건을 계기로 스콧은 모니카와 함께 다니지만, 그녀의 딸은 현재 납치 중입니다.

다수의 캐릭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지지만, 하나로 엮이는 상황의 이야기는 <써드 퍼슨>이 처음은 아니죠. <써드 퍼슨>의 폴 해기스만 해도 2005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크래쉬>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나 각본과 연출을 함께했던 <크래쉬>를 통해서 LA를 배경으로 다수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해결 방안이 전무한 인종 갈등의 양상을 보여줬죠.

형식은 <써드 퍼슨>과 <크래쉬>가 같지만, 그 형식을 운용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크래쉬>는 LA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인물’들’로 처한 상황의 성격은 달라도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했었죠. 그에 반해 <써드 퍼슨>은 파리와 뉴욕과 로마의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쉽게 연결하기가 힘들죠.

로마와 뉴욕 이야기는 마이클이 각각 쓴, 그리고 쓰고 있는 소설들로 보여요. 파리 배경에서 마이클은 별거한 아내와 안나 사이에서 갈등하며 힘들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방식이 흥미로워요. 파리에서 글을 쓰는 마이클의 방에 뉴욕에서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하는 줄리아가 들어와요. 그리고 줄리아가 마이클의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에 글을  적다가 중간에 나가면 마이클이 그 메모지 뒷면에 글을 쓰는 장면도 나와요.

이와 같은 설정은 <써드 퍼슨>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일 겁니다. 마이클에게 소설의 원천은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대화와 경험입니다. 파리의 거리를 함께 걷던 안나가 “무슨 소설을 쓰냐?”고 물어보자 마이클은 이렇게 답하죠. “자기가 쓴 인물들로만 느낄 수 있는 남자 얘기”라고요. 이뿐인가요, 별거 중인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인상적인 대화의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해 두죠.

로마의 스콧과 모니카의 이야기도 결국엔 마이클이 겪은 특정 사건에서 파생한 이야기인 셈이죠. 사실 마이클은 수영을 하러 갔다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에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콧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스콧이 아내를 두고 로마에서 만나는 젋고 매력적인 집시 여인 모니카는 안나의 소설 속 현현일 것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어두운 방안에서 고뇌하는 마이클에게로 아이의 목소리로 누군가 “나를 봐줘 Look at Me”라고 속삭여요. 이는 아마도 마이클의 마음 속에서 그를 괴롭히는 아픈 기억이자 죄책감이면서 한편으로 이를 가지고 어떻게 소설 속에 녹일지 고민하는 창작자로서의 목소리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수 캐릭터가 등장하는 다중 사건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써드퍼슨>처럼 현실과 소설이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형식은 독특하죠. 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극 중 모니카를 연기하고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모란 아티아스에게서 나왔다고 해요.

사랑과 인간 관계의 본성은 과연 무얼까, 폴 해기스는 이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대요. <쓰리 데이즈>(2010)에서 함께 한적이 있는 모란 아티아스가 이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 겁니다. 처음에 폴 해기스는 별 관심이 없었대요. 그러다가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해보다가 모린 아티아스의 제안을 떠올렸고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로 풀어보면 흥미 있겠다싶어 <써드 퍼슨>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대요.

그 자신이 던졌던 사랑과 인간 관계의 질문이었던 만큼 폴 해기스와 인간 관계를 맺었던 주변 인물들과 함께 했던 삶과 사랑을 가지고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랑과 인간 관계의 결과가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탐구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해요. 무엇보다 실패한 관계에 대해 반추를 했대요. 그러니 이 영화의 결말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써드 퍼슨>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게 호감형이거나 매력이 철철 넘치는 인물들은 아니죠. 여느 메이저 영화에서였다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입니다.(그래서 모란 아티아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이겠죠. 원래 출연 계획은 없었는데 모니카 역에 내정했던 페네로페 크루즈가 임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란 아티아스가 연기까지 하게 됐다내요.)

그럼에도 이들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예요. 형식은 특수해도 이야기는 보편적이에요. 우리의 사연이 특정한 형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다들 사랑 때문에 인간 관계 때문에 아파하는 건 똑같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다중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되어야만 했다고 폴 해기스는 이야기해요.

이를 주변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찾고 대화의 내용을 가져오는 리암 니슨의 소설 작업 방식을 통해 분명히 하죠. 이에 대한 소제목을 단다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정도가 될까요. 이 영화의 편집은 이에 맞춰 이뤄져요. 예컨대, 사랑 때문에 고뇌하며 안나가 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그 다음 장면에서는 집시 여인이 에드리언 브로디의 호의에 고뇌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이 바로 이어집니다. 집시여인이 브로디와 차로 이동하면 밀라 쿠니스가 택시로 이동하는 장면이 바로 붙습니다. 그렇게 장소는 떨어져 있지만, 감정적으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영화는 편집의 미학으로 삼는 겁니다.

극 중 캐릭터 중 몇몇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 받지 않으셨나요?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써드 퍼슨>의 테마처럼 폴 해기스는 극 중 등장인물의 몇몇 캐릭터도 이전에 나왔던 영화에 연결되게 잡았어요. 가령, 안나 바가 마이클의 호텔에 찾아왔을 때 마이클은 이런 농담을 날립니다. “그녀가 무장했나요?” 마이클을 연기한 리암 니슨은 요즘 액션 스타로 잘 나가고 있죠. 그런 식으로 이전 캐릭터를 비트는 방식을 활용한 겁니다.

밀라 쿠니스는 <써드 퍼슨>에서 호텔 청소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죠. 워쇼스키 남매의 <주피터 어센딩>(2015)에서도 그녀는 지구에서 호텔 청소부로 일했죠. 마이클이 사랑하는 안나 바는 사랑에 대한 갈구가 그 어느 캐릭터보다도 많은 인물입니다. <그녀>(2013)에서 극 중 호아킨 피닉스가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했던 여인이기도 했죠. 그런 식으로 폴 해기스는 전작의 캐릭터들도 고려해 인물 설정에 반영, 사람들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실히 합니다.

그 모든 구성이 이미 각본에서 이뤄져 있었다고 해요. 각본을 쓸 당시 3개의 이야기를 써 갔지만, 폴 해기스가 집중한 건 마이클이었다내요. 다른 캐릭터들이 방사형처럼 흩어져도 결국 마이클의 이야기로 합해지게끔 엮는 것이 중요했대요. 결국 마이클이 등장하지 않는 에피소드들의 인물들은 마이클이 그 자신을 가지고 창조한 인물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이니까요. 그리고 이를 통해 마이클이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자신의 이면과 마주하기를 바랐다는 거죠.

그런데 그 방식은 어떤가요? 주변 사람의 내밀한 사연과 특정 대사를 그대로 자신의 소설 속으로 옮겨요. 이를 안 마이클의 지인들은 기분이 좋을리 없겠죠. 안나가 경멸하는 듯한 얼굴로 마이클을 쳐다보며 떠나는 장면이 압권이죠.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정의하는 소설가란, 거짓말과 위선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심연과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주변 사람의 대사와 이야기를 소설에 무리하게 옮겨가면서 만나게 되는 마이클의 심연에는 물에 빠져 죽은 어린 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픈 기억이죠.

저는 그런 마이클의 아픈 기억과 아들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써드 퍼슨>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말하고 있다고 봤어요. 마이클은 소설이라는 형태로 우회해 자신을 바라보는 데 성공한 셈인데요. 이 영화의 제목인 ‘써드 퍼슨 Third Person’은 ‘삼인칭’을 의미해요. 마이클은 일기를 쓸 때조차 그 자신을 ‘그 He’라고 표현하죠.

사람은 그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설가란 결국 자신을 알기 위해 글을 쓰는 거 아닌가요.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거리감이 필요한데 마이클에게는 그게 소설이었을 거예요. 자신을 삼인칭으로 지칭하며 주변 사람의 경험과 대사를 이용해 완성한 소설은 소위 말하는 ‘구라’와 위선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인간적인 이유는 그것이 삶의 동력이기 때문일 거예요. 마이클은 앞으로도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죄책감을 씻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열심히 소설을 쓰겠죠. 위선은 결국 인간다움의 증거가 아닐까요. 그것이 폴 해기스가 도달한 관계의 해답인 것으로 보입니다.

<써드 퍼슨> GV
(201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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