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桃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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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리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천녀유혼>(1987) <황비홍>(1991) 등 홍콩 최고의 제작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정부가 있는데 <심플 라이프>는 바로 그 두 사람의 실제 사연을 담은 영화다.

아타오는 60년 넘게 로저의 가문을 위해 일해 온 가정부다. 다른 가족들은 이민을 가고 로저만 홍콩에 있는 까닭에 그를 위해 헌신을 다하던 아타오는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진다. 로저에게 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던 아타오는 요양원 행을 자처한다. 아타오의 병이 안타까운 로저는 그녀가 낯선 환경에 어려워하지는 않을까 바쁜 시간을 쪼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준다. 그러면서 그 자신에게 아타오가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소오강호>(1990) <여인사십>(1994) <반생연>(1997) 등 서정적이면서 세밀한 연출에 능한 허안화 감독은 <심플 라이프>라는 제목답게 별다른 기교를 가하지 않고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로저와 아타오의 사연을 따라간다. 이 영화가 정의하는 인생의 의미가 그렇다. 로저처럼 화려한 쇼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담고 있어도, (그 때문에 이 영화에는 서극, 홍금보, 닝하오 등 중화권의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대거 카메오로 출연한다.) 아타오처럼 남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쳐도 나이를 먹고 적당한 때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 자체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허안화 감독은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에 비전문 연기자를 대거 캐스팅하여 사실적인 이야기로 뽑아낸다.

그래도 우리의 인생이 풍요롭다면 그건 가까이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있기 때문일 터. 삶 자체가 타인을 위해 존재했던 아타오와 달리 로저는 사회적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아직 싱글이고 학생 같은 옷차림을 고수하는 등 철부지 어른으로 묘사된다. 하여 <심플 라이프>는 로저와 아타오의 사연으로 끌고 가되 궁극에는 아타오 없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 로저의 정신적인 성장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그건 로저를 연기한 유덕화에게도 마찬가지. “스타라는 이름에 가려 정말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걸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는 허안화 감독의 평처럼 절제된 연기를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엽덕한의 몫이다. 아타오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과장되지 않은 연기는 201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그녀가 왜 홍콩의 가장 뛰어난 배우로 평가받는지를 증명한다.

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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