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탈을 벗다 – 다니엘 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니엘 헤니가 변했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는 사라지고, 고뇌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린다. <마이파더>는 연기자 헤니가 처음 맞닥뜨린 치열한 도전이다.


다니엘 헤니에겐 한 가지 불만이 있다.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매너 좋은 신사’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한국에서의 배우생활은 겨우 3년. 드라마 두 편(<내 이름은 김삼순> <봄의 왈츠>)과 영화 한 편()이 전부였다. 많지는 않았으나 그는 유독 팝송보다 클래식, 김치보다 샐러드, 캐주얼보다 신사복이 어울리는 캐릭터로만 소비됐다. 그런 평가가 황송하기 그지없을 사람도 있겠지만 변화를 요구받는 배우에게 그 같은 고정 이미지는 창살 없는 감옥이나 진배없다.

<마이파더>는 다니엘 헤니에게 창살을 뚫고 나올 기회였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마이파더>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다니엘 헤니가 연기하는 제임스 파커의 한국 이름은 공은철.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돼 부족함 없이 이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함은 떨칠 수가 없다.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주한미군으로 지원한 그는 한국에 온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되는 아버지 황남철(김영철). 그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다. 은철은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가 전혀 원망스럽지 않다.

다니엘 헤니에게 <마이파더>는 도전이었다. 은철 역을 통해 그는 전작들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그려낸다. 칼처럼 반듯한 매너로 여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로맨틱한 신사가 아닌, 뿌리 찾기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친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들이 됐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한 큐’에 출연을 승낙한 헤니에게 감독이 처음으로 건넨 말은 “다니엘 헤니가 보기 싫다”였다. “감독님은 이전 저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시길 바랐어요. 멋지게 보이려는 대신 리얼하게 보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수수한 옷차림만 고집했고 심지어 걸음걸이도 털털하게 변화를 주니 훤칠했던 헤니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문제는 극중 은철이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데다 못 알아듣기까지 한다는 것. 기본적인 한국어 대화가 가능하고 한국말을 대부분 알아듣는 그가 한국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역할을 연기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따랐다. 그 전까지 영어와 한국어 대사 중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불가피하게 영어를 선택했는데, <마이파더>에서는 역으로 설정이 가미된 연기를 해야 했으니 ‘운명의 장난’도 이런 장난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중견배우 김영철을 만난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진한 사랑을 그리는 <마이파더>에서 카메라 밖에서 김영철과 맺은 유사 부자관계는 큰 도움을 줬다. “처음 만나자마자 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저를 보시는 눈이 너무나 그윽하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헤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울 수 있었고 김영철을 선배 연기자가 아닌 진짜 아버지처럼 대할 수 있었다. 특히 아들 은철과 아버지 남철 간의 뜨거운 감정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의 리허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제 촬영이 아닌 리허설이었지만 고도의 몰입을 통해 감정이 솟구쳐 올라 저절로 눈물을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다니엘 헤니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이파더>를 독특한 러브스토리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에게는 일반적인 한국인의 정서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한국인들이 ‘부정’ 혹은 ‘혈육애’라고 부르는 것을 그는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저는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면 포옹하고 키스를 해요. 한국 사람은 그런 거 보면 이상해하잖아요. 한국에 처음 와서 부자간에 애정표현이 없어서 의아했어요.”

<마이파더>를 보는 관객에게 헤니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아버지 남철과 아들 은철의 관계를 단순한 부자관계가 아닌 사랑하는 사이로 이해해달라는 것. 미국문화가 더 낫다는 판단에서가 아니라 타문화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져 시야를 넓혔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다. 헤니는 데뷔작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받은 분에 넘치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열고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문화를 체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여전히 그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한국말은 어색해도 다 알아들어”라는 대사가 전제로 깔리지만 <마이파더>의 극중 대사 “후라이드 반, 양념 반”처럼 한국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뉘앙스를 이해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는 ‘차이’가 아닌 ‘이해’라는 사실도 몸소 깨닫게 됐다. 한국의 부자관계와 미국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서 다를지 모르지만 조건 없이 서로 사랑을 준다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관계의 핵심을 파악하고 연기에 임하는 과정에서 처음 생겼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점차 자신감이 쌓이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다니엘 헤니. “<마이파더>를 시작하기 전엔 과연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어요. 하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감독이나 제작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다니엘 헤니는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흥행의 성패와 무관하게 영화가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난생 처음 맡아본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는 것에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신사의 탈을 벗고 진짜 배우로 다시 태어났다는 게 이미 그에겐 성공의 징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필름2.0 351호
(2007. 9. 1)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